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경쟁작보다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곧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3주 만에 역전했고, MBC 금토드라마로는 오랜만에 두 자리 시청률을 기록했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니, 장르물, 미스터리 요소를 더한 로맨스, 자극적인 컨셉의 드라마가 가득한 요즘엔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면서, [연인]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드라마가 되었다.

출처: MBC

1636년, 능군리라는 마을에 이장현이라는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연애는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일명 ‘비혼’주의자인데, 그 마을에서 젊은 남자들은 모두 홀리고 다닌다는 양반댁 아가씨 유길채에게 첫눈에 반한다. 한편 길채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남연준이라는 도령을 짝사랑했다. 연준은 길채의 오랜 친구인 경은애와 혼인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길채는 연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조급해한다. 장현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 길채의 주위를 맴돌고, 길채는 장현의 존재감을 점점 느끼는 상황이 불편하다. 청나라가 침략하고 왕이 남한산성에 갇히자, 유생들은 ‘왕을 위해’ 싸우고자 할 때 장현은 길채와 자신에게 친절했던 능군리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든다. 전쟁을 겪고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장현과 길채 모두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는다. 길채는 어린 날의 추억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장현은 자신이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아간다.

[연인]은 황진영 작가가 밝히었듯이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스칼렛과 레트는 길채와 장현이, 애틀랜타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능군리가 되었고, 두 주인공의 관계는 소설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듯 비슷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아닌 조선, 특히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삼으며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특히 [연인]은 드라마의 중심에 왕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근 제작된 병자호란 배경 사극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다른 작품이 주로 남한산성 항전 자체나 소현세자가 볼모 생활을 마친 후 아버지와 갈등하는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 드라마는 왕의 두려운 얼굴 대신 목숨을 걸고 싸운 병사들, 살아남고자 발버둥 친 길채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외에도 청나라 군대에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첩보전, “그랬다더라.”로만 그려졌던 소현세자의 볼모 생활도 에피소드 구성의 한 축으로 삼아서 이전에는 잘 보지 못했던 전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출처: MBC

그래도 [연인]은 제목처럼 마음을 울리는 사랑이 중심이다. 장현과 길채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위기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비록 속도는 달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끝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첫 만남 후, 둘은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로 마음을 할퀴어 대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먼저 생각나고 의지하는 존재가 된다. 이야기는 이를 주축으로 다양한 요소를 끌어들여 밥상을 차려놓는다. 연인의 사랑이라는, 모두가 관심 가지고 매혹될 만한 이야기에 개인의 상처, 전쟁의 비극, 역사의 슬픔 등 다양한 요소를 더해 마음을 울릴 이야기를 빚어낸다.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유려하게, 또는 박진감 있게 만들어낸 연출과 제작 역량도 빛나지만, 이 드라마를 완성하는 건 배우의 연기다.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가운데, 장현과 길채 역의 남궁민, 안은진은 기대만큼, 또는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안은진의 연기를 통해 마냥 어리고 철없는 애기씨였던 길채가 고난을 이겨낸 어른, 사랑을 아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 희열이 느껴진다. “대상 배우” 남궁민은 다시 한번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 장현은 권태로워 보이지만 열정적이고, 냉정하지만 심장은 뜨겁고, 한없이 이기적인 듯한데 결국 ‘옳음’을 택하는, 다면성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웬만한 연기 내공으로는 그리기 힘든 인물을 탁월하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걸 보면서, 이젠 그의 연기에 매번 놀라는 게 놀랍지 않다.

20부작으로 기획된 [연인]은 10편으로 구성된 파트 1을 마치고, 잠깐 휴식한 후 파트 2로 돌아온다. 아직 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심양에 가 있는 장현은 언제 돌아오는지, 위기에 빠진 길채가 어떻게 집안을 건사하며 그 시대 양반가 여성들의 틀을 깨버릴지, 비겁하고 유약한 연준과 아직 부당한 관습의 틀에서 못 벗어난 은애는 행복할 것인지, 그리고 이미 비극으로 끝날 걸 아는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두 연인의 사랑에 어떤 위협을 가할지 궁금하다. 마구잡으로 뻗어나가는 상상의 나래를 잠깐 붙잡은 채 제작진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파트 2는 언제 시작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