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이미지: BM Cultures

‘은하철도’ 하면 999도 생각나겠지만, 이 작품도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의 뇌리에 오래 남았을 듯하다. 1985년 공개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밤]은 일본의 근대 소설가이자 대표적인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작을 모티브로 했으며, 만화가 마스무라 히로시가 원작을 만화로 옮기고, TV시리즈 [우주소년 아톰] [터치] 등을 연출했던 감독 스기이 기사부로가 그 만화를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것이다. [메종 드 히미코]의 영화 음악을 맡았던 호소노 하루오미가 음악을 맡아 조반니의 여정을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냈으며, 원작 만화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로 의인화된 주인공들 또한 좀 더 우화적인 느낌을 살려냈다.

원작을 집필한 미야자와 겐지는 생전에 100여 편의 동화와 400편의 시를 남겼다. 1933년 3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칠 때까지 [은하철도의 밤]을 수차례나 고쳐 쓰며 이 소설에 애착을 가지고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그가 미완성으로 남기고 간 이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 재평가되었고, 수많은 창작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대표적으로 (이 소설의 영감을 받아 만든 「은하철도 999」의) 마츠모토 레이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그 영향을 받은 인물로 손꼽힌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에는 꽤나 무거운 [은하철도의 밤]은 한 소년이 은하수를 여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소년 조반니가 우주로 떠나는 기차에 올라탄 이후 겪게 되는 모험을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조반니는 고기를 잡으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은하수 축제의 날,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슬픔에 잠겨 언덕에 앉아 있던 조반니는 신비로운 은하철도에 올라타게 된다. 기차 객실 안에서 칸파넬라를 만나게 된 조반니는 함께 은하 여행을 시작하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순회하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을 전해 듣는다. 그렇게 영화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 의미 있는 여정을 떠난다.

전갈의 불이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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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건너고, 신비한 해안을 걷고, 수정으로 된 모래와 흠집 없는 호두를 만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 기차에 탑승한 것인지, 캄파넬라는 왜 자넬리를 두고 온 것인지, 함께 오던 자넬리는 왜 먼저 돌아갔는지, 혹시 정말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캄파넬라는 ‘엄마는 날 용서해 주실까?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정말로 좋은 일을 한다면 분명 행복할 거야. 그러니 엄마는 날 용서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또 다른 탑승객은 ‘이 기차는 정말 어디까지나 간답니다’라는 말로 은하철도를 설명하고,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탄 가정교사는 비극적인 사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빙산에 배가 부딪혀 가라앉은 사고였으며, 가정교사는 다른 아이들을 밀어내고 자신의 아이들을 구할까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남는 것보다 이대로 주님 앞에 가는 것이 이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기차에 탑승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사과나무 무성한 숲이 펼쳐지고 평안을 위한 교향곡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희생’이라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극의 마지막 챕터인 ‘전갈의 불’에서 그 메시지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초원에서 작은 벌레들을 먹으며 살던 전갈은 족제비에게 잡아먹힐 순간이 되자,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것을 한탄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잠자코 몸을 내어주지도 못한 채 도망치며 ‘다음 생에는 허무하게 목숨을 버리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내 몸을 쓰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전갈의 몸이 새빨갛고 아름다운 불로 변했고, 마침내 어둠 속을 비추는 불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전갈의 불은 마치, 기차에 너무 일찍 탑승한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린 조반니 또한 착한 사람 중 하나였기에 기차에 올라타게 된 모양이다. 조반니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집을 떠난 아빠를 탓하지도 않고, 자신을 외면하는 친구들을 미워하지도 않았으며, 친구를 위해 희생한 캄파넬라에게는 ‘너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아마 조반니라면 캄파넬라의 행동을 지지하고, 그와 같은 희생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는 인간이 되고 싶다며 ‘희생하는 삶의 가치’를 써내리던 미야자와 겐지를 닮은, 너무도 동화적인 인물이다.

가장 따뜻하고 환상적인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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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소중한 이들에게 과연, 희생하는 삶의 가치를 내뱉을 수 있을까. 혹은 우리 자신이 타인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무릅쓸 만큼, 그렇게나 이타적인 사람들이었던가. 미야자와 겐지는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100년이 흘렀음에도 세계는 전부 행복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개인의 행복마저 점점 멀어져만 간다. 가혹하더라도, 그의 말의 해결책이 정말 희생뿐인 걸까.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이야기를 꿈꾼다면, 이것이야말로 너무도 동화적인 생각인 걸까. 시야를 넓혀 ‘희생’이라는 가치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은하철도의 밤]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영상미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은 이렇게 한없이 심오한 작품이다. 내내 어둡고, 무겁고, 다소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 속에도 반짝거리는 빛은 존재한다. 슬픔에 잠겨 언덕에 앉아 있던 조반니가 밤하늘 별을 바라봤고, 기차에 올라탄 이들의 어깨에 붙은 먼지가 별빛이었으며,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은하철도가 무수한 별빛을 쏟아냈다. 가장 따뜻하고 환상적인 인사였다. 모든 죽음이 그저 영원한 안녕이라 해도, 그들이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에는 감히 낭만을 부여하고 싶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그래야만 남아 있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