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리뷰 - 폭풍의 영웅들을 위한 초석

  • 엑세니악
  • 2016-06-13 09: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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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6/10

* 큰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중에서는 수십 년 동안이나 이상하리만치 눈에 띄는 흥행작이 탄생하지 않았더랬습니다. <더 문>, <소스 코드>에 빛나는 던컨 존스 감독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워크래프트>가 만난 이번 영화는 그 불문율 아닌 불문율을 깨 줄 기대를 한 몸에 안았었죠. 원작의 탄탄한 줄거리와 방대한 세계관이야 널리 알려진 바였고, 적당한 자본과 스케일만 갖춰진다면 흥행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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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던 인간과 오크. '지옥 마법'으로 막대한 힘을 얻은 오크들은 마법사 굴단의 지휘 하에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기 위한 인간의 세계 아제로스로 넘어옵니다. 그러나 시전자와 그 영향이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옥 마법을 경계한 오크 듀로탄은 굴단에게 반기를 들고, 인간들의 왕인 레인과 전사 로서에게 동맹을 제안하죠. 와중에도 커져만 가던 지옥 마법의 마수는 종족을 넘어 모두를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오크 듀로탄과 그의 아내인 드라카의 대화부터 굴단의 차원문 개방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영화의 진행 방향을 확실히 합니다. 본인과 종족의 사활이 걸린 거대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가족과 명예를 중시하는 주인공이 활약을 할 것이다, 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죠. 원작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을 할리우드급 퀄리티로 끌어올린 듯한 눈요깃거리는 덤이 됩니다. 

 

 안두인 로서, 메디브, 가로나, 듀로탄, 오그림 둠해머, 굴단, 카드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막고라, 아제로스, 아이언포지, 록타르 오가르, 키린 토 등 난무하는 고유명사와 온갖 언어들까지. 가상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종족들의 이야기엔 머글(...)이 따라가기 영 녹록치 않은 진입 장벽이 한가득하죠. 마블이나 DC 등 코믹스 원작 영화들을 통해 낯선 외계어를 받아들이는 데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습니다만, 그 많은 단어들을 좇아가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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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지 세계관의 종족 전쟁을 중심 소재로 삼는 플롯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특정 종족이, 혹은 집단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죠. 뼛속까지 전쟁광인 천성이 굴단의 마법과 만난 오크야 그렇다치지만, 그런 그들과 맞서 싸우는 세력은 인간뿐입니다. 키린 토의 마법사들(오크를 상대하는 마법사들의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부터 집에 가겠다며 자리를 박찬 다른 종족들에겐 어떤 부연 설명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엉성하게 벌어진 전쟁은 더욱 엉성한 디테일로 플롯의 완성도를 한층 떨어뜨립니다. 아무런 개연성 없이 싹트는 로서와 가로나의 로맨스, 복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메디브, 지나치게 이상적인 군주관을 따른 탓에 현실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왕과 왕비, 덩치 면에서나 완력 면에서나 인간을 손쉽게 능가해야 정상인 오크들과의 파워 밸런스, <그린 랜턴>을 떠오르게 하는("그린 랜턴의 빛을!") 카드가의 클라이막스 등이 대표적이죠.

 

 단세포도 이런 단세포가 없는 오크들의 '명예'는 개중에서도 극적 설득력을 너무나 자주, 너무나 크게 무너뜨리는 주범입니다. 필요할 때는 동족이고 뭐고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지는 관계임에도 결정적인 순간엔 전통과 명예를 내세워 주인공 효과를 증명해내는 꼴이라니요.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군중 심리의 살아있는 지표이기도 하죠. 지옥 마법의 힘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오크가 되어야 했을 그의 허무한 최후와 틀니 탓에 줄줄 샜던 그녀의 발음 정도는 애교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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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수많은 오점과 설정 구멍들에도 불구하고, <워크래프트>는 새로 깔아둔 세계관적 매력을 어필하는 데엔 성공했습니다. 단순함과 무식함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들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심어놓기엔 충분하죠(무게감과 타격감 충만한 오크들이 발산하는 의외의 멋짐도 한몫합니다). 도미닉 쿠퍼, 토비 케벨, 벤 포스터 등 나왔다 하면 프로젝트를 침몰시키는(...) 배우들의 저주를 완전히 피해 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속편에 대한 기대를 품어 볼 수는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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