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성격과 취향이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작품은 많다. 흔히들 반대가 끌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성격이 아닌 성질이 완전히 다른, 예를 들어 ‘물’과 ‘불’이 만나서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이건 취향이 조금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물과 불이 만약 생명체라면 서로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니깐. 디즈니-픽사의 신작 [엘리멘탈]은 바로 이 불가능한 사랑에 도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물, 불, 공기, 흙의 원소가 함께 사는 엘리멘탈 시티를 배경으로, 불같은 성격의 엠버와 물처럼 온순한 웨이드가 어떤 사건으로 만나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굿 다이노]의 피터 손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여러가지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이민자를 비롯한 다민족 국가의 특성과 사회를 원소설로 표현해 시선을 끈다.

이미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당연하게도 원소의 성질을 활용한 에피소드가 상당히 기발하다. 가령 ‘물’의 웨이드가 스포츠 경기에서 열기를 불어넣기 위해 파도응원을 유도하는데, 실제 자신이 파도가 되어서 경기장을 휩쓴다. ‘불’의 엠버는 자신의 기질로 목재를 태워 간식을 만들기도 한다. 영화 곳곳에 원소의 성질을 이용한 다양한 볼거리를 배치해 재미를 더한다. 원소의 섬세하고 민감한 성질을 디테일하게 구현한 작화 퀄리티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원소의 특징은 단순히 즐길 거리로만 그치지 않는다. 특히 엠버가 사는 불 원소들의 거주지, 일명 파이어시티를 자세하게 묘사해 이민가 가정의 애환과 갈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불 자체가 다른 원소 등을 태우거나 증발시킬 수 있기에, 엘리멘탈 시티에서 불 원소는 불청객으로 취급받는다. 서로 성질이 다를 뿐인데 원소들이 편견에 갇혀 상대를 혐오하는 부분은 현실 사회의 인종차별, 난민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지점을 영화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그려내어 작품의 주제의식을 확고하게 다진다.

이미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민자 가족의 애환이 영화의 출발점이지만, [엘리멘탈]의 궁극적인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다. 특히 물과 불, 함께 할 수 없는 두 원소가 서로의 장벽을 뛰어넘고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로맨틱하게 펼친다. 여기에 파이어시티를 위협하는 누수 문제를 같이 해결하면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한 마디로 물불가리지 않는 사랑이라고 할까? 불같은 성격의 엠버와 울음정수기 웨이드 두 상극의 캐릭터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이 마치 현실 로맨스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특히 자신들의 특징을 이용해 상대에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 재치 넘치면서도 달달하다.

전체적으로 [엘리멘탈]은 [소울]이후 살짝 삐끗했던 픽사가 제 폼을 찾은 작품으로 다가올 듯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원소의 성질을 활용한 전반부의 재미에 비해 후반부는 너무 로맨스에만 치중해 극의 리듬을 떨어트린다. 그럼에도 사랑의 힘으로 원소의 장벽을 뛰어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사는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자는 따뜻한 메시지는 보는 이를 뭉클하게 만든다. 물불 안가리는 웨이드와 엠버의 사랑이 작품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PS. 쿠키 영상은 없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쯤 꽤 마음을 짠하게 하는 문구가 나온다. 참고로 이번에 한국에 방문한 피터 손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와중에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런 마음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어 감동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