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이미지: SBS

코로나19 장기화에 찜통더위, 눅눅한 장마까지 겹쳐 심신의 피로가 가실 날이 없는 요즘이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주말 내내 본방을 사수하겠다며 기억해 둔, 혹은 딱히 볼 생각도 없었던 TV 채널들을 오가다 보면 소소한 위로도 받고 온몸의 긴장도 조금씩 풀린다. 현란한 브라운관 화면 중에서도 주말 시청자들의 마음에 떨어져 콕 박힌 예능 프로그램들의 ‘결정적 순간’ 다섯 가지를 되돌아본다.

추억 소환하며 따뜻하게 막 내린 ‘삼시세끼 어촌편5’ (7월 10일 방송)

11주 동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놓은 죽굴도의 세끼 가족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재미와 감동을 잊지 않았다. 세련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으로 난생처음 계란말이 만들기에 도전한 유해진, 어떻게든 ‘유선수’의 요리를 도와주려는 원조 셰프 차승원의 티격태격 케미는 마지막 회여서 그런지 유독 애틋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전화로 인사를 전한 막내 손호준을 작정하고 놀리면서도 챙겨주는 형들의 진면모는 왜 다들 이 ‘가족’에 열광하는지 알 만한 이유이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각종 질문에도 성의껏 답변하는 와중에 명장면들을 회고하며 즐거워하는 차유 콤비의 마지막 인사는 아쉬움 속에서도 나영석 사단의 후속 프로젝트에 다시 기대를 갖게 한다. 게다가 [삼시세끼 어촌편5] 제작진이 촬영 전 계약한 업체의 쓰레기 무단 소각으로 죽굴도에 화재가 발생, 일부 산림이 소실된 점에 대해서도 짧지만 확실하게 사과를 전했고, 지자체 및 주민들과 계속 협력해 산림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들의 추후 행보에 더욱 믿음이 실린다.

린다G가 아닌 이효리의 눈물, ‘놀면 뭐하니?’ (7월 11일 방송)

핑클의 리더로서, 독보적인 여성 솔로 가수로서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슈퍼스타’ 이효리. 그도 자신을 향한 날선 시선에는 약하디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효리는 지난 1일 윤아와 함께 모 노래방에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다가 누리꾼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방송을 급히 종료하고 각자의 계정을 통해 사과를 전했으나, 이효리의 마음은 이후에도 영 편치 못했던 모양이다. 혼성그룹 ‘싹쓰리’ 데뷔를 앞두고 유재석, 비와 함께 연습에 몰두하던 이효리는 대화 도중 얼굴을 감싸 쥐고 우는 모습으로 동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시국’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특히 높은 곳에 방문하고, 라이브 방송까지 시도한 것은 분명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으로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 흉악하고 명백한 죄를 짓고도 반성문 몇 장 쓰고서 사법부에 용서를 구한다는 뻔뻔한 이들도 있고, 범죄 혐의가 있어도 이미 고인이 됐으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라는 이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효리의 행동이 과연 그 정도의 비난을 들어도 싼 짓이었는가? 팀원들에게 미안해하며 탈퇴를 언급할 만큼 사회에 해악을 끼쳤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생방송을 들었다 놓은 반전의 맛! ‘런닝맨’ 10주년 특집 레이스 (7월 12일 방송)

이름표 떼겠다고 무작정 달린 지 어느덧 10년. 이제는 해외 팬들도 즐겨보는 대표 K-예능인 SBS [런닝맨]이 역대급 반전의 역사를 갱신했다. 1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괴도 런닝맨의 도발’ 편의 후반 20분은 아예 생방송으로 진행됐고, 시청자들에게는 실시간 문자 투표로 멤버들 중 숨은 괴도 2명을 직접 잡아내는 권한이 주어졌다. 사실 이광수가 첫 번째 괴도로 밝혀지는 순간까지는 긴장감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들마저 괴도로 의심했던 유재석은 시민이었으며, 진짜 두 번째 괴도는 형사 역의 양세찬이었음이 밝혀지자, 어김없이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려 왔다. 실제로 이 괴도 검거 실패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 7.3%를 기록하며 [런닝맨] 팬들의 변함없는 애정을 입증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쉴 새 없이 뜨고 지는 가운데 예능판의 강자로 굳건히 버티고 있는 [런닝맨]이 앞으로도 힘차게, 그리고 전속력으로 달리길 바란다.

에너지 넘치는 ‘깝 형제’에 접수당한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7월 18일 방송)

지난 11일, 트로트 열풍의 주역 중 2명, 장민호와 영탁의 출연으로 흥이 넘쳤던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하지만 이때의 흥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1주일 뒤인 18일 ‘놀토’를 방문한 게스트는 ‘군필돌’ 선후배 조권과 서은광. 이들은 아예 량현량하처럼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 등장하며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전역한 지 겨우 3개월 된 서은광은 시종일관 과한 의욕을 발산하는 통에 경고를 밥 먹듯 받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조권 역시 특유의 ‘깝’을 마음껏 방출하면서도 순간순간 번뜩이는 재치로 패널들을 긴장시키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깝 형제’ 조권과 서은광이 보여준 케미 및 각자의 매력은 웬만한 톱스타들도 따라잡기 힘든 어떤 경지로 보인다.

이승기, 가수 본업 복귀각?! ‘집사부일체’ (7월 19일 방송)

데뷔 당시 “누난 내 여자니까~”를 목 놓아 부르며 ‘국민 남동생’ 반열에 올랐던 이승기. 꽤 오랫동안 배우 활동에 전념했던 그가 가수의 본능을 완전히 잊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12일, 19일 총 2주에 걸쳐 이정현을 사부로 모신 [집사부일체] 멤버들은 한국 가요계의 전성기였던 1999년을 오마주한 일명 ‘탑골 콘서트’를 선보였다. ‘테크노 여전사’로서 불변의 카리스마를 발휘한 이정현의 무대도 감탄스러웠으나, 이 날의 진짜 주인공은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을 부른 이승기였다. 풋풋했던 시절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더욱 원숙해진 고음 처리로 록 발라드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이승기 버전의 “금지된 사랑” 클립 영상은 공개 후 단 몇 시간 만에 조회 수 30만 뷰를 돌파했는데, 이는 그의 호소력 짙은 노래에 대한 팬들의 갈증과 그리움이 깊다는 증거다. 이승기에게 가수로 다시 나설 의향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가 아닐지.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