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주연 배우인 에즈라 밀러의 여러 범죄행각으로 인해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개봉을 포기하지 않은 [플래시]가 우여곡절 끝에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이 모아졌는데, 그 까닭은 만화 [플래시포인트]를 원작으로 한 멀티버스를 다룬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올드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이 돌아오고, 새로운 이미지의 슈퍼걸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플래시포인트]는 어떤 내용이고, 달리기만 잘 하는 줄 알았던 플래시가 왜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알아보자. 더불어 여기에 나온 내용들이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도 기대해보자.

DC 유니버스를 뒤바꾼 플래시포인트

[플래시포인트]의 내용은 플래시(배리 앨런)가 다른 세상에 홀로 떨어져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은 테미스키라와 아틀란티스가 전쟁을 벌여 전 세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으며, 슈퍼맨의 존재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더 어두운 세상이지만 플래시에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원래는 살해되었어야 할 어머니가 이 현실에서는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배트맨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브루스 웨인이 죽고 그 아버지인 토머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은 플래시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를 구한 까닭에 타임라인이 분기되어 “플래시포인트 타임라인”의 현실이 창조되면서 이후의 모든 역사가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토머스 웨인은 기꺼이 플래시를 도와준다.

평행 우주와 대체 현실의 차이?

[플래시포인트]는 DC 코믹스의 역사에서 꽤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다. 본편 말고도 20여 개의 스핀오프 연계작을 출간해 다른 캐릭터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세세히 살피는 정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플래시가 무사히 돌아간 뒤에 모든 DC 멀티버스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다소 생소했던 “멀티버스”라는 용어는 꼭 마블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제 여러 작품에서 사용되면서 많이 쓰이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 또 다른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평행 우주”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플래시포인트 타임라인”은 평행 우주라기보다 “대체 현실”이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다른 선택으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타임라인의 세계로, 플래시가 어머니의 죽음을 막은 것처럼 시간여행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이론상으로 무한하게 생성된다. 하지만, 평행 우주와 대체 현실이란 개념 자체가 복잡하기도 하면서 명확히 개념이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뭐 중요하게 구분해가며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이것들이 다 멀티버스 안에 속해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두 세계의 플래시

멀티버스와 관련된 상황에서 플래시의 존재와 역할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주요 히어로 중에서 그만이 멀티버스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래시가 다른 세상에 간다는 설정은 1961년, [두 세계의 플래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에 만화책에서 평행우주를 선보인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다.

팬들은 잘 알겠지만, 원래 최초의 플래시는 배리 앨런이 아니라 제이 개릭이라는 아저씨다. 1940년부터 등장한 초창기 슈퍼히어로인 제이 개릭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DC가 새로운 세대의 히어로들을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1956년에 배리 앨런이 플래시가 되었고 그린 랜턴이나 아톰 같은 다른 히어로들도 상당수 새로운 인물과 설정으로 대체되었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옛 히어로들은 만화책 속의 캐릭터인 것으로 변경되었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건너가게 된 배리는 만화책을 통해 알고 있던 플래시인 제이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빌런들을 잡았다. 어렴풋이나마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게 된 배리는 제이의 세계가 먼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상을 지구-일(Earth-One), 제이의 세상을 지구-이(Earth-Two)라고 이름 붙였다. 이 모험을 계기로 한동안 사라졌던 지구-이의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멀티버스의 통합과 재분배 과정을 거쳐 둘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멀티버스와 관련된 히어로

배리 앨런은 멀티버스를 오가는 능력 때문에 수많은 멀티버스를 파괴하려는 안티 모니터에게 붙잡혔다. 멀티버스가 하나로 통합되는 사건을 다룬 이 [무한 지구의 크라이시스]에서 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이후에 스피드 포스 안에 머무르는 영혼으로서 잠깐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블 코믹스에 기억을 잃은 상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이야 히어로들이 죽었다가 금세 부활하는 일들이 흔하지만, 배리의 경우엔 공식적으로 부활하기까지 23년 동안이나 걸렸다. 그 기간 동안에 그를 되살려 달라는 팬들의 항의와 애원도 상당했다고 한다. 돌아온 이후에도 미래나 다른 세계와도 자주 엮이고 있으며, 멀티버스를 지키기 위해 각 지구의 히어로들이 모인 저스티스 리그 인카네이트라는 팀에 초청받기도 했다.

플래시는 어떻게 시공간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플래시가 빨리 달릴 수 있는 비결은 스피드 포스라는 우주의 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스피드 포스라는 것은 시공간을 앞으로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주변에서 흡수한 에너지가 쌓이면 이를 방출해야 한다. 이럴 때 플래시를 비롯한 스피드 능력자들이 스피드 포스에 접속해 빨리 달림으로써 이 축척된 에너지를 방출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자신에게서 나오는 진동의 주파수를 조절하면 차원 사이의 막을 뚫고 같은 주파수를 가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를 더 쉽게 하려면 특별하게 개량한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면 된다. 적은 노력으로 금세 빨라질 수 있다. 이때 잘못해서 스피드 포스 안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게 되면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