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송강호의 차기작 ‘거미집’ 이미지:  ㈜바른손 스튜디오

배우 송강호는 1990년대 말 영화계에 데뷔해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독보적인 장악력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그가 주연을 맡은 김지운의 감독의 신작 [거미집]이 제76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송강호는 통산 8번째 칸 진출에도 성공했다. ‘칸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송강호의 강점이라면 탁월한 애드리브와 표현력으로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며, 별것 아닌 듯한 대사도 명대사로 만든다는 것이다. 아래 작품들에서는 특히나 그의 강점이 빛을 발하였다. 송강호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며, 그가 남긴 강렬한 명대사들까지 만나본다.

밥은 먹고 다니냐?

살인의 추억(2003) / 박두만 역
이미지: 싸이더스

1986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를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봉준호와 송강호는 이 작품에서 처음 합을 맞췄다. [살인의 추억]은 영화적 재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정적 파장까지 일으켰던 작품이다. 송강호가 연기한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은 어둡고 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박두만은 범인을 잡지 못했고, 가장 의심스러웠으나 물증이 없는 마지막 용의자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짧은 말을 남긴다. 송강호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이 명대사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송강호는 ‘이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라는 의미를 담은 대사였으며, 실제 범인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짧은 대사는 여전히 송강호의 대표적인 명대사로 꼽힌다.

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

괴물(2006) / 박강두 역
이미지: 영화사 청어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맞서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는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괴물]. 갑작스러운 괴물의 출현으로 한강은 모두 폐쇄되고, 도시 전체는 마비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강두는 한강 어딘가에 있을 딸 ‘현서’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살인의 추억]의 배우와 제작진이 다시 한번 뭉친 작품으로, 봉준호와 송강호에게는 첫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다. 송강호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괴물 같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가 연기한 ‘박강두’는 나이에 비해 철이 없는 현서의 아빠로,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처절하게 싸울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라는 대사는 어리숙한 박강두 캐릭터를 잘 설명하면서도, ‘괴물’을 마주한 생존자들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가장 잘 표현했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우아한 세계(2007) / 강인구역
이미지: 루씨필름

바로 내 이웃일 수도 있는 평범한 가장의 치열한 일상을 그린 영화 [우아한 세계]. [연애의 목적], [관상], [더 킹] 등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작품으로, 가족에 살고 가족에 죽는 대한민국 가장들의 세계를 그린 ‘생활 느와르’ 영화이다. 송강호가 연기한 ‘강인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조직 생활을 이어가는 생계형 조폭 아빠로, 직업만 남다른 아주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풀밭에서 몸싸움을 하는 부하와 적들을 보며 “아름답다, 아름다워”라는 역설적인 말을 뱉는다. 직설적이었던 원래의 대사를 비틀어서, 영화의 주제까지 살려낸 이 명대사 또한 송강호의 탁월한 애드리브였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변호인(2013) / 송우석 역
이미지: 위더스필름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변’의 사투를 그린 [변호인]. 웹툰 작가였던 양우석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는 [변호인]을 통해 한국 역사상 최초 천만 영화로 데뷔한 감독이 되었다. 영화는 국내 법정 영화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감독상, 작품상을 휩쓸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며,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공판에 뛰어든다. 영화 초반에는 “계란 아무리 던져 봐라, 바위가 뿌사지나”라며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겪으며 인권에 눈을 뜨게 된다. 마지막에는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마침내 정의롭고 강직한 변호사로 거듭난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택시운전사(2017) / 김만섭 역
이미지: ㈜쇼박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와 함께 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 [택시운전사].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위르겐 힌츠페터와 김사복, 광주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박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장훈 감독과 송강호가 [의형제]에 이어 재회한 작품이며, 이 작품 역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송강호가 연기한 ‘만섭’은 유쾌하고 생활력 강하며 인간적인 택시운전사로,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덜컥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1980년 5월의 광주의 참상을 차마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고 말한다. 택시운전사로서의 책임과 인간적인 도리를 지키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이 명대사는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생충(2019) / 김기택 역
이미지: 바른손이앤에이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과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을 그린 영화 [기생충].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현실과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 선 비판을 담아낸 작품이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네 번째로 봉준호 감독과 합을 맞췄다. 17년 동안 함께 해온 두 사람의 시너지가 빛을 발한 [기생충]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또한 칸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의 대중과 평단까지 모두 사로잡았다. 이로써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이제는 세계도 송강호가 봉준호의 페르소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기택’은 전원 백수 가족의 가장으로, 가족들의 평범한 삶과 공생을 위해 엉뚱한 범죄를 계획하지만 이는 결국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어설프고 애잔한 기택이 잠시나마 희망을 엿보았을 때 내뱉었던(그리고 이후 또 다른 중요 대사와도 이어지는)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은 [기생충]의 명대사로 꼽힌다.

뽕뽀로봉봉봉과 쏭쏘로송송송의 만남은 늘 이렇게 성공을 거둔다 이미지: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