글. 혜연

‘친구’라는 관계만큼 편안하고 유쾌한 울타리는 없을 것이다. 우정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정의 소중함을 그리며, 세월의 익숙함에 속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아래 5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곁을 지킨다. 사회로 나아가는 문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죽음을 향해가는 삶의 끝에서까지 말이다.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씁쓸한 우정의 맛을 느끼며 소중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고양이를 부탁해(2001)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자유로운 고양이를 닮은 스무 살 다섯 친구들이 야생이라는 사회를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꿈에 대한 고민과 갈등, 방황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 엉뚱한 몽상가 태희(배두나), 현실주의자 혜주(이요원), 꿈 많은 지영(옥지영), 명랑한 쌍둥이 비류(이은준)와 온조(이은실)의 삶에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들며 새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이들의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자유롭고 신비로운 고양이가 거친 야생에 놓여졌으니, 당연하게도 막막하고 불안하다. 서로를 돕고 싶지만 힘이 없는 이들도 우정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말하는 건축가] 등 다큐멘터리로 영역을 넓힌 정재은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감독은 이 영화로 제 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감독상을 받는 등 국내외 1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배우 배두나, 이요원의 풋풋하고 발랄한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입소문은 자자했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터라, 2021년의 20주년 기념 재개봉이 더욱 반가웠던 작품이다. 어른이 되어도 고양이는 고양이인 것처럼, 주인공들 또한 변함없는 모습으로 스크린 속에 남아 있었다.

써드 스타(2010)

이미지: ㈜수키픽쳐스

마지막 생일, 자신을 찾아 나선 제임스(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세 명의 죽마고우의 찬란한 여정을 그린 [써드 스타]. 스물아홉의 말기 암 환자 제임스는 드넓은 곳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로 결심했고, 그를 혼자 둘 수 없던 세 친구는 그 여정에 함께 하기로 한다. 유쾌하기만 한 여행은 아닐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들은 생각보다 더 자주 난관에 부딪힌다. 또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제임스는 친구들에게 날카로운 말까지 내뱉는다. 소중한 친구들이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이것은 삭막한 동성 친구끼리 할 수 있는 유일한 애정표현이기도 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 [써드 스타]는 조금 뭉클하고, 꽤나 낭만적이다. 텅 빈 광야와 드넓은 해안, 검푸른 밤하늘 속 그림처럼 반짝이는 별들, 묵묵히 자전거를 끌어주는 친구의 모습이 그러했다. 덕분에 제임스는 삶의 마지막에서 뜨거운 추억을 가져갈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죽음을 앞둔 내 친구에게, 쓸쓸하고 처연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우정이었으리라.

프렌즈 : 하얀 거짓말(2010)

이미지:㈜마인스 엔터테인먼트

매년 프랑스 남부의 별장에서 휴가를 함께 보내는 8명의 친구들의 여덟 가지 우정 이야기를 그린 [프렌즈 : 하얀 거짓말]. 휴가를 하루 앞둔 날 친구들은 루도(장 뒤자르댕)가 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혼란 속에서 루도를 뒤로 한 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불안함과 공허함 속에 놓인 이들은 사실 각자의 비밀들을 감추고 있었고, 모두 안다고 생각했던 서로의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조금씩 어긋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오스카 수상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출연한 [프렌즈 : 하얀 거짓말]은 ‘관계’ 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들의 태도를 가식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영화 제목처럼 ‘하얀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 영화는 모든 게 진실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기꺼이 속아주는 것도 ‘친구’라고 말한다. 후에 이들의 8년 후 이야기를 다룬 [보르도 우정여행](2019)이 제작되기도 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6)

이미지: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스토리셋

너무나 다른 두 소녀의 14년에 걸친 우정과 성장, 사랑을 그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안정을 추구하는 칠월(마사순)과 자유롭지만 외로운 안생(주동우)이 운명처럼 친구가 되어 서로를 닮아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다름을 느끼며 엇갈린다. 이들은 운명적인 우정 안에서 첫 우정, 첫사랑, 첫 이별, 그리움과 낙담까지 배우게 된다. 좋아해서 닮고 싶었던, 멀어지면 밉고 어쩌면 하나가 되고 싶었던, 어리고 서투르던 시절의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답고 애틋한 청춘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소년시절의 너]를 연출한 증국상 감독의 작품이며, 중국의 인기 소설 「칠월과 안생」을 원작으로 한다. 주연을 맡은 주동우와 마사순은 역대 최초로, 제 53회 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그렇기에 최고의 관전 포인트는 두 배우의 눈부신 열연이다. 이들의 열연은 두 친구의 우정과 사랑, 동경과 질투, 그리움이 한데 뒤섞인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냈다고 평가받는다. 2023년 3월에는 [소울메이트]라는,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그린 북(2018)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취향도, 성격도 완벽히 다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그린 북].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온 다혈질의 토니(비고 모텐슨)가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운전기사로 고용되고, 위험하기로 소문난 남부 투어 공연을 함께 떠난다. 두 사람의 특별한 우정은 성격, 취향, 인종을 넘어서며, 서로의 안에 내재되어 있던 편견까지 허물기에 ‘어른의 성장’으로도 읽힌다.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그린 북]은 토니의 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토니의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거짓말 같은 우정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5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