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더스트>는 빚더미에 시달리던 형제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연쇄 은행 강도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의 크리스 파인, <워크래프트>의 벤 포스터가 각각 동생과 형, 형제 역을 맡았다. 영화의 설정은 전형적인 미국 서부극이다. 형제가 은행을 털고 텍사스의 보안관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스트 인 더스트>는 참 좋은 영화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아이러니한 연출과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 특유의 위트 넘치는 대사 때문일 것이다.
형제는 시골 마을의 작은 은행을 턴다. 범행 수법도 능숙한 듯 어리숙하다. 추적을 당할까 봐 푼돈을 제외하고 20달러짜리 이하의 지폐만 담는다. 그러자 그 은행에 손님으로 있던 할아버지는 형제에게 ‘멍청하다’ 라고 말한다. 형은 ‘멍청하다’라는 말에 흥분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오히려 뒤돌아서서 소리친다. 동생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총을 마치 마음껏 쓰라는 듯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늙은 노인의 말대로 형제는 멍청했다. 하지만 머리 좀 못 굴리면 어떤가. 은행을 턴다는 목적은 달성했는데. 그렇게 형제는 노인이 쏘아대는 총알을 뒤로하고 급히 차에 올라탄다. 참으로 웃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장면으로는 식당 종업원의 떼쓰는 모습을 꼽을 수 있겠다. 은행털이 후 형제는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이후 보안관이 식당을 찾아가 팁을 받은 종업원에게 ‘증거가 될 수 있다. 돈을 달라.’ 라고 말하는데, 이때 종업원의 대답이 기가 막힌다.
‘이건 내 팁이니, 가져가려면 영장 가져와라.’
아이의 학비에 쓰이게 될 200달러이니 주변 범죄와 상관없이 자신의 것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2000달러도 아니고 200달러에 영장을 가져오라고 하니 보안관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이처럼 쉐리던은 공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숨 막히는 서부극에 위트 있는 상황과 대사들을 첨가하며 주위 상황을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로스트 인 더스트>가 좋은 영화인 두 번째 이유다. 좋은 각본이 있어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다. <스타트렉>으로 커크 선장의 이미지가 강했던 크리스 파인, <워크래프트>와 <엑스맨: 최후의 전쟁> 등에 출연했던 벤 포스터는 블록버스터와 어울리는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두 배우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인생작을 만들어낸다. 크리스 파인은 선과 악 사이에서 선에 조금 치우쳐져 있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 좌절하는 동생 ‘토비’ 역을 실감 나게 소화해냈다. 능글맞지만 오버스럽고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던 <스타트렉>의 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파인은 자신의 최근작 중에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나는 크리스 파인의 팬이 되었다.
반면 벤 포스터가 맡은 형 ‘태너’는 선과 악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쳐져 있지 않다. 오히려 갈팡질팡 하고 있다. 아니, 극 전반부와 후반부의 모습이 다르다고 보는 게 맞겠다. 처음엔 얄밉다가도 마지막엔 동정이 가듯이. 벤 포스터는 이런 태너의 모습과 심리를 완벽히 구분해내며 연기하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로스트 인 더스트>는 좋은 영화가 갖춰야 될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 좋은 감독, 좋은 각본, 좋은 배우까지 모두 말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보안관이 나쁜 강도들을 뒤쫓아 총질 해대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처한 가난의 대물림을 센스 있게 다뤘다고 볼 수 있다.
끝나고 나서도,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사람을 멍하게 만들던 영화. 이 가을, 수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로스트 인 더스트>가 아닐까.

 

테일러콘텐츠 크레에이터: 필름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