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진 입매와 깊은 눈망울, 출중한 액션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 샘 워싱턴은 [아바타] 시리즈의 주연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잘생긴 외모 덕에 바로 스타덤에 올랐을 것 같지만, 그가 처음부터 주연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호주에서 단역으로 시작한 샘 워싱턴은 자국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점차 입지를 넓혀갔으나, 데뷔하고도 수년간 미미한 인지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의 외양과 연기는 쉽사리 묻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샘 워싱턴은 [007 카지노 로얄] 오디션을 보게 된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해당 역할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돌아갔지만. 그렇게 원석으로 남을 뻔한 샘 워싱턴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은 다름 아닌 [아바타]였다.
[아바타]의 역대급 성공 이후 샘 워싱턴은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했다. 얼핏 보면 샘 워싱턴은 그저 잘생긴 배우라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연기를 보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마침 샘 워싱턴의 최신작 [시뮬런트]가 개봉한 만큼, 전작 5편을 통해 그의 끝 모를 매력을 살펴본다.
아바타(2009) & 아바타: 물의 길(2022)

[아바타]는 가까운 미래, 하반신 마비의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가 아바타 신체 접속 실험을 통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목적은 지구의 에너지 고갈을 해결할 자원을 채굴하는 것. 이를 위해 제이크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의 무리에 침투한다. [아바타]는 제이크가 전사 네이티리와 교감하며 나비족과 동화되는 과정을 그려내며 무려 5부작으로 기획된 ‘아바타’ 시리즈의 초석을 다진다.
명실상부 샘 워싱턴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화로 꼽히는 [아바타]. 샘 워싱턴은 나약하고 이기적인 제이크가 위기를 겪으면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주인공 제이크는 인간과 나비족의 외형을 오가며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신체적 전환과 결합된 정체성 혼란이 핵심인데, 샘 워싱턴은 그러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그 결과 샘 워싱턴은 평론단의 호평을 받으며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그는 13년 만에 개봉한 속편 [아바타: 물의 길]에서 남다른 부성애를 보여주며 제이크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타이탄(2010)

반신반인 영웅 페르세우스가 절대적인 힘을 얻기 위해 금지된 땅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판타지 액션 영화 [타이탄]. 신들의 왕 제우스와 지옥의 신 하데스 간에 일어난 전쟁으로 세상에는 극심한 혼란과 고통이 찾아온다. 이에 제우스와 인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와 전갈 괴물, 해저괴물 크라켄과 맞서 싸우면서 점차 신들의 세계에 가까워진다.
[타이탄]은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신화를 혼합하여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걸맞은 서사를 빚어냈다. 샘 워싱턴은 어부에게 입양되어 평범한 인간으로 자랐으나, 운명에 따라 영웅으로 거듭나는 페르세우스를 연기했다. 페르세우스는 거듭된 위기와 목숨 건 전투를 치르면서 자신의 몸에 깃든 신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타이탄]에서는 샘 워싱턴의 필모를 통틀어서 가장 거칠고 역동적인 액션을 볼 수 있다. 한편 샘 워싱턴은 페르세우스를 흔한 영웅이 아닌 반항적인 청년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온전히 인간이라 인식하며, 정의 대신 분노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그의 해석은 단순한 선악구도보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구도를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헌터스 프레어(2017)

영화 [헌터스 프레어]는 전문 킬러인 루카스가 표적인 소녀를 죽이는 대신 보호하기로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군인이었던 시절 기억으로 인해 PTSD를 앓는 루카스. 현재는 약물중독이 되어 고용주가 제공하는 마약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에게 비밀계좌를 소유한 소녀를 암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딸이 떠올라 차마 죽일 수 없었던 루카스는 소녀를 보호하기로 선택하고, 그들을 노리는 자들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샘 워싱턴은 복잡한 내면을 지닌 용병 루카스를 연기했다. 루카스는 악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선역도 아닌 인물이다. 때로는 소녀를 향해 연민을 보내다가 금단 현상이 나타나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급히 마약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어딘가 뒤틀리고 이중적인 루카스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샘 워싱턴의 연기력 때문이다. 그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압도하면서 동시에 처연한 눈빛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루카스는 과묵한 성정이라 대사가 많지 않은데,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바로 액션이다. 사실 [헌터스 프레어]는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구조가 단순하여 예측가능 하지만, 샘 워싱턴의 빈틈없는 액션과 사연 있는 눈빛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오두막(2017)

[헌터스 프레어]와 같은 해 개봉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 [오두막]. 가족 여행 중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는 남자 ‘맥’에게 딸이 살해당한 오두막으로 오라는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분노와 의심, 그리고 복수심으로 타오른 맥은 권총을 챙겨 오두막에 도착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허탈해한다. 그 순간, 눈으로 뒤덮인 산이 푸르른 숲으로 변하고 편지의 주인이 맥 앞에 등장한다.
샘 워싱턴은 딸의 죽음 이후 삶의 목적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아버지를 연기했다. 감정과 대사를 절제한 [헌터스 프레어]와 달리 샘 워싱턴은 [오두막]에서 경탄과 순수함, 원망과 반항심 등 다양한 감정을 마구 표출한다. 맥은 오두막에서 하나님, 예수, 성령을 만나 ‘신은 어째서 악을 방치하는지’ 등 자신을 옥죄던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며 상처를 치유한다. 샘 워싱턴은 고통에 몸부림치던 인간이 점차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무엇보다 뛰어난 감정 연기로 영화에 깊이감을 더하며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랙처드(2019)

사고로 다친 딸이 병원에서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 영화 [프랙쳐드]. 귀성길에 잠시 들른 주유소에서 딸 ‘페리’가 사고로 골절을 당하자 레이는 아내 조앤과 응급실에 들른다. 함께 검사실로 이동하는 페리와 조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레이는 직원에게 둘의 행방을 묻지만, 돌아오는 건 방문 기록이 없다는 충격적인 대답뿐이다. 이에 레이는 아내와 딸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샘 워싱턴은 예민하지만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레이’로 분했다. 의사와 진찰을 마치고 추가 검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한 딸과 아내가 사라진 기이한 상황. 직원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다그치지만 이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프랙처드]는 온전히 레이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샘 워싱턴은 불신과 혼란으로 공황에 빠져드는 남자를 절절하게 연기했고, 병원이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끌어간다. 배경이 병원으로 제한되어 극이 힘을 잃을 때도 있으나 샘 워싱턴의 강한 존재감이 시선을 다시 극으로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