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을 벗어났고,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직도 각종 마약은 손쉽게 유통되고 있고,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은 괴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중심에 10대 청소년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 가장 참담한 일이다.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마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중에서도 아래 영화들은 한순간의 쾌락보다 긴 고통을 담아낸다. 마약 중독이 한낱 개인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삶과 사랑을 망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트래픽] (2000)

교묘하게 얽혀 있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그린 [트래픽]. 황색 희뿌연 모래바람처럼 부패로 덮여있는 멕시코 국경부터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마약 소비의 도시 오하이오, 풍요와 평화의 이면에서 성행하는 마약 밀거래의 도시 샌디에고까지. 마약을 밀거래하는 마약상들과 그들을 추적하는 마약단속국, 이를 복용하는 소비자들은 가깝고도 먼 사이로 얽혀 있다.
[트래픽]은 칸 영화제 역대 최연소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독특하고 야심찬 영화이다. 미국 사회에 퍼진 마약 문제를 진지하게 지적하여 최고의 마약 비판 영화로도 꼽힌다. 윤리적 문제들을 흑백으로 갈라서 다루려 하는 대신, 뚜렷한 선인들이 없는 회색에 가깝게 풀어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약 문제를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접근하는 동시에, 마약 퇴치가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지를 깨달은 감독의 허무함도 느껴진다.
[사생결단] (2006)

한탕을 꿈꾸는 마약 중간 판매상과 미치광이 형사의 사투를 그린 [사생결단]. 1998년 항구 도시 부산, 마약 중간 판매상 ‘이상도’(류승범)는 3만 명의 고객이 우글거리는 황금 구역을 관리하며 폼나게 인생을 즐긴다. 그러나, 마약계 거물을 잡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형사 도경장(황정민)은 잘나가던 상도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건다. 각자의 먹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던 두 남자의 사생결단은 결국 예상치 못했던 최후를 향해 달려간다.
황정민, 류승범 주연의 [사생결단]은 최초로 마약 세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에 현미경을 들이댄 영화이다. 1998년 IMF 이후,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들며 약과 환락의 도시가 된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화려한 광안대교와 유명한 광안리, 해운대가 아닌 이름 모를 밤거리, 달동네, 폐공장이 주로 등장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산의 음습하고 감추어져 있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기에 철저한 현장 취재를 통해 제조, 유통, 판매 등 리얼한 마약의 세계를 묘사했다. 생생한 리얼리티와 더불어 영화의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은 웰메이드 작품이다.
[마약왕] (2017)

국가는 범죄자, 세상은 왕이라 불렀던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약왕].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 대한민국, 하급 밀수업자였던 ‘이두삼’(송강호)은 마약 제조와 유통 사업에 본능적으로 눈을 뜨게 된다. 뛰어난 눈썰미, 빠른 위기대처능력, 신이 내린 손재주로 단숨에 마약업을 장악한 이두삼은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와 손을 잡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백색 황금의 시대를 열게 된다. 한편, 마약으로 인해 세상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승승장구하는 이두삼을 주시하는 ‘김인구’(조정석)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약왕]은 대한민국의 찬란했던 암흑기를 배경으로, 마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두삼’의 일대기를 그린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과 함께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으로 불리며, 감독 특유의 차갑고 폭력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오직 권력과 욕망을 위해 움직이며, 마약과 성공에 취해 주변인들을 모두 쳐내고 파멸하는 이두삼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뷰티풀 보이] (2018)

중독으로 죽음의 문턱에 선 아들과 이를 구한 아버지의 감동적인 실화를 그린 [뷰티풀 보이]. 아름다운 소년 닉은 열렬한 독서가이자 재능 있는 예술가이며 운동을 좋아하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12살 때 약물에 손을 대고 어느새 중독자가 되었다. 아들의 중독이 자기 때문이 아닐까 자책하던 아버지 데이비드는 눈물을 흘리며 포기하는 대신, 세상의 전부이자 모든 것인 아들 닉의 손을 끝까지 붙잡는다.
스티브 카렐,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뷰티풀 보이]는 기자인 데이비드 셰프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경험을 할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책 출간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흥을 주었고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중독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소년은 안타깝지만, 수없이 재발을 반복하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구해내려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독전] (2018)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둘러싸고, 독한 자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범죄 액션 영화 [독전]. 의문의 폭발 사고 후, 오랫동안 마약 조직을 추적해온 형사 ‘원호’(조진웅)의 앞에 조직의 후견인 ‘오연옥’(김성령)과 버림받은 조직원 ‘락’(류준열)이 나타난다. 그들의 도움으로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김주혁)과 조직의 숨겨진 인물 ‘브라이언’(차승원)을 만나게 되면서 그 실체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잡게 된다.
조진웅, 류준열 주연의 [독전]은 두기봉 감독의 홍콩 영화 [마약전쟁]을 이해영 감독이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산역은 극중 마약 제조 공간이 되었고, 사연을 끌어안은 농아 남매는 허름한 소금공장에서 마약을 제조하고 있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마약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흔한 택배처럼, SNS로 손쉽게 유통되는 마약은 경각심을 느슨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간단한 마약이 제조되고 유통되는 과정, 그리고 쫓고 쫓기는 마약 조직과 경찰청의 사투를 목격한다면 마약의 위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강렬한 비주얼로 담아낸 [독전]의 2편은 2023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