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관심 속에 출발했던 tvN 주말드라마 [판도라: 조작된 낙원(이하 ‘판도라)]이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다. 방영 전만 해도 [판도라]는 ‘제2의 펜트하우스’로 주목을 받았다. 김순옥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이지아가 또 한 번 주연으로 나선다는 사실만으로 드라마의 흥행은 떼어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대가 높았던 것일까. 방영 3주 차를 넘어선 [판도라]는 첫 방송 이후 3~4% 시청률에 머물러 있고, 작품에 대한 반응도 시원찮다. 

Credit: tvN

홍태라(이지아)는 잘 나가는 IT  기업 해치의 의장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행복한 일상은 15년 전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태라는 자신이 대통령을 암살한 킬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더군다나 그가 죽인 대통령은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는 고해수(장희진)의 부친이었고, 하나뿐인 언니라고 믿었던 유라(한수연)는 돈을 받고 지금껏 자매인 척 연기를 했던 거였다. 태라는 자신의 삶을 조종한 이들을 찾아 복수한 뒤, 해수에게 죄를 고하려 한다. 

작품의 큰 줄기는 복수와 음모다. 대통령 암살사건을 미스터리의 시작점에 두고, 절망적인 기억을 되찾은 주인공이 자신을 벼랑 끝에 내몬 이들을 향한 복수를 동력으로 삼는다. 하지만 정치적 음모를 결합한 복수극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복수를 다짐하는 태라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주변 관계에 자꾸만 묻힌다. 태라의 정체를 알게 된 해수의 분노가 더 크게 다가오고, 해치를 이끄는 세 친구 표재현(이상윤), 장도진(박기웅), 구성찬(봉태규)의 갈등이 극의 중심에 부상한다. 그 밖에도 7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교진의 형, 한울정신병원의 계략으로 킬러로 자란 태라의 동생, 15년 전 저격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듯한 장금모 회장 등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있다. 풀어내야 할 게 많아도 김순옥 작가의 전작 [펜트하우스]처럼 화끈하게 휘몰아치는 속도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야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것에 불과해 전개는 좀처럼 가속이 붙지 않는다. 게다가 막장 드라마의 익숙한 클리셰인 치정 관계는 쓰임새가 고루해서 식상하다.

볼거리를 늘어놓는데 급급한 연출도 아쉽다. 특히 첫 회는 모든 게 넘쳐흐른다. 슈퍼 침팬지 레드를 내세운 해치의 발표회를 시작으로 불륜 커플의 불필요하게 과한 애정신, 1인칭 시점의 액션신 등 이것저것 현란하게 보여주느라 극의 흐름은 엉성하고 산만하기만 하다. 이야기와도 잘 부합하지 않고 특색 없이 과하다는 인상만 준다. 

Credit: tvN

캐릭터들의 매력도 부족하다. 그중 시청자의 응원을 사야 할 주인공 홍태라가 극에서 좀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기억은 불현듯 쉽게 돌아오는데 반해, 행동력은 어쩐지 더디다. 배후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6회까지 흘러가는 동안 해수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 답답해 보인다. 한편 해수는 점점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해 눈살을 찌푸린다. 게다가 외도를 저지른 도진과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다가 갑작스레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것도 섣불리 이해가 안 된다. 그나마 흥미로운 인물은 6회에서 두 얼굴을 드러낸 재현이다. 재현의 이중적인 행보가 밋밋했던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일부 배우들의 연기도 안타깝다. 이지아는 액션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며 작품을 준비했다지만, 목소리와 표정 연기가 어색하고 단조로워 캐릭터에 이입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특히 더 그렇다. 캐릭터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데는 아쉬운 연기력도 한몫할 것이다. 또한 빌런 세력 중의 하나인 한울정신병원의 김선덕 원장을 맡은 심소영은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저해한다. 

[판도라]는 6회에서 재현이 유라를 통해 태라의 삶을 조작한 배후임을 드러내며 새 국면을 맞았다. 남편의 어두운 진실을 알게 된 태라는 앞으로 어떤 반격에 나설까. 이를 기점으로 드라마는 반등할 수 있을까. 이제 예열을 마쳤으니 분노와 욕망이 얽힌 복수의 서사를 남은 회차에서 잘 풀어내 초반의 실망을 만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