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마블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 오로라히스
  • 2016-04-28 22: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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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이 영화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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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마블스튜디오의 최신작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를 보았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잘 만들었습니다. 마블은 여전히 패배를 모르며 그것을 가까운 시일 안에 배울 계획 또한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 솔로 영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물입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어도, 대체로 아이언맨 삼부작을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는 평을 받았던 <아이언맨3>와 달리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 삼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느낌보다는 <어벤저스2.5>의 인상이 강하며, 그마저도 극의 후반을 지나면 <아이언맨4>로서 최종적인 변주를 마칩니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남성분들이 동의하시진 않을 것이고 또 많은 여성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겠죠. 지금 저 명제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화 <시빌 워>에서 마블이 보여준 태도를 저 한 줄의 비유로 과감히 요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블은 자신들의 첫사랑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토니 스타크를 이 영화의 악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문제는 스티브 로저스를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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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토니의 감정선은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됩니다. 호흡 또한 적당해서 관객들은 그에게 이입하는 데에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영화는 그가 어떤 과거를 겪었는지, 현재 심리 상태는 어떤지, 그의 결정이 어떤 의미에서 합리적인지, 또는 그의 행동이 어째서 지지를 얻어야 하는지를 찬찬히 짚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토니의 새로운 모습들을 드러내 더욱 흥미를 돋우죠. 이와 비교하면 스티브의 감정선은 표현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명 그럴 만한 건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요.

 

페기 카터의 장례식은 스티브 로저스라는 캐릭터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의 절박함과 고독을 극대화하기에 무척 유리한 장치였습니다. 다소 신파 같고 빤하더라도, 호소력을 지니려면 슬픈 사연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특히 상대가 토니처럼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정이 있는 캐릭터라면 더욱 그랬습니다. 장례식에서 보여준 스티브의 슬픈 얼굴은 팽팽한 감정적 대결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했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그 소중한 기회를 뜬금없는 러브라인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립니다. 그 인연이 대단히 결정적인 활약을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극중에서 샤론 카터가 스티브를 위해 한 일들은 캐릭터 특성상 블랙위도우가 했어도 크게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블랙위도우의 내적 갈등을 더 길게 잡아주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여하간 이때 스티브에게 몰입하고 있던 감정이 한 번 툭 끊어지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다시 연결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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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페기라는 좋은 패를 제 손으로 버렸지만, 스티브에게는 아직 평생을 함께한 친구 버키 반즈가 남아있었습니다. 버키는 마침 <시빌 워>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버키와 스티브 사이의 감정선 역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이것이 무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이하 윈터 솔저’)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루소 감독들의 선택이라는 점이 충격적입니다. 그 작품은 스티브의 감정적 동기와 정치적 동기 모두를 몹시 설득력 있게 그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스티브가 왜 그렇게까지 버키를 위해 애쓰는지, 버키는 도대체 스티브에게 어떤 존재인지, 무엇이 그리도 특별한지, 두 사람의 역사를 회상 신이든 뭐든 동원해서 관객들에게 어필해야만 하는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시빌 워>는 그런 부분들을 철저하게 방치합니다. 둘의 절절한 이야기는 전편인 <퍼스트 어벤저><윈터 솔저>를 보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운데 이를 대사 몇 줄로 간단히 통보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묘사의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영화의 감정적 무게중심은 결국 심리가 훨씬 조밀하게 연출된 토니에게로 완전히 쏠리게 됩니다.

 

보통의 흥미로운 갈등 구조 속에서는 주인공이 따뜻한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의 적대자가 차가운 이성으로써 관객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죠. <시빌 워>의 경우엔 토니가 감성을 아예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티브는 이제 탄탄한 정치적 모티브로 관객의 동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기 어렵게도 루소 감독들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이 갖는 정의로운 위상마저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그는 슈퍼히어로들의 활동을 관리하고 감독한다는 내용의 소코비아 협약에 반대합니다. 정치적 성격을 띤 단체는 항상 어젠다를 가지고 있는데, 특정 어젠다에 휘둘려 활동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여기까지는 훌륭했죠. 그는 하이드라에 잠식된 쉴드를 목도하고 자신의 손으로 두 집단 모두를 무너뜨린 전적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2차 대전도 겪었고요. 권력에 불신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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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티브의 이러한 결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결함이 포착됩니다. 우선 스티브는 협약에 서명하는 것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꼬집습니다. 오롯이 자신과 어벤저스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민간인 피해를 책임지겠다는 말인데, 그 책임을 지금까지 어떻게 져왔는지 또는 앞으로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내놓지 않습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대사는 민간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겐 절대로 통하지 않을 말이죠.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 못할 입장이 아닙니다. 권력자들의 명령에 따르다가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건 스티브와 동료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일이니까요.

 

관객을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권력에 그토록 회의적인 캡틴이, 스스로의 신념에는 회의를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태도에는 권력은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지만 나의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이는 사상적으로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어벤저스를 이끄는 사람인만큼, 캡틴이 지도자의 위치에서 응당 누리는 권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지위에 대한 반추가 없는 것이죠. 영화는 스티브가 스스로의 가치관과 믿음을 돌이켜보고, 의심하고, 시험하고, 끝내는 다시금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가 주인공인 영화니까요. 그렇게 해야, 관객도 캡틴 아메리카와 여정을 함께하면서 그의 모든 행동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빌 워>의 각본과 연출 모두 스티브의 이러한 고뇌를 또렷하게 담아내지 못하면서, 와중에 유가족을 만나고 한때 반정부적이었던 자신의 입장을 180도 선회하는 토니의 고민과 변화가 도드라지면서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는 가장 중요한 관객의 신뢰를 얻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믿음직한 리더의 이미지, 평생을 기댈 수 있는 친우의 이미지 둘 중 무엇 하나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탓이죠. 영화가 끝을 향해 달릴수록 그의 고집은 종종 아집으로 비춰지기까지 합니다. 이리하여 <시빌 워>는 주인공이 특정한 행위를 하는 이유를 관객이 머릿속에서 추가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하고, 지레짐작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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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초대형 프랜차이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작품 한 작품을 챙겨보지만, <시빌 워>를 시작으로 마블을 접하는 신규 관객 또한 대단히 많습니다. 시장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마블은 매 작품의 개봉 때마다 새로운 손님들을 맞고 싶어 할 테고요. 그러나 이번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표제를 달았으면서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소개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데에 심히 소홀했으며, 그와 맞서는 토니 스타크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일에 심히 공을 들였습니다. 두 사람의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조연급 캐릭터들을 별 다른 고심 없이 소모한 것은 극 진행과 상업성을 고려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주인공이 주인공으로서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세계적인 슈퍼스타이자 마블의 간판인 토니 스타크가 스튜디오로부터 배려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합니다. <시빌 워>로 성공적인 MCU 데뷔 무대를 가진 스파이더맨 솔로 영화에 그의 출연이 확정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명실상부 마블 최고의 흥행보증수표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음만 먹으면 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자신의 압도적인 연기력을 이번 영화를 통해 재차 입증했으니까요. 오랜만에 <아이언맨4> 제작 가능성이 물 위로 올라오고, 모두가 토니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게 된 현재. 이토록 멋진 오락물을 보고 난 뒷맛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아마, 캡틴 아메리카가 아이언맨만큼 마블의 케어를 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눈으로 확인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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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토니맘
내 머릿속에 있던 걸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능력이 없어서 못 떠들었는데  ...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G ㅁㅁㅁ
영화를 보고 난 후 이게 왜 캡틴 아메리카의 타이틀을 달고있는가에 대해 내내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정리 잘 된 글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