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시간을 아낄 수 있는

90분 미만 영화 10편

 

by. Jacinta

 

영화를 보기 전 습관적으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상영시간이다. 솔직히 러닝타임이 긴 영화는 부담스럽다. 어둡고 컴컴한 상영관, 좁은 좌석에 앉아 두 시간 이상 버티는 것은 곤욕이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영화관을 나설 때면 온몸은 뻐근하다. 게다가 평일 저녁 퇴근 후 영화관을 찾으면 남은 하루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볼멘소리를 해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즐겁다.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방해 요소가 많은 집보다 훨씬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영화의 감동이 오래 남는 편이다. 이런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매주 영화관을 찾으면서도 영화의 러닝타임은 자꾸 신경 쓰인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만큼은 아니어도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는 영화는 보기 직전까지 망설여진다. 거기에 영화 상영 전 10여 분에 달하는 광고 시간과 몇몇 영화 엔딩에 들어간 쿠키 영상까지 생각하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머무르는 시간은 의외로 상당하다.

그래서 영화를 즐겨 보면서도 러닝타임이 신경 쓰이는 이들의 금쪽같은 시간도 체력도 절약할 수 있는 러닝타임 90분 미만 영화 10편을 모아봤다.

 

 

<이미지 : UPI>

 

10. 맨 인 더 다크 (2016) 88분

 

일반적으로 장르 영화의 러닝타임은 100분 내외이다. 긴장감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공포 스릴러 장르일수록 길게 늘어지는 느릿한 전개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장르 영화에 비해 러닝타임은 무척 준수한 편이다. 지난여름 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좋은 성적을 거둔 <맨 인 더 다크>는 88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알차게 활용한 영화이다. 의외의 캐릭터를 기용해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 가쁜 서스펜스는 짜릿한 긴장을 주기에 충분하다. 요즘처럼 때 이른 더위에 늘어질 때면 짧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맨 인 더 다크>를 권해본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9. 판타스틱 Mr. 폭스 (2009) 87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100분 내외이다. 2014년 아트버스터라 불리며 흥행에 성공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러닝타임은 정확히 100분이며, 귀여운 소동극을 그린 <문라이즈 킹덤>은 94분이다. 앤더슨 감독의 첫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는 무려 87분이다. 상당한 인내와 노동이 필요한 스톱 모션 제작 방식은 러닝타임이 짧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표적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월레스와 그로밋>과 비교하면 영화 속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은 어색할 때도 있지만, 앤더스 감독 특유의 귀엽고 엉뚱한 상상력은 유쾌하다. 현재 앤더스 감독은 두 번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아일 오브 독스>를 제작 중인데 스칼렛 요한슨,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조지 클루니와 메릴 스트립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이미지: 티캐스트>

 

8. 자전거 탄 소년 (2011) 87분

 

칸이 사랑하는 벨기에 형제,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감독의 영화도 대개 100분 내외로 부담 없다.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극적인 전개 없이 누군가의 일상을 관찰하듯 집요하게 따라가는 시선이 특징이다. 비록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설정은 없어도 제도권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바라보는 형제 감독의 따스한 시선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긴 여운을 남긴다. 예술 영화는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을까 선입견을 먼저 갖는다면, 러닝타임 100분 내외의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는 예술 영화의 벽을 허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자전거 탄 소년>은 그들 영화 중 진입장벽이 낮은 가장 대중적인 영화로 11살 소년의 가혹한 이야기는 의외로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7. 프란시스 하 (2012) 86분

 

<프란시스 하>의 낭만적인 흑백 풍경은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한다. 엉뚱한 4차원 매력으로 똘똘 뭉친 그레타 거윅은 제 옷을 입은 듯 86분을 종횡무진하며 여전히 방황하는 이 시대 청춘을 위로한다. 고달픈 현실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은 뉴요커 프란시스의 홀로서기는 공감을 얻으며 7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2005년 <오징어와 고래>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데 이어 화려하고 분주한 뉴욕의 일상을 과감한 흑백 영상으로 담은 <프란시스 하>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확고한 스타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노아 바움백 감독을 있게 한 <오징어와 고래>, <프란시스 하>는 공교롭게도 모두 러닝타임이 80분대이다.

 

 

<이미지: 영화사 진진>

 

6. 원스 (2006) 86분

 

음악을 매개로 청춘 남녀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존 카니 감독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안겨준 영화이다. 보통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가 외적인 화려함에 치중하는데 반해 <원스>는 잔잔하고 담백한 스토리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사랑받은 영화 음악은 어느 한 곡 놓치기 싫을 만큼 섬세한 감성이 베여 있다.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 음악은 아카데미 주제가상(Falling Slowly) 수상으로 이어졌다. 단순한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감성적인 음악과 두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는 음악 영화가 줄 수 있는 감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미지: 조이앤컨텐츠그룹 / (주)팝엔터테인먼트>

 

5. 로크 (2013) 85분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와 TV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 <타부>의 각본을 쓴 스티븐 나이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전화 통화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로크>의 설정은 문득 콜린 파렐의 <폰 부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도 <폰 부스>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로크>는 단 한 사람, 주인공 톰 하디뿐이다. 거기에 운전 중인 자동차라는 폐쇄적인 공간 설정은 관 속에 갇힌 라이언 레이놀즈가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베리드>를 연상시킨다. 두 영화의 인상적인 설정을 차용한 <로크>는 톰 하디의 연기력이 오롯이 드러나는 영화이다. 톰 하디는 이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비록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러 영국 배우의 목소리 연기를 들을 수 있다. <브로드처치>의 올리비아 콜맨, <셜록>의 앤드류 스캇, <디 어페어>와 <루터>의 로스 윌슨과 신인 배우 시절의 톰 홀랜드 등 여러 배우의 목소리 연기는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이미지: (주)코리아스크린 / NEW>

 

4. 파라노말 액티비티 (2007) 85분

 

1999년 개봉한 페이크 다큐 <블레어 윗치>는 공포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작품이다. 자극적인 장면 대신 심리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영화는 흥행 대박을 터뜨리며 이후 수많은 공포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중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블레어 위치> 이후 나왔던 영화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영화이다. 어느 젊은 부부에게 벌어지는 한밤중의 미스터리는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이 일품이다. 페이크 다큐 특성상 드라마틱한 전개는 약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는 미스터리 현상은 충분히 공포스럽다. 끝으로 영화는 세 가지 엔딩이 있는데 이중 극적인 효과가 뛰어난 엔딩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다는 극장판 엔딩이다. 이후 시리즈로 나온 후속작은 권하지 않는다.

 

 

<이미지: 영화공간 / (주) 가보차 / 더 픽쳐스>

 

3. 슬로우 웨스트 (2015) 84분

 

보통 ‘서부극’하면 황량한 사막에서 벌어지는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한때 서부극은 지금의 각종 히어로 영화처럼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서부극의 설정은 낡은 이야기가 됐고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영국과 뉴질랜드 합작영화 <슬로우 웨스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부극의 21세기 버전 같은 영화이다. 한 소년의 순수한 사랑과 성장을 담은 영화로 사막은 더 이상 생존만을 위한 황량한 곳이 아니다. 고단한 여정과 사막의 밤은 힘들어도 낭만적이며 자꾸만 순수한 감성을 환기시킨다. 특히 영화의 강렬한 엔딩은 오래도록 긴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시네마 뉴원>

 

2. 이다 (2013) 82분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이다>는 예술영화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완벽한 미장센과 깊이 있는 주제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았다. <이다>는 두 여인의 대비되는 이야기로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되짚는다. 그리 많지 않은 대사, 엄격함과 여백의 미가 공존하는 4:3 비율의 흑백 영상은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결코 친절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비극을 경험한 개인의 아픔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로 처음의 낯섦은 어느새 이해로 다가온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영상과 짧은 러닝타임은 다소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예술영화 감상을 시도하는데 진입장벽을 낮춰줄 것이다.

 

 

<이미지: 명보아트시네마 / THE픽쳐스>

 

1. 비포 선셋 (2004) 79분

 

여행지에서 꿈꾸는 로망이 실현된 영화 ‘비포’ 시리즈는 수많은 청춘 남녀의 환상이다. 영화 속 두 남녀의 교감은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판타지임에도 마치 아는 이야기를 보는 듯한 현실적이다.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내비치며 인생의 여러 의미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스럽고 지적이다. <비포 선셋>은 아쉽게 헤어졌던 두 사람이 9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이다. 생동감 넘치는 대사는 여전하며 서로 다른 환경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아쉬움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와 79분의 러닝타임은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에단 호크, 줄리 델피의 ‘비포’ 시리즈 나머지 작품의 러닝타임도 100분을 조금 넘기 때문에 아직 안 봤다면 하루 동안 충분히 정주행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