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 내 삶을 왜 니 맘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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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5 1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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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에 빠지다

내 삶을 왜 니 맘대로 해?

 

 

강력한 스포!!! ​<왕좌의 게임> 시즌 6의 5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의 최근 에피소드(6시즌, 5화)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아끼는 캐릭터를 잃었습니다. '나쁜 놈'들은 물론 수많은 주요 캐릭터들 조차 낙엽처럼 쓰러져간 '왕겜'에서 이젠 무감각해질만도 한데, 오히려 왕겜의 팬들은 최근의 죽음을 가장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존 스노우는 돌아왔으니까). 

 

이미지=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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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dor a.k.a. Wylis

 

 

호도, 혹은 윌리스의 운명

호도는 사실 그렇게 주목 받던 캐릭터는 아닙니다. 드라마의 주요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등치는 크지만 위기가 닥치는 순간에는 겁쟁이었고 게다가 6년이 되도록 그의 대사는 늘 자신의 이름인 '호도(Hodor)'뿐이었습니다. 그때문에 오히려 종종 놀림감이 되기도 했죠. 그랬던 호도의 죽음이 왕겜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이 된 이유는 극적인 연출과 그의 이름의 비밀이 밝혀진 것때문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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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 이상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지어다 

 

 

브랜이 과거로 돌아가 윌리스(Wylis, 어린 시절의 호도의 본명)를 지켜보던 장면은 (마치 '인셉션'을 보는 듯) 시공간과 내러티브가 복잡하게 얽혀버리면서 팬들 사이에는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브랜이 어린 시절의 호도에 '워그'해서 호도에게 평생의 단 하나의 임무(문을 막아 화이트 워커스를 저지해서 브랜을 구하는)를 쥐어준 것이라는 팬들도 많지만, 브랜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재 벌어지고 있던 일에 압도되고 있던 브랜과 호도의 상태가 과거의 윌리스에게 씌워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 전에는 몰라도) 문을 막아서고 있던 순간에는 미라의 말을 들은 호도의 자유의지라고 보는 팬들도 있습니다. 호도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티안 네언(Kristian Nairn)은 최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설에 힘을 보태었습니다. (하지만 -출연배우 입장에서는 당연한 자세이지만-​ 인터뷰 내내 브랜을 감싸고 호도의 죽음을 가치있게만 평가하려는 자세에서 진실을 찾기는 힘들어보입니다)  


"He wasn’t being warged into at that stage. It was Meera who asked him to hold the door, it wasn’t Bran."

"그때는 빙의된 상태가 아니었어요. 미라의 말을 듣고 문을 붙잡은 거죠, 브랜이 아니라"    

 

그렇게 호도의 평생의 삶을 결정하게 된 순간에 대한 말을 다양하지만, 어느 설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호도는 물론, 세눈까마귀(Three-Eyed Raven), 리프(Leaf)를 비롯한 (아마도) 살아남아있던 모든 숲의 아이들(Children Of The Forest), 그리고 브랜의 다이어울프 썸머의 죽음까지 모두 세눈까마귀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브랜의 책임이라는 거죠. 이와 함께 일부 팬들이 호도의 죽음을 특히 슬퍼하고 동시에 (다소) 분노하는 순간은 브랜이 호도의 운명을 바꾸었거나 최소한 깊이 관여되어있다는 설명에 근거했을 때입니다.


 

이미지=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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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이 과거로 돌아가 호도에 삶에 개입하기 전 그는 (가난했을지는 몰라도) 밝고 말도 잘하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 윌리스였습니다. 그런데 브랜(혹은 스타크 가문)과 얽히면서 그는 간질에 지적장애까지 안고서 평생에 할 수 있는 말은 '호도' 한마디 뿐이게 되었죠. 자신의 이름도 잃은 채 브랜을 구하기 위한 그의 평생의 사명이 곧 그의 이름이 되었고, 호도는 결국 브랜을 구하기 위해 문을 붙들어매는 한 순간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온 샘이 되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면 브랜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한 소년의 평생을 망친 것이고, 최선의 경우라도 해도 브랜이 살아남기 위해 호도가 (다른 여럿과 함께) 희생당해야만 했습니다.


호도는 물론 세눈까마귀, 숲의 아이들, 썸머까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브랜을 꼭 지키려고 했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세눈까마귀는 미래를 보았을 수도 있고, 숲의 아이들은 애초에 나이트 킹(the Night's King)을 만든 죄책감도 있었겠고, 이미 죽은 조젠(Jojen)과 아직 브랜을 지키고 있는 미라(Meera)까지 모두 브랜의 잠재력을 보았을 수도 있죠. 드라마에서 브랜은 아마도 후반에 가면 웨스테로스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커다란 힘을 가진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미래가 불확실한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불사할만큼 누군가를 꼭 지켜아먄 한다면 그보다는 확실한 이유와 동기가 필요해보입니다. 어느 왕족이나 귀족의 가문의 자식이라는 것 말고도 더 크고 중요한 대의가 있어야죠. 종속적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갑이 을에게 맹목적인 희생과 충성을 강요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조라와 브리엔

왕겜에는 호도만큼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대표적인 인물로 대너리스를 지키는 조라 모르몬트(Ser Jorah Mormon)와 (지금은) 산사를 지키는 브리엔(Brienne)이 있습니다. 조라와 브리엔은 기사로서 각각 대너리스와 스타크 가문에 충성하고 있죠. 브리엔은 스타크 가문의 남은 자손들을 기어이 찾아다니면서까지 우연히 만난 캐틀린에게 맹세한 서약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고, 조라는 기사도의 정신 외에도 대너리스에 대한 사심까지 더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합니다.


이미지=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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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했다


왕겜은 판타지드라마이지만, 기본적으로 중세역사에 많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죠. 타임즈는 조라와 브리엔이 보여주는 기사도에 관해서 중세역사학자의 조언까지 첨부해 이것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의견을 더합니다. 자신을 섬기는 기사가 충성을 다하고 배신하지않았으면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힘을 빌어 재산과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왕족/귀족의 바람이었을 뿐 실제로는 평상시에도 자유롭게 반론을 재기하며 무조건 복종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하고 배신하는 일도 많았죠. 이에 대해서는 왕겜에서 현자 중의 한 명인 다보스(Davos Seaworth)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죠. 자신의 북부사람들은 항상 충성스러웠다는 산사(Sansa)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다보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I may not know the North, but I know men. They're more or less the same in any corner of the world and even the bravest of them don't want to see their wives and children skinned for a lost cause....They need to believe it's a fight they can win."

"제가 북부 사람들을 잘 모를 수는 있지만, 인간은 압니다. 세상 그 어느 곳이라고 해도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그 중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승산 없는 명분때문에 자신의 처자식이 죽는 꼴을 보고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중략) 승산이 있는 싸움이어야만 하죠."      

   이미지=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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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그랬다하면 차라리 그럴 수 있다. 집착은 충성심보다 생명력이 질기니까. 

 


기사도와 무사도

충, 예, 인, 효 등 당시는 물론 훗날 주구장창 강조되었던 동양의 사상의 상당수는 제자(여러 학자)와 백가(여러 학파)가 당시 사람들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철학을 정리했다기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기에 권력자들이 국가 이념을 세우고 권력을 다지는 통치수단으로 입맛에 맞는 사상을 고르고 이를 강조/강요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재산과 권력을 지키고 싶은데 윗사람에 대한 충성/의리/효를 중시하라는 말만큼 좋은 핑계가 또 어디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충성스럽고 의를 다하는 기사도와 사무라이정신은 과거 실제 기사들과 사무라이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보다 오히려 기사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쇠퇴하던 시대에 다듬어진 신화에 가깝습니다. 1528년,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의 '궁정론(The Book of the Courtier)'으로 정점을 맞이 하는 것 같던 기사도 정신은 묘하게도 이미 기사 계급의 쇠퇴가 시작된 이후였습니다. 기사의 계급이 정비되고 문학에서 기사도(chivalry)가 신화화되어가는 것도 그 이후의 일입니다. 이상적인 기사도에 저항하는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돈키호테(Don Quixote)'와 같은 문학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사 로망스(Chivalric romance)처럼 장르 소설로 유행하고 이상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먼나라 일본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사무라이 계급과 정신이 다듬어지고 신화가 된 시기는 사무라이 계급이 성장하고 가장 활약이 많던 무로마치 시대가 아닌, 300년에 가까운 평화를 누리면서 사무라이 계급이 쇠퇴했던 에도 시대였습니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야마다 요지, 2002)>를 보면 '일' 없는 사무라이가 한가롭게 밭이나 갈면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게 현실과 더 가까웠죠.

 

 

이미지=Dadi Century, 영화사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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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춘추전국시대(孔子)' 후메이, 2010

 

이미지=Shochiku, 프리비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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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淸兵衛)야마다 요지, 2002

 

 

브랜, 산사, 대너리스를 오늘날에 대입하면 그 대상이 누구라고 해도 우리는 바로 맹목적인 충성과 의리를 바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이 사장, 회사, 조직, 대통령, 혹은 국가라고 해도 말이죠. 이는 오늘날 강호에서 의리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우리가 봉건주의 사회를 지탱하던 사상에 얽메어 있지 않기 때문이겠죠. 여전히 충성과 의리가 중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최소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바람직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걸 누가 모를까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드라마를 보는 순간 당시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손쉽게 순응하며 호도, 조라, 브리엔의 희생이 숭고하고 그들의 맹목적인 충성이 바람직한 가치로 보이게 되는 몰입현상은 조금 무섭습니다. 앞으로 조라와 브리엔의 충성이 맹목적이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호도의 희생을 애도하고 싶습니다. 

 

이미지=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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