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오브 컵스(Knight of C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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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7 23: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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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lia Cultura는 영화, 드라마,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적 체험들에 대한 소통의 장입니다.

'스폴리아 쿨투라 spolia cultura'는 라틴어로 번역하자면 '문화의 전리품'쯤 되는데요.

특히 '스폴리아 spolia'는 고대 로마에서 전쟁의 전리품으로 가져와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건축물의 일부가 된 장식이나 건축재를 말합니다.

유명한 것으로 로마 시내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도 원래 건축의 요소가 아닌 '스폴리아'가 섞여 있답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체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눔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전유(appropriate)하고자 시도가 바로 Spolia Cultura이며

따라서 '전리품 spoils'의 다른 의미인 '스포일러 spoiler'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 감독의 <나이트 오브 컵스>(Knight of Cups)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테렌스 맬릭 영화의 열렬한 팬도 아니고 그의 영화를 많이 본 것이 아니었지만 관람을 결정하고난 후에 이 영화를 보려면 무언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이트 오브 컵스>를 보러가기 전에 그의 작품 중 내가 예전에 봤었던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을 다시금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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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99년 쯤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나는 비슷한 시기에 좀 더 일찍 개봉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보다 <씬 레드 라인>을 굳이 골라서 보러가는 그런 약간의 허세(?)가 있는 나름 스스로 영화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씬 레드 라인>은 실제 1942~43년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진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투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공식인 실감나고 치열한 전투, 비극적 상실, 고난끝에 승리 등이 포함되어 있긴하지만 전쟁 영화라고 말하기는 꽤나 어렵다. 오히려 테렌스 맬릭 특유의 자연과 풍경을 촬영하는 씬이나 보이스오버(voiceover)를 통해 전쟁에 참여하는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영적인 서정시에 가깝다. 일반적인 전쟁영화를 기대하고 갔다면 당연히 지루할 수 밖에 - 게다가 러닝타임이 무려 170분!!

 

결론적인 이야기지만 <씬 레드 라인>을 다시 보고 <나이트 오브 컵스>를 보러 갔던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트 오브 컵스>는 좀더 세련되고 아름답지지만 더욱 난해하기(cryptic) 이를데 없는 버전의 <씬 레드 라인>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그렇듯이 타로카드의 카드들이 상징하는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달(The Moon), 타워(The Tower), 매달린 남자(Hanged Man), 심판(Judgement)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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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인 컵의 기사는 타로카드 중 하나로 감정의 도전적 추구, 예술적 창조, 낭만적 젊은이, 호소력, 매력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이트 오브 컵스>는 아버지 왕으로부터 진주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떠난 후 기억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왕자(기사)의 이야기로 부터 시작한다.  

 

성공한 극작가인 주인공 릭(크리스천 베일)은 영화의 각 챕터 속에서 연인, 친구, 동생, 아버지, 어머니, 이혼한 부인, 사업파트너, 내연녀 등과 어딘가로 떠나거나 함께 걷거나 대화를 나누지만 그것은 시간의 순서대로 배치된 것도 아닌듯 보이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단서가 너무 부족해 보인다.  

 

<씬 레드 라인>에서는 과달카날 전투라는 최소한의 서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탐구하지만 <나이트 오브 컵스>에서는 퍼즐의 한 조각씩 주어지는 서사적 단서들을 중간중간 던져주는 형태로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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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전달될만한 대화가 가끔식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주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대화 중에도 <나이트 오브 컵스>의 가장 압도적인 연출방식인 보이스오버가 그 대화에 덧씌워진다. 주인공의 보이스오버 뿐만 아니라 대화상대의 보이스오버까지 <나이트 오브 컵스>의 대화는 차라리 상호독백에 가깝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써의 대화가 아닌 독백은 관객을 극중인물의 내면으로 그리고 이 영화의 창조자의 내면으로 끊임없이 인도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압도적인 것은 서사도 독백도 아닌 바로 비주얼(visual)이다. <씬 레드 라인>의 예에서 이미 보여주었드이 광활한 자연을 담은 익스트림 롱 샷에서 독백하는 극중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극단적인 클로즈 업 씬을 오가며 아름다운 자연풍광, 도시의 건축적 요소들, 화려한 저택, 환락적 파티, 눈부신 빛, 해변, 바다, 수영장, 아름다운 여성들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변주된다.  

 

타로카드의 상징적 의미와 각 챕터의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할 순 없었지만 영화를 압도하는 이미지는 바로 물, 물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제목인 '컵의 기사'가 물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물과 물고기가 수놓아진 갑옷을 입고있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해변과 바다 속 그리고 수영장의 이미지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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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관계는 확실히 중요해 보인다. 주인공의 이 모든 여정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무언가를 잊어(잃어)버렸기 때문이고 그것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이며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버지의 독백에 화답하듯이 '(다시) 시작하자'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실한 신자가 천국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이야기를 담은 고전, 존 버니언(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구절들이 반복적으로 영화 속에서 읊어지고 아버지의 명을 망각한 채 방황하다가 결국엔 아버지에게 응답하는 플롯은 역시 성서 이야기인 '탕자의 귀환'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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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오브 컵스> 테렌스 맬릭 특유의 종교적 그리고 영적인 감수성으로 다양한 레퍼런스와 상징들을 복잡하게 짜 넣은 직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화려한 출연 배우들과 아름다운 영상 이미지만으로는 선뜻 선택하여 보기가 어려운 작품이긴 하지만 가끔씩 한 번쯤은 이런 난해한 모더니즘 영상시와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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