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는 실패하지 않는 토크의 주제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감독들의 자전적 영화는 늘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자기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서인지 작품성과 완성도도 훌륭하다. ‘천재들의 흑역사’가 담겼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아래 7편의 작품은 영화감독들이 스크린을 통해 전하는 그들의 진솔하고 솔직한 고백이다. 자신의 삶을 영화로 옮긴 감독들을 보며, 잊고 싶은 성장통마저 삶의 한 페이지로 기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남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두근거림으로 삶의 의미도 건네는 그들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키즈 리턴(1996) / 기타노 다케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소년의 성장을 그린 영화 [키즈 리턴]. 마사루와 신지는 늘 함께였지만 신지가 권투에 전념하고, 마사루가 야쿠자의 길로 들어서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며 이대로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인지, 혹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인지를 고민한다. [소나티네] [하나-비]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평가받은 기타노 다케시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거친 이미지를 가진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의 가장 여린 부분을 드러낸 것이다. 맹목적인 성장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자신도 길을 이탈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며, 결국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 자비에 돌란

자신을 이해해 주기는커녕 제멋대로 행동하는 엄마에게 불만을 품고 있으며, 연인과 함께 자유로운 독립을 꿈꾸는 16살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엄마가 처음이고, 아들이 처음인 모자는 서로에게 미숙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 파격적인 제목을 지닌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천재 혹은 스타로 불리는 감독 자비에 돌란의 작품이다. 그는 성 소수자로 살아온 자신의 암울했던 사춘기 시절을 꺼내놓았다. ‘인상적인 데뷔작’으로도 언급되는 이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상을 포함한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스타성을 지닌 감독의 낯설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나볼 수 있다.
레이디 버드(2017) / 그레타 거윅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을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고 칭하는 소녀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엄마와 대립하게 되는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로 주목받은 배우 그레타 거윅이 첫 단독 연출작(이전 연출작 [밤과 주말]은 공동연출이었다)으로 자신의 10대 시절을 풀어놓았다. 자기애와 자기혐오에 동시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유난스럽고 별난 10대 시절이 서툰 날갯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한다. 그 속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모녀의 갈등까지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감독의 인터뷰처럼 소녀들을 위한 [보이후드] 아니 [걸후드] 혹은 [400번의 구타]이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성장담일 것이다.
로마(2018) / 알폰소 쿠아론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의 로마 거리, 한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고 있는 클레오와 안주인 소피아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되는 [로마].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가정 내 불화, 사회적인 억압이 밀려오지만 주인공들은 가족애를 통해 이 고난을 극복한다.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을 연출한 거장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유년 시절이 담긴 작품으로,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의가 담겨 있다. 그 마음을 인상적인 흑백 화면으로 남겼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무엇이 자신을 키워냈는지 잊지 않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였다.
벌새(2019) / 김보라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을 그린 [벌새]. ‘붕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재난과 그로 인한 관계의 재난은 소녀 은희에게 거대한 사건이었다. 은희는 그럼에도 회복을 위해 고요하고 치열한 날갯짓을 펼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1994년을 배경으로 하며, 실제 그 시절을 뜨겁게 지나온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90년대를 관통하는 이미지와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벌새의 처절함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세계의 다수 영화제에서 총합 59개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김보라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미나리(2020) / 정이삭 (리 아이작 정)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이민자 가족이 시골에서 농장을 만드는 이야기를 그린 [미나리]. 엄마의 엄마 ‘순자’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낯선 미국에 찾아오고, 아이들은 여느 ‘그랜마'(grandma) 같지 않고 독특한 할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손자와 할머니의 거리는 한국과 미국만큼이나 멀어 보이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가족의 일상은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미나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민자 가족으로서 유년을 보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극중 어린 데이비드는 정이삭 본인을 모델로 하였다. 멀고 낯선 미국 땅에서 펼쳐지는 가장 한국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제목의 의미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