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 그렇게 어른이 된다

  • Jacinta
  • 2016-08-16 00: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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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잔뜩 꼬여버린걸까? 제대로 풀리는 일 하나 없이 오래 전부터 숙원했던 꿈은 점차 멀어져만 가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과거 어느 때부터 잘못 됐는지 돌아보자니 어영부영 꿈만 꾸며 살아온 시간은 늘 어딘가 엇나가 있다.

오래 전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이후 제대로된 글을 써내지 못해 작가라고 부르기엔 변변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료타, 아직도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하고 하루살이 마냥 서성거리는 그는 어딘가 익숙한 우리의 모습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키는 훌쩍 자랐지만 아직도 인생의 구심점을 찾지 못한 덜 자란 어른 료타를 통해 평범함 속에서 삶의 전환점을 찾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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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했으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과거에 집착해 나아가지 못하고 헛된 꿈에 사로잡힌 료타. 단 한차례 수상 이후 소설은 완성하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소설 취재를 핑계로 흥신소 일을 하는 그는 그나마 수입마저 한방을 노리는 경마에 날려버리기 일쑤고, 성실과 거리를 둔 삶에 지친 아내에게 이혼 당했으면서도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혼 후 아내가 부유한 남자와 데이트 하는 모습을 씁쓸해하며 지켜본다. 가만 보면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점점 끌려들어가는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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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료타가 키 빼고는 헛점이 많은 아들이란 것을 잘 알지만 어머니에게 료타는 소중한 자식이다. 대놓고 아들의 처지를 말하진 않지만 심드렁하게 늘어놓는 어머니의 말에는 세월의 온갖 풍파를 견뎌온 인생의 경험이 스며들어있다. 혹시나 돈이 될만한 아버지의 유품을 찾는 료타에게 장례식 후 모두 다 버렸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지만 여전히 인생의 헛발질에 여념이 없는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냉동실 냄새가 잔뜩 베인 아이스크림을 투덜거리는 료타에게 겉부분만 덜어내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모습에선 처음부터 조건을 맞추려고 하기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만족을 찾아보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 전해진다. 이렇듯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게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는 거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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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원제: 바다보다 더 깊이)'는 태풍에서 시작해 태풍으로 끝이난다. 료타의 어머니와 누나는 유난히 잦은 태풍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며 이야기하던 중 여전히 '대기만성형' 인간에 머무르고 있는 료타를 떠올린다. 그리고 무엇이든 딱히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은연 중에 잘 풀리기를 바라는 료타가 태풍이 올라오는 날 아들 싱고를 데리고 어머니가 있는 옛집으로 향하면서 거센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흩어졌던 가족의 기묘한 하룻밤이 펼쳐진다. 
태풍이 몰고오는 거센 비바람은 상실의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태풍이 지난 뒤 찾아오는 고요한 순간은 다시 나아갈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료타에게 찾아왔던 태풍(아버지의 부재, 실패한 소설가의 꿈, 이혼)은 붙잡아도 소용없는 휩쓸리고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었지만 유난히 잦았던 여름 태풍에서 료타는 연연해하는 삶 말고도 현재에서 타협점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찾은듯하다. 단번에 그의 삶의 달라지지 않겠지만 더이상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붙들고 있기보다 앞으로 덜 후회하며 살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오늘의 삶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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