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O.J. 심슨 재판으로 우리가 얻은 (잃은) 것들

  • 빈상자
  • 2016-05-09 15:51:56
  • 1,653
  • 0
  • 3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딴생각]에 빠지다

 

O.J. 심슨 재판으로 우리가 얻은 (잃은) 것들

 

 

1919년

1919년, 네브라스카주의 오마하에서 법원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윌 브라운(Will Brown)이 성난 군중들에 의해 끌려 나와 집단 구타를 당하다가 결국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브라운이 사망한 후에도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듯, 브라운의 시신을 나무에 매달고 훼손하다가 급기야 차로 거리를 끌고 다니다가 불로 태웠습니다. 흑인인 윌 브라운이 19세 백인 여성의 강간 용의자로 체포된지 하루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난 군중 앞에서 브라운은 자신은 결백하다고 울부짖었지만, 그는 정당한 재판도 받지 못하고 백인 군중에 의해 ‘처단’되었습니다. 브라운을 지목한 여성의 증언은 브라운을 용의자로 체포한 핵심 증거였지만, 여성은 후에 그런 적이 없다고 고백했고 브라운이 희생된 이후에도 브라운의 범죄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브라운의 이름보다 오마하 폭동(Omaha Riot)으로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브라운의 죽음은 폭동이라는 특별한 경우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당시 미국에서 흑인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일 뿐입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을 살해했거나 강간했다고 의심받을 때는 물론, 단지 그냥 수상해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두 종교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린치를 당하거나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세상은 많이 변했고 50~60년대 인권운동을 거치면서 흑인들의 권리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유무형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흑인들의 백인들,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지=FX

664c2d9e004517596bfbc9092ea0c350_1462775  'American Crime Story: The People v. O.J. Simpson' FX, 2016~

 

 

1995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제 역사적 사건을 시즌마다 하나씩 다룰 앤솔로지 형식의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American Crime Story, FX, 2016~)>의 첫번째 이야기는 미국에서 ‘세기의 재판(the Trial of the Century)’으로 불렸던 O.J. 심슨의 재판입니다. 그리고 10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첫번째 시즌의 'The People v. O.J. Simpson'은 로드니 킹의 구타 영상에서 이어지는 1992년 LA의 폭동의 실제 자료화면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1992년의 폭동과 1995년 심슨의 재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10편을 다 보고나면 (혹은 90년대 미국의 현실과 그 이전의 미국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 LA폭동이 일어난 축적된 배경과 그 후의 트라우마가 심슨 재판의 모든 면에서 관련되어있고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전처 니콜과 전처와 연인 관계로 여겨지던 청년 로날드의 살인사건에서 O.J. 심슨의 무죄를 믿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흑인 사회에서는 얘기가 좀 다릅니다. 70년대 주로 활동했던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은 흑인들에게는 영웅입니다. 심슨은 선수로 은퇴한 이후에도 온갖 TV 프로그램과 영화 출연으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흑인들은 경찰들은 물론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들에 대한 무죄평결을 대린 배심원단처럼) 백인 중심의 배심원 제도를 포함한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심슨의 범죄 증거를 수집한 핵심 형사 중의 한 명인 마크 퍼먼(Mark Fuhrman)이 재판기간 중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밝혀지면서 심슨이 백인 경찰들에 의해 모함됐다는 심증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미지=FX

664c2d9e004517596bfbc9092ea0c350_1462775

심슨과 그의 변호인단

 

이미지=FX

664c2d9e004517596bfbc9092ea0c350_1462775

검사측

 

 

 

2016년

드라마의 원작이 된 제프리 투빈(Jeffrey Toobin)의 책 ‘The Run of His Life’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심슨의 유죄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Simpson murdered his ex-wife and her friend.” 하지만 원작자가 컨설턴트로도 참여한 드라마 'The People v. O.J. Simpson'​은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 머무르려고 노력합니다. 드라마의 중심은 심슨이 아니라 검사측와 심슨의 변호사측, 즉 양쪽 다입니다. 오히려 드라마는 때론 심슨 재판 자체보다 재판에 연류된 개개인의 탐구, 인종차별논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회, 정치적 계산과 배심원제도의 단점에 발목이 잡힌 사법시스템, 정의를 찾기보다 주변 가쉽과 자극적인 소재에 빠진 언론과 대중 등에 더욱 주목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도 아닌 드라마의 중립적인 위치는 비교적 최근의 일로서 아직도 이 사건과 재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드라마를 팔아야하는 제작사의) 안정적인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90년대에는 물론 201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인종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 속에서 미국이 여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는 아주 오래 전인 것만 같고 기억조차 점차 아득해지는 90년대이지만, 'The People v. O.J. Simpson'​을 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92년 LA폭동의 배경과 95년 심슨의 재판을 둘러싼 갈등이 2010년대에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기시감이었습니다. 1919년 브라운의 사건에 대해서는 옛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거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안도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LA폭동이나 심슨의 재판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갈등을 한때는 그랬지하고 쉽게 넘어가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2013년부터 집중 부각된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과 ‘Black Lives Matter‘ 움직임만 보아도 우리가 90년대와 그리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지=Jean-Marc Giboux

664c2d9e004517596bfbc9092ea0c350_1462775

 1994년, 심슨의 도주와 추격 실제 자료 사진

 

 

 

승리한 사람은 누구인가?

소수인종을 보호하고 어느 정도의 특혜를 주기 위한 법제도인 ‘Affirmative Action’을 중심으로 백인들의 역차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차별이 더 많다고 보고 역차별 인정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35세와 26세의 젊은 나이에 살해당한 니콜과 로날드는 용의자가 흑인이기 때문에 역차별을 받은, 아주 드문 사건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LA폭동이 일어난지 3년도 안되는 시점에서 또 다른 폭동을 우려한 검사측은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검사인 크리스토퍼 다든(Christopher Darden)의 말처럼 심슨은 아마도 흑인이기 때문에 법망을 빠져나간 최초(이자 유일한) 경우일 수 있습니다. 혹은 백인 여성과 결혼하고 백인 부유 동네인 브렌트우드(Brentwood)에 살던 심슨 자신의 말(“I’m not black, I’m OJ”)처럼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이자 유명인이기에 이득을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심슨 외에도 이 세기의 재판에서 이득을 본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심슨의 무죄평결을 이끌어낸 변호인단은 당연히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재판을 잃은 검사측도 재판 직후 모두 검사직을 사임하긴 했지만 경력의 전환점이 됐을 뿐 유명세 덕을 보았습니다. 심슨 재판에 관련해서 랜스 이토(Lance Ito) 판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관련자들은 심슨 재판에 관련된 책을 내거나 강연을 하면서 돈을 벌거나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24시간 내내 심슨의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생산하고 중계하던 언론들과 이에 중독된 시청자들은 리얼리티TV를 무대로 말초적인 감각을 이어가기 시작했고(심슨의 베프였던 카다시안 가족이 그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은 우연도 아니죠), 법정 드라마와 쇼도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수혜를 입은 듯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로 남은 사람은 살인자를 처벌하지 못한 채 잠들어있는 니콜과 로날드뿐인듯 했습니다. 

 

이미지=FX

664c2d9e004517596bfbc9092ea0c350_1462775

 

 

 

심슨과 그의 지지자들은 무죄평결 직후 환호하고 파티를 열어 축하했습니다. 심슨의 무죄를 주장했던 다수의 흑인들은 심슨 재판을 지금까지 기념비적인 승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슨의 무죄평결이 또 다른 LA폭동을 방지했을지는 몰라도 흑인들의 인권성장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흑인 위주의 배심원단이 심슨을 풀어주었던 것처럼, 백인 위주의 배심원단들은 여전히 많은 흑인 용의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백인들의 반복되는 차별과 편견으로 신뢰를 잃은 사법제도의 공정성은 여론과 정치적 의도에도 휘둘리는 더욱더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벌어진 틈으로 그들이 그토록 감옥에 가두고 싶었던 심슨이 빠져나갔습니다. 브라운을 살해한 백인들도 심슨을 무죄를 이끈 흑인들도 승리자는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스스로 파고 있는 함정에 빠지고 있는 피해자들뿐입니다. 

 

심슨은 살인혐의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로날드 가족의 민사소송까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1997년 (애초에 검사측이 그렇게 바라던 백인 거주지인) 산타모니카 법원은 3,350만불(지금 환율로는 390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실제로 50만불이 로날드 가족에게 돌아가기도 했지만 심슨은 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던 심슨은 2007년 라스베가스에서 무장강도 혐의로 2008년에 33년형을 받고 지금까지 네바다주의 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이를 두고 백인들이 보복성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심슨의 유죄만큼은 확실했습니다. 결국 심슨도 최후의 승리자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백인들과 흑인들이 편견과 감정에 사로잡혀 복수에 복수를 하는 동안 공정성을 자랑으로 하던 미국의 사법제도는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앞으로도 트래본과 같이 억울한 죽음과 심슨 재판과 같이 어의가 없는 판결이 언젠가 또 반복될 가능성이 여전하게 생겼습니다. 결국, 또 다시, 모두가 피해자들뿐입니다. 




, , , ,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