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를 보면 [토이 스토리]와 [레고 무비]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장난감이었던 이들이 나름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자신들을 움직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과정이 비슷하다. 다만 두 작품에 비해 [바비]는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다. 외부 세계를 마냥 위협으로 인식하지 안고, 오히려 지금의 바비월드를 바꿀 중요한 키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이 점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로 다가온다.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의 핑크빛 로드무비 [바비]는 어느 순간 죽음과 우울을 인지한 바비가 실제 세상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행복 가득했던 바비월드를 떠나 실제 세상을 보면서 겪는 문화충격과 좌충우돌을 코믹하게 담아낸다. 특히 바비와 켄(라이언 고슬링)이 이곳 사람들과는 딴판인 복장과 화법으로 부딪히는 모습이 백미다.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바비]의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펼쳐진다. 현실 세계가 바비랜드와 완전히 다른 곳임을 알게 된 바비와 켄은 저마다의 목적으로 자신의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바비가 바라봐 주지 않으면 자신은 존재 가치조차 없다는 켄은 현실 세계의 가부장제도를 가져와 권력을 노린다. 바비 역시 원래 의도와 다르게 왜곡되고 폄하된 자신의 가치에 실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이후부터 바비랜드는 이 세상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켄들과 바비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얼룩진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소개가 이런 만큼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역차별 등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다만 이걸 무겁거나 부담스럽게 다루지 않고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다. 상황은 코믹하면서도 그 안에 함축된 의미는 꽤 날카롭다. 궁극적으로 편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품는 영화의 사려 깊은 태도도 돋보인다.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이 같은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극중 바비의 가장 전형적인 타입이라는 마고 로비는 자신의 생각과 달랐던 현실 세계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좌절과 시행 착오도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인형이 아닌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한다. 그런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마고 로비의 연기는, 단순히 바비 인형과 싱크로율이 높아서 캐스팅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라이언 고슬링 역시 현실 세계의 가부장제도를 바비랜드로 들고 와 혼란을 일으킨 빌런 켄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특유의 느끼하고도 오글거리는 퍼포먼스로 웃음을 자아내고,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는 모습도 유쾌하게 그린다. 이 과정에서 빚어내는 뮤지컬은 코믹하면서도 켄의 애환을 잘 드러내어 영화에 더욱 빠지게 한다. 개봉 전 미스캐스팅이라는 논란을 자신의 연기력으로 기분 좋게 날려버린다.

전체적으로 [바비]는 현실과 동 떨어진 세계를 그리면서도 지금 우리 사회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경쾌하게 담아낸다. 웃기면서 뼈 때린다고 할까? 생각보다 더 난장판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같은 인터넷 밈으로 쉽고 재밌는 실존주의 철학 강의를 들은 느낌이다. 얼핏 어울리기 힘든 소재와 주제를 유쾌하면서도 의미 심장하게 담아낸 영화의 야심이 인상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