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꽤 흥미로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실사 장르 영화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마크 구스타프슨과 공동연출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로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자로 지명됐다. 실사 영화 연출도 힘든데, 애니메이션까지 만들다니, 새삼 그의 재능을 다시 한번 리스펙트하게 만든다. 이처럼 세계 영화계에는 실사와 애니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재능 있는 감독들이 많다. 장르의 한계를 깨부수며 자신의 필모를 확장하는 대표적인 이들을 오늘 만나보자.

로버트 저메키스 – 실제 같은 애니, 애니 같은 실사

[포레스트 검프] [빽 투 더 퓨처]로 유명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뛰어난 상상력과 유머를 펼쳐내며 대중적인 인기와 작품성을 얻고 있는 감독이다.  어려서부터 감독의 꿈을 키우며 대학시절에 만든 단편영화로 학생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그가 쓴 시나리오인 [1941]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아 영화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메이저 상업영화인 [로맨싱 스톤]을 성공시켰으며, 기발한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획기적인 시도를 하며 애니메이션에 도전하였다. 

당시에는 실험적이었던 하이브리드 영화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를 통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완벽한 조화로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했고, 흥행까지도 성공하여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발판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그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모든 것을 건다. 3D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를 제작하여 동화 원작의 환상과 모험, 꿈과 희망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어 확고한 스테디셀러 크리스마스 영화로 자리매김한다. 당시 신기술이었던 모션 캡처로 그려낸 캐릭터가 실제 인간과 흡사하여 불쾌함을 느낀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도전으로 인해 향후 제작된 영화의 CG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후 모션 캡처(퍼포먼스 캡처)를 발전시키며 [베오울프] [크리스마스 캐롤] 등 실제 같은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었다.

연상호 – 실사와 애니를 통해 구현되는 연니버스

실사와 애니를 넘나드는 감독은 여기 대한민국에도 있다. 바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모든 것 연상호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97년과 2000년에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2004년에 공개된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은 웹툰과 드라마 [지옥]의 토대가 된 작품으로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다.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은 2011년 개봉한 [돼지의 왕]이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성인 애니메이션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았고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도 초청받아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작품에 그려진 학교폭력이 현재에도 이슈가 되는 만큼, 2022년에는 드라마로도 실사화되어 그 명성을 입증했다. 이후 연출작 [사이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상호 감독은 첫 실사 장편영화 [부산행]로 큰 성공을 거둔다.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연니버스의 시작을 알린다. 이러한 세계관의 연장선으로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후속작인 [집으로]를 통해 연니버스를 공고히 하는 데에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활용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반도], [정이], [지옥]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제작, 연출, 각본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기예르모 델토로 – 비주얼의 호불호를 스토리텔링으로 상쇄하는 천재 감독

멕시코 출신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기괴하면서 몽환적인 비주얼과 기발한 스토리로 유명하다. 또한 잔혹성과 순수함, 현실과 판타지 등 상반되는 요소들을 작품에 녹여내는 스타일이 돋보이는데, 특히 잔혹, 판타지, 동화라는 이질적인 세 키워드를 조합한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가 대표적이다. 영화 [판의 미로]는 아이의 순수한 상상력과 어른의 이기심이 피운 한 소녀의 신비하고 슬픈 모험을 담아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또다시 창의력을 발휘해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2022)에서 피노키오 동화를 기발하게 재해석했다. 고전 동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면서도 1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배경을 추가한 것이 특징. 제페토가 술김에 만들어 투박한 비주얼의 피노키오와 스핑크스를 닮은 죽음의 요정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디즈니+ [피노키오]와 크게 대조되면서 델 토로 특유의 미적 스타일을 부각했다. (공교롭게 디즈니+ [피노키오] 역시 오늘 소개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작품)

이처럼 실사 영화, 애니메이션을 가리지 않는 델 토로의 재능은 차기작에서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델 토로는 넷플릭스와 다시 손을 잡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선보일 예정.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파묻힌 거인」이 원작으로, 장기 기억을 앗아가는 정체불명의 안개가 드리운 잉글랜드에 사는 한 노부부를 따라간다.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의 각본가 데니스 켈리와 델 토로가 공동 집필하며,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제작사 ‘섀도우머신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는다. 늘 예상을 뛰어넘는 비주얼과 상상력을 선보였던 델 토로가 이번에는 어떻게 관객을 놀라게 할지 관심이 주목된다.

브래드 버드 – 실사 영화의 실패를 애니메이션으로 절치부심한 감독

[아이언 자이언트]의 브래드 버드 감독은 애니메이션 연출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실사 영화와도 인연이 있다. [인크레더블]로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상을 거머쥔 브래드 버드는 3년 후 [라따뚜이]로 또 한 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 번도 힘든 쾌거를 두 번이나 이뤄 낸 브래드 버드의 다음 작품은 놀랍게도 실사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세련된 비주얼과 높은 긴장감, 빠른 전개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이로써 실사 영화에도 성공한 브래드 버드는 다시 실사 영화를 택한다. 그러나 그가 각본에도 참여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SF 영화 [투모로우랜드]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그의 커리어에 크나큰 흠집을 남겼다.

[투모로우랜드]의 실패로 쓴맛을 본 브래드 버드는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다. 브래드 버드가 각본과 연출 모두 맡은 [인크레더블 2]는 전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수익을 돌파하며 가장 흥행한 픽사 영화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변함없는 재능과 감각을 증명한 브래드 버드는 이제 SF 누아르 [레이 건]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과 외계 종족이 공존하는 미래의 가상 도시에서 펼쳐지는 탐정 이야기로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보면 전작의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와는 결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레이 건]은 애플 tv+ [럭]을 제작한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과의 협업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픽사가 아닌 새로운 제작사와의 호흡 역시 관전 포인트다.

안노 히데야키 – 에반게리온의 아버지에서 고지라 시리즈의 게임 체인저까지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아버지 안노 히데야키도 애니매이션과 실사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TV에 푹 빠진 그는 애니메이터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이후 그와 뜻이 맞는 크리에이터들과 ‘가이낙스’를 설립,  [왕립우주군]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을 제작, 연출했다. 그리고 1995년 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이 작품에 담긴 심오한 코드와 이야기들이 마니아들에게 어필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리메이크이자 리부트인 신극장판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에바의 열풍을 이어갔다. 

실사 영화에서도 안노는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줬다. TV판 [에반게리온] 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해 지친 그는 잠시 애니메이션계를 떠나 실사 영화에 발을 들인다. 몇 편의 실험 영화를 만들었고, 2003년 [큐티하니] 실사 영화판의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만 너무 넣었던 탓일까? 작품은 평단에게 외면받고 흥행에도 큰 실패를 거뒀다. 다행히 이때의 시행착오가 다음 작품 연출에 좋은 거름이 되었다. [에반게리온: Q] 작업 이후 [고지라] 시리즈의 새로운 프로젝트인 [신 고질라]의 메가폰을 잡는다.  단순히 괴수 침략에 맞선 전투와 투쟁이 아닌, 거대한 재난 상황에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한 시스템, 관료제, 인간의 이기주의를 꼬집으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와 장르적 매력을 잘 조합했다. 2016년 일본 개봉 영화 중 [너의 이름은.]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뒀다. 최근에는 실사영화 [신 가면라이더]를 연출해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