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2022년 3월, 영화팬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20세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영웅 브루스 윌리스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어증 진단을 받았으며, 인지 능력이 감퇴하여 연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 그의 가족들은 브루스 윌리스가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받았다고도 전했다. 매 영화마다 껄렁거리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액션 히어로로 영화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건넸던 그였기에 이 소식은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그의 새로운 작품들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다이어 라이크 러버즈], [시정 조치], [잘못된 장소], [뮤턴트 이스케이프] 등이 2023년 개봉될 예정이다. 다행히 아직은 그의 공백을 느끼기에 이른 것 같다. 오랜 시간 멋진 액션을 보여줬던 그가 이제 가족들과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며, ‘우리들의 영원한 액션 영웅’ 브루스 윌리스의 레전드 활약들을 모아본다.

‘다이하드’ 시리즈 / 존 맥클레인 역

이미지: 실버 픽처스

브루스 윌리스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생각나는 영화가 아닐까? 하드 바디 액션에 코미디를 섞어 새로운 히어로상을 제시했던 [다이 하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브루스 윌리스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다이 하드] 시리즈는 그의 초기작에 속하지만 여전히 그의 대표작이다. 그가 연기한, 죽도록 고생하는 인간적인 영웅 ‘존 맥클레인’은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온 뉴욕 경찰로 살벌한 생존 게임의 전쟁터에서 늘 홀로 고군분투한다. 폐쇄된 고층 빌딩에서 테러리스트들에 맞서고, 위험천만한 비행기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생사가 걸린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딸을 구하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며, 국제적인 테러 진압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당시 떠오르는 액션 영웅들이 보여줬던 마초적인 이미지를 벗어났다. 구르고 다치고 쓰러지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버텨 마침내 적을 해치우는 평범한 도시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브루스 윌리스는 끈질긴 생명력의 아이콘이 되었고, 악운을 이겨내는 그의 활약은 무려 25년간 이어졌다.

죽어야 사는 여자(1992) / 어니스트 멘빌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처스

브루스 윌리스에게는 액션 외에도 다채로운 재능이 있었다.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빽 투 더 퓨쳐]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블랙 코미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1978년의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영원한 젊음을 탐하는 세 남녀의 엽기적이고도 비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멘빌’ 박사는 젊음의 묘약을 둘러싸고, 두 여자 사이에서 신비하고 씁쓸한 사건을 겪게 된다. ‘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심오한 메시지를 호러 코미디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브루스 윌리스와 메릴 스트립의 코미디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펄프 픽션(1994) / 버치 쿨리즈 역

이미지: 어 밴드 아파트

1994년, 브루스 윌리스는 액션 장르에만 치중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에 출연한다. ‘싸구려 읽을거리 잡지’라는 제목의 뜻처럼 어딘가 일그러진 듯한 독특하고 과감한 구성이 특징인 작품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버치 쿨리즈’는 LA의 복서로, 살벌한 갱들과 얽히며 위기에 빠지는 인물이다. 조직 보스의 명령에 따라 경기에서 일부러 졌어야 하지만, 명을 어기고 이겨버렸기 때문이다. 브루스 윌리스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그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노련한 액션으로 모든 상대를 제압해 버리니, 사무엘 L. 잭슨과 더불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겟돈(1998) / 해리 스탬퍼 역

이미지: 터치스톤 픽처스

[나쁜 녀석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연출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재난 SF 액션 [아마겟돈]은 1990년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녹여낸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할 위기가 닥쳐오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14명의 용감한 영웅이 천공으로 향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소행성으로 떠나는 지구 최고의 유정 굴착 기술자 ‘해리 스탬퍼’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 폭탄 장치를 제거하고,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불가능할 것 같은 미션을 수행하는 용맹한 영웅인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딸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여준다. 거대 액션 블록버스터를 봤음에도 눈물이 흘렀던 것은 단연 브루스 윌리스의 부성애의 연기 덕분이다.

식스 센스(1999) / 말콤 역

이미지: 할리우드 픽처스

인간과 영혼의 섬뜩한 커뮤니케이션을 그린 미스터리 영화 [식스 센스]. ‘최고의 반전 영화’로 꼽히는 [식스 센스]는 브루스 윌리스의 연기 인생에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명 감독의 예상치 못한 반란과 천재 아역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극중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 박사는 어린 환자 ‘콜 셰어’와 상담을 진행하며, 자신을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함께 [언브레이크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를 작업하며 그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자신의 경력을 쌓아 올려준 브루스 윌리스를 향해, “당신이 나를 보호해 준 영웅이나 마찬가지”라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었다. 배우로서는 은퇴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의 힘은 여전히 ‘언브레이커블’이다.

‘레드’ 시리즈 / 프랭크 모세스 역

이미지: 디 보나벤츄라 픽처스

레전드급 특수 요원과 그들을 제거하려는 CIA의 통쾌하고 뜨거운 맞대결을 그린 [레드]는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모건 프리먼, 헬렌 미렌 등 화려한 출연진이 돋보이는 액션 영화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프랭크’는 CIA 사상 최고의 특수 요원으로, 시시각각 찾아오는 암살자들의 무차별 공격 속에서 지상 최대의 반격을 선포하는 인물이다. 그는 [레드]에서 액션 대부다운 면모를 마음껏 보여준다. 영화는 첫 편의 흥행에 힘입어 3년 만에 [레드: 더 레전드]라는 이름의 후속편이 제작되었다. 후속편에서는 뿔뿔이 흩어졌던 레전드 급 CIA 요원들이 부활하며, 기존 출연진에 캐서린 제타존스와 안소니 홉킨스, 이병헌까지 새롭게 합류해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