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 혹은 장난이 바꿔버린 운명 'The Night of'

  • 빈상자
  • 2016-08-02 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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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파티에서 나와 친구와 길을 걷고 있던 16세의 칼리프 브로더(Kalief Browder)는 갑자기 다가온 경찰들에 의해 체포된다. 죄목은 백팩을 훔쳤다는 이유. 브로더는 증거 하나 없이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뉴욕의 라이커즈 수용소에 다른 범죄자들과 함께 수감된다. 보석금은 3천 달러에 불과했지만 가난한 그의 가족에게는 큰 돈이었다. 무죄를 확신한 그는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감량을 받는 플리바겐 대신에) 재판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재판은 계속 미루어졌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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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로더를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했던 '뉴요커(The New Yorker)'


 

2013년 6월, 칼리프 브로더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가족에게 돌아왔다. 3년 만에 다시 예전의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브로더는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없었다. 수감되어있는 3년 동안 동료 수감자들에게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던 브로더의 정신적인 고통은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졌다. 5-6차례의 자살 시도를 한 끝에 칼리프 브로더는 결국 2015년 6월 6일에 목을 메고 자살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What'sNext] 

운명의 장난, 혹은 장난이 바꿔버린 운명 'The Night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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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of, HBO, 2016

 

 

HBO 채널의 최고 효자 드라마였던 <Game of Thrones>와 <Veep>가 시즌을 마친 7월 초 일요일 저녁, HBO는 <The Night of>라는 드라마를 시작했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유머도 없이 프라임 타임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 드라마의 파일럿은, 얼굴도 (아직은) 낯선 한 배우(리즈 아흐메드)가 연기하는 젊은 대학생의 어느 밤을 1시간 20분 동안 지리하게, 혹은 꼼꼼하게, 쫓아다니면서 보여준다.    

 

관객은, 나즈를 따라 도망을 가고 나즈는 우연한 일로 경찰에 체포된다. 나즈가 주요 용의자인지 경찰이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관객은 나즈가 느끼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렇게 수없이 경찰서를 들락거렸지만, 이만큼 내가 당사자가 된 듯 긴장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픽션에서 생력되었던 체포, 구금, 몸수색, 머그샷 촬영, 탈의, 지문체취, 수송 등의 모든 세세한 일정과 부분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동안,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수감과 감옥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래프트 감옥과 아캄 수용소는 낭만적으로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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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 칸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파티로 향하던 중에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면서 그의 삶이 모두 바뀌어버리게 된다. 나즈가 살해혐의를 받게 되는 순간 우리들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두 궁금하게 된다. 나즈는 두 얼굴을 한 살인마일까? 나즈에게 혐의를 씌우려고 했던 제 3인의 인물이 있을까? 혹은 나즈의 '프리즌 브레이크'? 또는 '살인자 만들기'가 될까?   

 

하지만 느린 속도로 드라마가 늘어 놓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니, 이 드라마는 막상 '누가 범인인가?(Who Done It?)'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범죄현장에 형사와 감식반이 도착했어도 카메라는 그들을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현장 밖 경찰차 안의 나즈 곁에 남아서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와 같이 가쁜 호흡을 하며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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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를 (우연히) 변호하게 된 변호사 존 스톤(존 터투로)은 유능한 변호사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지역방송 새벽시간과 우범지역의 버스정류장 벤치를 점령할만한 싸구려 광고를 남발하는, 3류 범죄자들에 빌 붙어 사는 3류 변호사이다. 그의 만성 습진은 나즈와 그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TV를 통해 지켜보는 관객들까지 불편하게 한다. 스톤의 습진은 관객들의 불편한 심정을 자꾸만 파고 들어가고 나즈의 천식만큼이나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나즈의 한 순간의 선택이 그랬던 것 처럼, 혹은 그것이 나즈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도, 습진과 천식처럼 불가항력적이었거나 아주 사소해보였던 것이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은 바뀌어버릴 수 있다. 삶은 그렇게 유약하다. 인간은 그렇게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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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inal Justice, BBC, 2008~

 

 

<The Night of>의 원작이 된 영국 BBC 드라마의 제목은 <Criminal Justice>이다. 원작의 제목은 드라마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 지를 미국판보다 명확하게 말해준다. 앤솔로지 형식으로 시즌 2까지 이어간 <Criminal Justice>는 두번째 이야기로 폭력적인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속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고 벌하는 '사법체계'의 문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The Night of>는, 왠지 억울한 '사법체계'안에서 싸우고 극복하는 '법정 드라마'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3회까지의 드라마로 미루어보건데, 그보다는 사소한 것과 한순간의 결정으로 한 개인이 어떻게 파괴되어 갈 수 있는 지 그 과정과 감정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듯 하다. 미국 리메이크에선 주인공이 끊임없이 아랍계로 오해받는 파키스탄계 미국인이며 무슬림인 설정도 그의 상황을 더욱 더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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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The Night of>는 필연적으로 '누가 범인인가'를 밝힐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나즈는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몇 개월이 걸리던 몇 년이 걸던, 이 평범한 대학생 나즈는 예전의 그 나즈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안타깝게도) 제로에 가까워보인다. 미국의 수많은 '법정 드라마'가 역경을 이겨내고 승소한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결말로서 보여주지만, 우리가 습관적으로 간과했던 것은, 그 길고 힘든 법정 싸움을 거치는 동안 이미 파괴되어버리는 사람들의 감정과 삶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오랜 기간동안 공 들여오고 앞으로도 수많은 계획들을 세워두었던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서나 나의 작은 결정만으로 크게 바뀌거나 파괴될 수 있다는 상상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그러한 삶의 성질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곤 한다. 나에겐 있을 수 없다는 지나친 자신감과 타인의 불행을 관망만 하는 이기심에도 쉽게 빠지게 된다. 

 

<The Night of>는 그 회피의 도주로를 가능한 모두 차단하고 있다. <The Night of>는 나즈가 겪는 만큼 우리가 고통과 절망에 빠지길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히 타인의 불행에 대한 태도는)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삶에 대한 우리들의 낙관적인 태도나 안이한 기대심리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당신에게도 그런 운명이 닥치는 순간, 이 드라마는 예전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간은 드라마보다 천천히, 그리고 반드시 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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