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배우 줄리안 무어의 트레이드 마크는 ‘비밀스러운 마스크’일지도 모르겠다. 줄리안 무어는 우울하면서도 내면에 감춰진 비밀이 많을 것 같은, 많은 사연을 감춘 듯한 마스크 덕분에 반전이 있거나, 묵묵히 거친 서사를 감내하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보기만 해도 궁금증을 일으키는 얼굴이라니, 배우로서 축복임에 틀림없다. 바꿔 말하면 스릴러나 반전 영화에서는 무조건 그를 주목해야 한다.

‘메이 디셈버’의 줄리안 무어(오른쪽).

우리는 줄리안 무어의 신작 [메이 디셈버]에서 그 비밀스러운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메이 디셈버]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 평점을 기록하였고 8분간의 기립박수까지 이끌어냈다고 한다. 하루빨리 국내에서 만나길 바랄 정도다. 나탈리 포트만과 줄리안 무어의 만남뿐 아니라,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 감독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프로듀서 소피 마스가 참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개봉에 앞서, [메이 디셈버]의 주역 줄리안 무어가 지나온 시간들을 살펴본다. 보고만 있어도 비밀이라는 것이 폭발할 그의 비주얼과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영화에 동화시키는 연기까지, 줄리안 무어의 대표작을 만나보자.

부기 나이트 (1997)

엠버 웨이브스/매기 역
이미지: 뉴라인 시네마

1970년대 포르노 산업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을 그려낸 [부기 나이트]. 디스코, 포르노, 마약 등의 파티로 밤을 새우며, 방탕하고 퇴폐적일지언정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던 1970년대 말. 특별한 ‘물건’을 가진 열일곱 살 청년 에디 애덤스(마크 월버그)는 포르노 배우 ‘덕 디글러’로서의 화려한 포르노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출세작인 [부기 나이트]는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시대의 공기를 생생히 전달한다. 또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만큼 당대 유행하던 춤, 음악, 패션, 파티 분위기 등을 잘 재현하여 시대 묘사가 탁월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줄리안 무어는 실존 인물 ‘베로니카 하트’를 모티브로 취한 베테랑 배우 ‘엠버 웨이브스’ 역할을 맡았고, 이 작품으로 생애 첫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한니발(2001)

클라리스 스탈링 역
이미지: UIP코리아

10년 전,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간다’며 유유히 사라진 한니발 렉터의 부활을 그린 영화 [한니발]. 범죄 스릴러 소설 「한니발 렉터」 시리즈 4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이며, 영화 [양들의 침묵]의 10년 후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교활하고 잔혹한 살인마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한니발과의 관계에 대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클라리스 스탈링(줄리안 무어), 한니발에게 복수를 꿈꾸는 희생자 메이슨 버거(게리 올드먼)의 만남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살벌한 사건이 펼쳐진다. 줄리안 무어는 조디 포스터에 이어, 렉터의 영원한 뮤즈인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 역할을 맡았다.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을 연출한 거장 감독 리들리 스콧과 안소니 홉킨스, 게리 올드만, 줄리안 무어의 시너지가 빛나는 작품이다.

디 아워스(2002)

로라 브라운 역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처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여인의 하루 동안의 삶을 그린 영화 [디 아워스]는 1999년 퓰리처상 수상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는 로라(줄리안 무어),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래리사(메릴 스크립). 이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어떤 이미지로든 모두 연결되어 있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세월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파 프롬 헤븐(2002)

캐시 휘태커 역
이미지: 킬러 필름스

자상한 남편과 우아한 아내의 서로 다른 사랑을 그린 영화 [파 프롬 헤븐]. 누가 봐도 행복하고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캐시’(줄리안 무어)가 우연히 남편의 비밀을 알게 돼 혼란스러워하던 중, 새로 온 정원사와 가까워지며 그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된다. 줄리안 무어는 사랑하는 남편과 굳건한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자 분투하는 캐시 역할을 맡았고, 이는 1995년 영화 [세이프]에 이은 토드 헤인즈 감독과의 두 번째 협업이었으며 이후 [아임 낫 데어] [원더스트럭] [메이 디셈버]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줄리안 무어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자신의 커리어 역사에서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눈먼 자들의 도시(2008)

의사 아내 역
이미지: 싸이더스

전 인류가 눈이 먼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사람들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눈먼 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정부는 그들을 병원에 격리 수용한다.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먼 자처럼 행동하는, 앞을 볼 수 있는 한 여인(줄리안 무어)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병동에서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한다. 홀로 앞을 볼 수 있는 여인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세상의 섬뜩한 공포를 섬세하게 전달했다.

스틸 앨리스(2014)

앨리스 하울랜드 역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앨리스’의 마지막 시간을 그린 영화 [스틸 앨리스].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어느 날 자신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소중한 시간들 앞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줄리안 무어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언어학 교수 ‘앨리스’ 역할을 맡아 굉장한 열연을 펼쳤다. 이를 통해 고대하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의 쾌거를 안으면서, 배우로서 받아 볼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은 배우에 올랐다. 이 기록은 향후 100년간 깨지지 않을 기록이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