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의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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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8 12: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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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는 '정의'란 키워드로 <왕좌의 게임> 시즌 1을 관통하는 대립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회에선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인 '법'이 <왕좌의 게임>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죠.

흥미로운 점은 에피소드 6인 에서 두 개의 재판 씬이 킹스랜딩과 에이레 각각 다른 공간에서 병치되어(juxtaposed) 연속적으로 전개됩니다.

상황은 케틀린이 티리온을 억류하여 스타크와 라니스터간의 분쟁이 촉발되었고 그 반응으로 제이미는 왕의 핸드인 네드를 습격하고 달아납니다.  

에이레에서는 존 아린을 살해한 혐의로 티리온을 피고로 둔 재판이 행해지는 동시에

킹스랜딩에선 왕의 직무대리를 하는 핸드로써 네드가 리버랜드 지역에서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고 다니는 '마운틴' 그레고르 클레게인에 대한 판결이 내리게 되죠.

 

먼저 재판은 에이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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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레로 붙잡혀서 감옥에서 억류생활을 하던 티리온은 꾀를 내어 간수를 구슬려 자신의 죄를 고백하겠다며 라이사와 로빈을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티리온은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를 부인하면서 도대체 왕의 정의(King's Justice)는 어디있냐며 재판을 요구하죠.

라이사는 재판에 들어가서 유죄로 판결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물으면서 베일 지역 고유의 처형방법을 보여주며 티리온을 위협하죠.

베일의 현재 영주인 로빈(당시 한국나이로 9살쯤?)이 피고의 진술을 듣고 판결을 내리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가 죽는 꼴을 보고싶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상이 아닌것 처럼 보이는 어린애한테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까요?

당연히 티리온은 판결내리느라 수고할 것 없고 '결투에 의한 재판'(trial by combat)을 요구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웨스테로스의 각 지역의 감시자(warden)들은 왕의 정의를 대신하여  

자신의 지역에 사법권을 가지고 있으며 피의자는 재판과 그 형태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의자의 신분이 고귀한 가문의 태생인 티리온이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권력이 있는 지역이 아닌 적대 지역에서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 자가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결투에 의한 재판'을 요구했고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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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티리온을 억류해서 동생이 있는 베일까지 데려간 케틀린의 입장에서보면 어떨까요?

당연히 재판이 달갑지 않았을 겁니다. 재판이 있다는 것은 무죄라면 풀어줘야 하고 유죄라면 사형인데  

그 어느 쪽도 인질로써의 티리온의 가치를 보전하는 방법이 되지 못하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결과적으로 네드 스타크의 몰락을 초래하게 된 케틀린의 티리온 납치를 엄청난 민폐 짓으로 생각하는 듯 한데요. 저는 꼭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윈터펠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티리온을 납치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을 염두에 둔 행동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겠죠.  

하지만 에피소드 6의 첫장면에서 제이미의 습격으로 부상을 입은 네드가 아내가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아냐는 왕비의 추궁에

모두 자기가 시켜서 저지른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적어도 이 부부 사이에서는 굳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어차피 존 아린의 살해 의혹, 브랜이 불구가 된 사건을 라니스터 가문의 짓으로 강한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케틀린은 자신의 납치행위를 핸드의 위치에 있는 네드가 왕궁에서의 파워게임에 영향력(leverage)으로 사용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킹스랜딩에서의 재판 씬에서 네드가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판결에 임하게 되는 것이겠죠.

 

물론 케틀린에게 잘못이 있다면 티리온 납치 후 나름 꾀를 내어서 추적자를 따돌리며 동생이 있는 베일로 갔다는 점,  

그리고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는 점이겠죠.  

물론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티리온을 계속 억류해 놓았다면 로버트 사후의 권력싸움에서 네드가 그토록 허무하게 지지세력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누군가는 나중에 반복하게 되죠. 그 사건은 <법과 정의> 마지막 편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어지는 재판 씬은 킹스랜딩의 왕의 접견실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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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는 제이미의 습격으로 입은 부상을 치료하면서 사냥을 떠난 로버트 왕 대신에 철왕좌에 앉아서 왕무를 집행합니다.

그러면서 아내인 케틀린의 친정인 리버랜드 지역에서 온 농민들의 고발을 접하게 됩니다.  

엄청난 거한의 기사가 이끄는 병사들이 농민들을 습격하여 부녀자와 아이들을 겁탈하고 죽이고 재산을 불태우고 다니면서

리버랜드의 영주인 툴리 가문의 문장(sigil)인 물고기를 남겨놓고 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기사는 타이윈 라니스터의 '개'로 알려진 마운틴이었죠. 

 

물론 이 사건도 케틀린의 티리온 납치로 인해 일어나게 된 일이겠죠.  

라니스터 가문의 입장에서는 납치행위에 대한 응징을 직접적으로 스타크 가문을 상대로 하는 것은  

인질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도 문제가 생기고(하지만 제이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본격적인 대립, 즉 전쟁을 위해서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분쟁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무고한 케틀린의 친정 가문을 공격한 것이죠.

공격 방법의 잔혹함과 비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상대방에게 압박을 넣는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네드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분노는 바로 판결으로 표출되구요.

네드는 사랑하는 사람과 재산을 잃은 농민들에게 잃어버린 것을 되돌려 줄 수는 없지만 정의는 줄 수 있다며 판결을 내립니다. 

판결은 마운틴 그레고르 클레게인과 그 하수인들에게는 사형, 그를 기수로 두고 있는 서부의 감시자 타이윈 라니스터에게는 해명을 위해 소환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판결을 내리게 된 근거는 로버트 왕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점 그리고 라니스터의 인질을 붙잡고 있다는 자신감이었겠죠.

물론 그 판결 직후에 그 두 가지 근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줄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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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드가 내린 판결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법이 있고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죠. 네드가 내린 판결엔 강제력이 부족했습니다.

베릭 돈다리온 경이 이끄는 100명의 병사가 라니스터 가문을 뒤에 업고 있는 마운틴에게 과연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 덕분에 베릭 돈다리온은 몇 번이나(?) 마운틴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는지.... ㅠㅠ 

그리고 로버트와 미친왕에 대한 반란을 함께 하면서 누구보다 타이윈 라니스터의 교활함에 대해서 잘 알았을 네드가

과연 타이윈이 순순히 해명을 위해서 킹스랜딩으로 출두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출두하지 않으면 반역자이기 때문에 왕국의 반역자로 낙인찍고 자신이 왕의 핸드로써 반란을 일으킨 라니스터를 제압할 생각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왜 반란을 제압할 전쟁을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타이윈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는데 말이죠.

바로 이 부분이 지난 회에서 언급한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면 그냥 믿지 말고 승리할 계획을 짜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라는 점과 연관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앞서의 티리온의 재판과 다르게 마운틴에 대한 재판은 피고가 변론할 기회도 없이 원고의 고발만 가지고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습격 당해서 큰 부상을 입은 것과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악행에 대한 네드의 분노가 드러나는 장면인 동시에 

이 사건을 빌미로 빠른 시간내로 라니스터에 대한 전략적인 그리고 명분적인 우위를 점해야 겠다는 의도가 컸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어지는 '결투에 의한 재판' 씬에서 네드의 의도는 크게 빗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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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틀린의 입장에서도 어쩔수 없이 재판이 시작되긴 했지만 티리온이 에리레를 무죄로 빠져나갈 확률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형 판결이 설사 내려지더라도 라이사를 설득해서 사형 일자를 미루면서 티리온의 인질로써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리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 자리에 웨스테로스 최고의 부자 가문의 둘째 아들을 구해 한 몫 벌어보고자 하는 솜씨좋은 용병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요?

티리온은 자신의 지혜와 가문의 재력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구할 확률높은 도박을 선택했고 그것이 통한 것이죠.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것인데  

티리온의 경우에 정확히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케틀린의 경우에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그낌이랄까요?

애초에 재판이라는 형식적 공정성을 보여주는 기회를 주어 1%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내주지 말았어야 하는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실은 에이레와 킹스랜딩의 두 재판 씬 사이에 또 다른 짧은 씬이 있는데요. 바로 로버트 왕의 사냥장면입니다.

시종이 자꾸 와인을 권하는 장면에서 로버트 왕의 사고사 아닌 사고사가 암시되고 있죠.

티리온의 탈출과 로버트 왕의 죽음으로 네드와 스타크 가문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법과 정의> 마지막 회에서는 많은 분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네드의 죽음까지의 과정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회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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