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지난 6월 tvN [바퀴 달린 집]의 방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메인 MC ‘삼 형제’ 중 큰형인 성동일의 예능감이야 일찍이 MBC [아빠! 어디가?]에서 증명됐으니 논외로 쳐도, 배우로서는 이미 검증됐지만 예능 경험이라곤 몇 번의 게스트 출연이 전부인 김희원과 여진구가 그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줄지 의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해외 드라마와 영화에나 흔히 나오던 트레일러 하우스 생활이 한국인들의 정서에 얼마나 파고들 수 있을까?’ 따위의 걱정도 샘솟았다. 그러나 이 낯선 인물과 소재의 조합은 오히려 쏠쏠한 시청률 기록을 거두며 ‘바퀴 달린 집으로 전국을 돌며 소중한 지인들을 초대해 함께 살아보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증했다. 오는 8월 27일 종영을 앞두고 꾸준히 화제에 오르고 있는 [바퀴 달린 집]에 그동안 어떤 매력적인 게스트들이 찾아왔는지, 프로그램의 어떤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되짚어 본다.

끝판왕급 반전 매력! 시청률 재상승에 한몫한 엄태구

최근 [바퀴 달린 집]이 시청률 맛집으로 소문난 데에는 배우 엄태구도 큰 힘을 보탰다. 수년간 [밀정], [택시운전사], [차이나타운], [안시성] 등 영화와 OCN 드라마 [구해줘 2]를 통해 주로 거칠고 묵직한 캐릭터를 소화한 그는, 김희원의 충무로 지인 중 1명으로 출연한 [바퀴 달린 집] 남양주 편에서 정반대의 실체(?)를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자기보다 어린 여진구에게도 시종일관 존댓말을 쓰며 깍듯하게 굴거나, 특유의 마초적인 목소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줍은 단답형 말투로 성동일의 끊임없는 감탄과 놀림 속에 시청률을 4.6%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여진구가 요리 준비를 하는 동안 망부석처럼 서서 냉장고 문을 잡아 주는가 하면, 감자전 만들기를 돕는답시고 감자 조각이 거의 소멸할 때까지 강판에 갈아버리는 보기 드문 성실함 역시 놓칠 수 없는 엄태구의 매력 포인트. 호스트와 게스트를 통틀어, 스크린과 브라운관이 아니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배우들의 이 같은 진정성이 [바퀴 달린 집]의 호감도를 견인한 원동력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최고 시청률을 뒤집어 놓으셨다! 다시 만나 반가웠던 아이유

종영까지 에피소드가 두 편 남긴 했지만 [바퀴 달린 집]의 자체 최고 시청률(전국 평균 5.4%, 순간1분 6.6%)은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이 놀라운 기록의 주인공은 지난해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매혹적인 호텔 사장 ‘장만월’로 열연, 여진구와 ‘만찬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아이유. 문경에 집을 차린 삼 형제에게 사과, 송고 버섯 등 싱싱한 먹거리들을 선물하고, 자신을 초대해 준 여진구에게 장난을 걸면서도 계속 챙겨주는 모습은 [호텔 델루나] 종영 후 아쉬움에 빠졌던 팬들의 마음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특히 아이유는 예상도 못했던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며 “힐링하러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투정을 부리면서도, 주저 없이 비행에 성공하는 등 ‘역시 아이유는 예능에서도 아이유답다’라고 생각하게 했다. 삼 형제와 아이유가 패러글라이딩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1분’은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단 한 번의 일탈을 꿈꾸는 시청자들의 소소한 욕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니었을지.

‘원조 개딸’은 다르다! 환상의 짝꿍 정은지

[바퀴 달린 집]의 내용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국을 내 집 앞마당 삼아 유랑하며 트레일러 하우스에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 하루 동안 집들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주 등장하는 게스트들은 성동일, 김희원 또는 여진구와는 가족 못지않게 가까운 동료들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개딸 1호로 성동일과 환상의 부녀 케미를 자랑했던 정은지는 춘천 편(8월 13일 방송)에서 ‘동일 아부지’와의 역대급 친분을 과시,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뜨거운 환영에도 잠시, 곧바로 노동에 투입되면서도 불평 없이 주어진 일을 척척해내고, 더위에 지친 삼 형제에게 곧장 휴대용 선풍기를 건네주는 그의 배려심은 성동일이 여러 게스트 중에서도, 역대 개딸 중에서도 유독 정은지를 반가워하고 아끼는 이유를 실감케 했다. 소위 ‘힐링’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가족애가 눈에 띄는 것은 각박한 현실 사회에서 가족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여행도 여유롭고 건강하게, [바퀴 달린 집]의 기대되는 엔딩

[바퀴 달린 집]이 같은 tvN의 [삼시세끼] 시리즈 등 여타 여행·힐링 프로그램에 비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욜로와 슬로라이프가 적절하게 배합됐기 때문이다. 한 곳에 뿌리박힌 채 매일 똑같은 일만 하는 시청자들은 발 닿는 곳마다 이동식 집을 설치하고,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만들며 먹고 즐기고,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특별한 활동을 같이 해보는 삼 형제와 출연자들로부터 대리만족을 얻는다. 엄청나고 기발하단 소리는 못 듣더라도 분명 한국 예능 사상 가장 ‘생각보다 괜찮았던 시도’로 남을 법하다.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