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가 많지만, 따져보면 의사나 변호사 혹은 그 비슷한 범주가 대부분이다. MBC 금토드라마 [넘버스: 빌딩숲의 감시자들] (이하 ‘넘버스’)은 생소하게 회계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K-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은 도전, 하지만 걱정도 크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어렵고 낯설지 않을까? 다행히 그런 걱정은 접어도 괜찮겠다. 매화마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웬만한 스릴러 못지않은 재미를 주고 있으니깐. 과연 무엇이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하는지 살펴본다.

숫자 뒤에 숨겨진 욕망과 소신의 대결

[넘버스]는 고졸 출신 회계사 장호우(김명수)가 거대 회계법인의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아인 호우는 해빛건설 사장 인호 덕분에 잘 성장하고 사회로 첫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나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어느 날, 태일회계법인이란 곳에서 해빛건설을 청산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들고 나타난 뒤 호우의 은인인 인호는 자살을 하고, 주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이 일로 태일회계법인에 분노를 느낀 호우는 회계사가 되어서 해빛건설 청산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드라마는 숫자에 목숨 거는 이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회계사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만 본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평가는 숫자로만 끝나지 않는다. 회계사의 손에 한 회사의 미래와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과 주주 등 사람들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있기에 회계사를 공정하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인회계사’라고 부른다. 드라마는 이 같은 회계사의 세계와 더불어 숫자 뒤에 숨은 음모와 이를 파헤치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펼쳐낸다. 사적 이익을 위해 직업의 소명을 버린 자, 어떤 외압에도 소신을 지키며 공인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 등 다양한 캐릭터의 갈등과 충돌을 그리며 오피스 드라마의 재미를 전한다.

원수야? 브로맨스야? 묘한 긴장감과 라이벌 의식으로 빚어내는 케미스트리

이미지: MBC

[넘버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원수로 만나 공동의 목표로 하나가 되는 두 남자의 브로맨스다. 인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고자 태일회계법인에 입사한 장호우와 그를 뽑은 시니어 매니저 한승조(최진혁)가 그 주인공이다.

호우와 승조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해빛건설의 해체 현장 때 나타난 회계사가 바로 승조였기 때문이다. 회사 철거장에서 난동을 피우던 호우에게 “너의 분노는 아무런 힘도 없는 한낱 의견에 불과하다”라고 충고한 것도 승조다. 하지만 호우가 그 말에 무너지지 않고 회계사가 되어 태일회계법인에 입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원수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로 나아간다. 사실 승조는 같은 회사의 부대표로 있는 아버지 한제균(최민수)의 욕망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회계사로서 명예를 잃었다. 아버지의 아성을 무너뜨릴 파격적인 인물이 필요했던 승조는 호우와 손을 잡고 목적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로 향해간다.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여러모로 극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언제나 씩씩하고 친절한 호우와 달리 승조는 차갑고 냉정하다. 둘의 대조적인 성격 때문에 빚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두 사람의 상반된 방식도 흥미롭다. 호우가 거침없는 행동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판을 뒤집는다면, 승조는 호우를 지원하면서 대항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준다. 이렇게 형성된 멘토-멘티의 시너지는 훈훈함을 자아낸다. 항상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려울 땐 가장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는 혐관 브로맨스는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한다.

어렵지만 사실감 넘치는 회계 유니버스

이미지: MBC

드라마는 회계사의 주 업무인 기업의 가치를 숫자와 용어로 표현한다. 때때로 어려운 경제 용어와 숫자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자막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기업 매수와 매도의 고민을 금전적 가치와 회계 보고서로 명확하게 나타내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인다. 호우와 승조는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의 가치를 조작하는 이들의 노림수를 확실한 자료와 논리로 깨뜨린다. 기업 간의 암투를 그린 드라마는 많다. 하지만 [넘버스]만큼 직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비즈니스를 치열하게 그린 작품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호우와 승조의 활약상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경제, 경영에 대한 상식이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넘버스]는 회계사라는 진입장벽이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피스 드라마의 재미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여러 캐릭터들의 욕망과 가치가 충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역시 회계사를 비롯한 현대 경제 사회 전반의 명암을 알기 쉽게 묘사해 작품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게 한다. 숫자 뒤에 감춰진 기업의 가치, 더 나아가 사람의 가치를 담아낼 드라마의 남은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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