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르에서 할 수 없는 법과 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종의 ‘일탈’을 허용하는 범죄 드라마는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장르다. 그러나 지금까지 범죄물은 주로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들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했다. 범죄 드라마에서 여성은 소모적인 약자의 역할에 머물 때가 많았고, 기대보다 실망이 앞섰다. 범죄물을 즐겨보면서도 이런 점이 아쉬웠다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혹은 의도치 않게 범죄에 휘말린 여성들이 등장하는 아래의 드라마를 참고해보자.

남부의 여왕 – 테레사 멘도자(앨리스 브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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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여왕]에서 테레사 멘도자는 생존을 위해 범죄의 길에 들어선다. 배신을 의심한 조직이 마약 딜러인 연인 구에로를 살해하고 테레사의 목숨마저 노리자,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미국으로 탈출한 테레사는 야망을 실현하고자 거침없이 직진하는 카밀라 밑에서 범죄 조직의 생리를 배우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마침내 폭력적인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듭난다. 그는 기존의 거물급 범죄자들과 다른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끈다. 보복과 처형이 만연한 무자비한 세계에서 불필요한 폭력 대신 과감한 결단력으로 맞서고, 충성심을 시험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일인자로 군림한다. (넷플릭스, 시즌 1~4 공개)

오자크 – 웬디 버드(로라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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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는 일 중독자 남편 마틴이 돈세탁 비즈니스에 휘말리면서 냉혹한 범죄 세계에 발을 들인다. 친구와 마약 조직을 배신한 마틴의 파트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휴양도시 오자크로 떠나 비밀스러운 돈세탁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 가족의 운명이 걸린 중대사 앞에서 웬디의 외도로 멀어졌던 부부 관계는 끈끈한 파트너십으로 되살아난다. 갖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검은돈 사업은 점차 규모가 커진다. 그 과정에서 웬디는 마틴과 다른 야심을 보인다. 마틴이 철저히 안전지향주의라면, 웬디는 보다 대담하고 과감하게 돈을 향한 탐욕을 실현하려 한다. 그뿐 아니다. 두 아이의 안전과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대상은 설사 후회되고 가슴 아픈 일일지라도 선택하고 만다. (넷플릭스, 시즌 1~2 공개)

굿 걸스 – 베스 볼랜드(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평범한 전업주부 베스는 남편 딘이 비서와 바람을 피우고 재산을 몽땅 탕진하면서 완벽한 일상이 무너지자 분노를 원동력 삼아 생계형 범죄를 계획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생활비가 급한 동생 애니와 절친 루비와 함께 엉성한 복면강도에 나서는데, 생각보다 훨씬(×2) 많은 돈을 훔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돈의 주인인 갱 조직 보스 리오가 흥청망청 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 것. 하지만 위기는 새로운 기회일까. 그동안 남편을 믿고 가족을 위해 헌신해왔던 베스는 갱 조직에 빚진 돈을 갚기 위해 돈세탁 사업을 시작하고 경제권을 쥐게 되자 억눌러왔던 욕망을 아낌없이 꺼내든다. 더 나아가서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리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넷플릭스, 시즌 1~3 공개)

범죄의 재구성 – 애널리스 키링(비올라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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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논할 때 애널리스 키팅을 빼놓을 수 없다. 실력 있는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인 애널리스는 살벌한 카리스마로 모두를 휘어잡고, 맹렬한 자신감과 교활함으로 법정과 강의실을 지배한다. 수업 첫날 자신의 강의를 ‘살인죄를 피하는 법’이라고 소개할 정도. 책 속의 이론보다 실제 사례를 선호하는 그는 매 학기마다 우수 학생을 선발해 인턴으로 기용하는데(후에 최종 1인을 뽑는다), 선택받은 제자들은 선망하는 교수의 승소를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재판에 유리한 증거를 찾아온다. 애널리스 역시 승소를 위해서라면 사생활을 대담하게 이용하는 등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법과 도덕의 경계를 추월하는 비정한 승부사 같은 인상이 강하지만, 때때로 인간적인 모습도 드러내 더욱더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넷플릭스, 시즌 1~4 공개)

브라이어패치 – 알레그라 딜(로사리오 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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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라 딜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 펠리시티가 자동차 폭발 사고로 죽자 12년 만에 고향 샌 보니파시오로 돌아온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의원 조사관이라는 자신의 직업적 장기를 살려 살인범을 찾기 위해 탐문 조사에 나선다. 애증 섞인 고향에서, 하나같이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상관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알레그라는 흐트러짐 없이 꿋꿋하게 배후를 추적한다. 마침내 모든 전말이 밝혀지고 실망과 배신을 맞닥뜨리지만, 그는 처음 고향에 도착했을 때처럼 단단하다. (웨이브, 시즌 1 공개)

마르첼라 – 마르첼라 (안나 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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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라는 스칸디나비아 누아르의 음울한 주인공을 닮았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갖가지 개인적인 문제를 끌어안은 채 난해한 사건을 마주한다. 암묵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때때로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게 굴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사건에 매달린다. 그뿐인가. 가정 파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뻔뻔하고 잔인하게 압박하는 전 남편 제이슨도 상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진 기억은 그 자신이 제이슨의 연인을 살해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불러온다. 흡사 자신을 벌하는 것 같은 괴롭고 불안한 여정이다. 하지만 고통이 가중될수록 더 지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르셀라를 외면하기란 힘들다. (넷플릭스, 시즌 1~3 공개)

루터 – 앨리스 모건(루스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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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살인자다. 똑똑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동물적인 육감을 가진 형사 루터는 앨리스를 의심하지만, 그를 잡아들일 증거가 없다. 오히려 앨리스는 신념이 충돌하는 루터에게 흥미를 느낀다. 루터와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 위기에 빠진 그를 돕거나 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루터의 삶에 개입한다. 앨리스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기에 그 과정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루터가 차츰 자신의 삶에 앨리스를 받아들이듯이 보는 시청자 역시 선과 악을 떠나 그의 차가운 이성에 매료된다. (왓챠/웨이브, 시즌 1~5 공개)

너의 모든 것 – 러브 퀸(빅토리아 페드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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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새로운 연인 러브는 보이는 것처럼 마냥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니다. 그는 조가 생각하는 것 이상 영민하며, 자신의 사랑을 위해 거침없이 움직이는 인물이다.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 뒤로 어둡고 뒤틀린 본성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조가 그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인을 저질렀듯이, 러브 역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혹은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서슴없이 위험한 선택을 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찾은 러브가 앞으로 조와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넷플릭스, 시즌 1~2 공개)

데드 투 미 – 젠 하딩(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 주디 헤일(린다 카델리니)

이미지: 넷플릭스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고 슬픔과 분노에 잠긴 젠 앞에 이해심 많고 긍정적인 주디가 나타난다. 성격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몇몇 공통의 관심사를 매개로 절친이 되는데, 주디에겐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그가 젠을 힘들게 한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 [데드 투 미]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기묘한 우정이 용서로 나아가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정은 쉽지 않다. 주디의 비밀은 젠에게 배신감을 안기고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불똥이 튄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는 오히려 두 사람의 우정을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된다. 젠은 비로소 회피하기 급급했던 현실을 직시하고 주디의 마음을 이해한다. 한층 더 단단해진 두 사람의 우정은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될까. (넷플릭스, 시즌 1~2 공개)

히트맨 – 프랜(수 퍼킨스) & 제이미(멜 기에드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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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킬러 프랜과 제이미는 사업 파트너이자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다. 두 사람은 앞서 등장한 여성들과 좀 다르다. 킬러라는 살벌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좀처럼 진중하지 못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살인청부라는 업무의 대부분이 시시껄렁한 수다로 이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고용주 미스터 K가 의뢰한 제거 대상을 두고 말장난 같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투닥거리느라 툭하면 목표물을 놓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을 맞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기막힌 타이밍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그래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웨이브, 시즌 1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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