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슬기
필자는 배트맨을 포함한 DC 유니버스의 영화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었다. 도대체 고담의 시민들은 이런 잔혹한 범죄가 연속되는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그 정도로 이곳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줄을 잇는다. 고담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도시가 또 있었으니, 마블 유니버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헬스 키친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범죄부터 도시를 움켜쥐고, 집어삼켜 파괴하려는 대규모 범죄 사건까지 뜨겁게 들끓는 고담과 헬스 키친! 두 도시를 위협하는 사건, 사고와 그런 험악한 도시를 지키려는 히어로는 누가 있는지 알아보자.
고담, 살벌한 악인들이 노리는 어둡고 위험한 도시.
심각한 빈부 격차를 비롯한 사회 갈등이 만연한 이 도시는 범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이런 어둡고 꿉꿉한 도시를 노리는 살벌하고 거친 자들이 여럿 생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악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라는 건 그들이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고담을 아예 자신들의 아지트이자 악의 소굴로 만들려는 시도가 빈번했다. 그들은 고담시를 어떤 방식으로 위협했나.
라스 알 굴의 공포가스

고담의 인지도를 견인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를 먼저 살펴보자. [배트맨 비긴즈]에서 처음으로 고담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한 편, 라스 알 굴이라는 인물이 고담시를 멸망시키려는 계략을 치밀하게 세워 도시를 장악하려 한다. 마피아와 정신과 의사를 통해 마약을 밀수, 유통하여 도시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계획에 방해가 되는 선한 이들을 암살하려 든다. 이런 작전만으로는 고담을 파멸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공포 가스를 사용한다. 공포 가스를 맞은 사람은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환각을 보게 된다. 이런 심각한 가스를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기술을 이용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포함한 도시 전역에 살포해 아수라장을 만든다. 더불어 아캄 교도소의 죄수들을 풀어주었고, 이는 고담시에 더욱 빈번한 범죄를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조커가 선사하는 카오스

최고의 빌런이라는 호평을 받은 조커 역시 고담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괴물이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조커가 고담을 무너트리기 위해 가장 공들인 계획은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어 갈등을 증폭시켜 혼돈을 야기하는 것.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범죄의 시작은 은행에서 돈을 훔치고 이를 함께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다. 그의 광기는 당연하게도 강도와 살인에서 멈추지 않았고,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고담을 지탱하던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극악무도한 그가 고담이 가진 정의의 불꽃마저 꺼버리는 대목이다. 또 다른 고담의 지지대이자 수호자, 배트맨마저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유도하며 고담의 희망을 산산조각 낼 위력을 갖는다.
탈리아와 베인의 폭탄

배트맨이 자취를 감춘 지 8년 후 또다시 고담을 장악하려는 빌런이 등장한다. 미란다라는 인물로 자신을 위장하고 웨인 엔터프라이즈를 맡게 된 탈리아이다. 그는 라스 알 굴의 딸로 지옥 같은 감옥에서 함께했던 베인과 고담을 철저히 고립시켜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탈리아는 웨인 엔터프라이즈에 숨겨져 있던 핵 융합로를 확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도시를 한 번에 폭발시킬 위력을 가진 폭탄을 무기로 삼는다. 폭탄을 트럭에 싣고 정처 없이 이동해 혼돈을 주고, 스위치를 꽁꽁 숨겨두며 교란 작전을 펼친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작전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함으로써 꼭 고담을 파괴했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다.
더불어 폭탄의 존재를 알게 된 시민들이 대피하지 못하도록 고담 바깥으로 나가는 다리를 모두 폭발하여 고립시키고, 블랙게이트 수용소의 죄수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혼란 위에 혼란이 덧칠해진 고담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되어 시민들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갇히고 만다.
끝없는 위기에서 고담을 구해내는 배트맨

위에 서술된 굵직굵직한 사건 외에도 바람 잘 날 없는 고담을 지키는 배트맨이 있기에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된다. 기득권층인 그는 범죄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방탕한 생활을 경험하고, 수년간의 수련을 거치면서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났다. 고든, 블레이크 등 배트맨을 믿고 따르며 고담의 정의를 수호하는 자들 역시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이 고담에 존재하는 한 고담은 다이내믹한 하루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범죄가 있기에 히어로가 있고, 히어로가 있기에 범죄가 있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배트맨과 고담을 정의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배트맨 없는 고담이 궁금하다면?

배트맨의 어린 시절, 그가 아직 배트맨이 아닌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일 때의 고담은 어떤 모습일까? 그 시절의 이야기는 드라마 [고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왕으로 군림하고 싶어하는 펭귄맨, 어두운 세계를 장악한 권력가 바바라 킨, 높은 지능으로 숨통을 조여오는 리들러 등 다양한 빌런들과 그들의 악행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젊은 제임스 고든이 이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건넨다.
헬스키친, 이름값 한 번 제대로 하는 우범 지역
하늘 아래 같은 뉴욕은 없다.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는 뉴욕의 퀸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말 그대로 Hell인 지역이다. 이곳 역시 이익을 챙기려는 마피아, 삼합회의 지배와 살인, 마약 등 웬만한 범죄는 모두 일어나고 있다.
범죄 그 자체, 킹핀

헬스키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킹핀이다. 슬럼가 출신인 그는 작은 조직으로 시작해 헬스키친을 점령한 거대 조직을 손에 넣은 인물이다. 이곳에 뿌리 내린지 오래기 때문에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 킹핀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이런 범죄의 전면이 아닌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자비롭고 성공한 기업가처럼 보이는 그는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사람은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본성을 갖고 있지만, 살인, 납치 등 온갖 사건들을 뒤에서 조종한다. 헬스키친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삼합회, 마피아 등을 끌어들여 어둠의 뿌리가 내리게 한다.
헬스키친을 넘어 세계를 위협하는 집단, 핸드

[데어데블]에서 첫 등장한 닌자 조직으로, 폭력 조직을 넘어 전 세계를 음지에서 지배하는 막강한 세력이다. 이들은 불사의 비법을 통해 천년 이상을 살아오며 세계를 조금씩 잠식시켰다. 헬스 키친에서는 킹핀과 협력하는 야쿠자부터, 마약 운송까지 도시를 어지럽게 만드는 각종 범죄에 앞장섰다. 불사를 위해서라면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아서,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피를 추출하고 시신을 훼손하기도 한다. 이들이 헬스키친이 포함된 뉴욕시를 부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놈의 불사를 위해 용의 화석을 얻기 위함이다. 용의 화석은 뉴욕시 한복판에 묻혀있어 그것을 꺼내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뉴욕시가 산산조각 나야한다. 뉴욕시의 파괴를 막기 위해 뭉친 디펜더스를 죽음의 문턱으로 데려다 놓는 강력한 힘을 선보이며 순순히 무너질 집단이 아니라는 암시를 선사한다.
헬스키친의 수호자, 데어데블

낮에는 변호사, 밤에는 헬스키친을 구하는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우범 지역의 균형을 잡는 데 힘쓰고 있다.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때문에 킹핀을 법으로 처벌하는 통쾌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데어데블]은 이미 벤 에플렉의 영화와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왔고, 최근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입한 새로운 작품을 촬영 중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깜짝 출연하기도. 헬스키친을 수호하기 위한 그의 활약은 아직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