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매력이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

 

by. Jacinta

 

여전히 많은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천만 관객이 멀지 않은 <택시운전사>, 대세 배우 두 남자의 환상 케미가 돋보이는 <청년경찰>, 시리즈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돌아온 <혹성탈출: 종의 전쟁>까지, 현재 박스오피스 1~3위를 사이좋게 차지한 세 편의 영화는 남성 캐릭터의 역할이 주도적이다. ‘재밌으면 됐지, 뭐 어떻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남성만큼이나 동등하게 활약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다행히 남성 중심의 영화판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도 종종 나오는데, 2017년은 어느 해보다 영화 속에서 발군의 개성을 드러내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크다. 당당하게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끌어가거나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깜짝 놀라게 하는 위풍당당한 매력을 드러내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모아봤다. (2017년 개봉 기준, 실화 영화 제외)

 

 

* 각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미스 슬로운 –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이미지: 메인타이틀 픽쳐스 / 영화사빅>

 

단지 성별을 바꿨을 뿐인데 영화가 주는 통쾌함은 더욱 시원하고 강력하다. 보통은 남자가 중심이 되는, 인정사정없는 치열한 로비스트의 세계를 그린 <미스 슬로운>에서 성공한 로비스트 ‘슬로운’은 총기 규제 법안 통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동료를 이용하는 것은 별일 아니다. 열일을 위해 각성제를 먹어 잠을 줄이고, 인간 본연의 성욕은 성매매로 해소한다. 심지어 자신의 신념과 승리를 위해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카리스마 연기까지 더해진 <미스 슬로운>은 21세기에도 여전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 속 시원한 한방을 선사한다.

 

 

2. 겟 아웃 – 로즈 아미티지(앨리슨 윌리암스)

 

<이미지: UPI 코리아>

 

크리스의 여자친구 로즈는 예쁜 데다 사려심도 깊다. 흑인을 무시하는 백인 경찰 앞에서 남자친구를 감싸고 조금은 유별난 자신의 부모가 남자친구를 곤란하게 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크리스는 막상 도착한 로즈의 집에서 불편한 기운을 느껴도 다정한 그녀에게 섣불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은 돌아가기로 한 날, 로즈는 감춰둔 본색을 드러낸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주변을 속여온 여성들을 많이 보았다. 로즈가 다른 점은 소름 끼치는 냉혹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크리스와 로즈에게 다가오는 사이렌을 보고 미소 짓는 로즈의 표정은 섬뜩한 공포를 안긴다.

 

 

3.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 천인숙(전혜진)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현수가 비정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팀장 천인숙 때문이다. 웬만한 남성 캐릭터 못지않게 서늘한 카리스마를 가진 천인숙에겐 눈곱만큼의 자비심도 없다. 마약 밀매 조직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부하들을 어두운 범죄 세계로 내몰고, 부하가 흔들릴까봐 중대한 소식을 숨기기도 한다. 오직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고 몰아세우는 천인숙의 모습은 때때로 범죄자들보다 냉정해 보일 정도다. 그녀가 속한 남성 중심의 경찰청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엣가시 같은 범죄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은 잔인하긴 해도 매력 있다.

 

 

4. 원더 우먼 – 다이애나/원더우먼(갤 가돗)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원더우먼의 타고난 능력은 남성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신의 능력을 가진 원더우먼이 매력적인 것은 능력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능력을 보다 넓은 세상을 위해 사용할 것을 결심한 원더우먼은 과감히 고향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향한다. 세상을 구하기까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녀만의 방식으로 적응하는 과정은 시원한 웃음을 주고,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전장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알고 잠시 인간 세상에 실망도 하지만 사랑과 이해의 시선으로 지구를 파괴하려는 패트릭 경에 맞선다. 원더우먼은 지구를 구했을 뿐 아니라 무너지던 DC 왕국까지 구했다.

 

 

5. 언노운 걸 – 제니(아델 하에넬)

 

<이미지: 오드>

 

각박한 도시의 삶은 타인에게 신경을 쓸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거리의 부당함을 쉽게 지나치고 모른 척한다. 주로 가난하거나 이민자들이 주로 찾는 변두리 병원을 임시로 맡은 제니는 다르다. 단 한 번의 무심함이 불러온 살인사건을 두고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 마냥 탓하고 괴로워한다. 그때 문을 열어줬더라면, 후회와 책망은 자신만의 정의 실현으로 이어진다. 신원 미상 십 대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사건의 동선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과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목숨도 위협받는다. 경찰은 제니의 집요함을 귀찮아하고, 누구도 선뜻 제니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제니의 모습은 숭고함이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

 

 

6. 옥자 – 미자(안서현)

 

<이미지: 넷플릭스>

 

미자의 목표는 단 하나다. 거대기업 미란도에 팔려간 옥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미자는 무모할 정도로 돌진한다. 마치 괴력 소녀라도 된 듯 유리문으로 몸을 던지고, 지하상가에 몰린 인파를 헤치고, 심지어 차량이 뒤얽힌 터널에서는 달리는 것도 모자라 트럭에 매달리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헷갈릴 정도지만, 옥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렇지 않다. 포기를 모르는 집념은 마침내 옥자가 있는 뉴욕에서 재회하기에 이른다. 나이는 어려도 누구보다 순수하며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미자의 신념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7. 엘르 – 미셸(이자벨 위페르)

 

<이미지: 소니 픽쳐스>

 

미셸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펑정심은 놀라움을 넘어 서늘할 정도다. 지금의 단단한 미셸은 살인범의 딸이라는 유난했던 과거에서 비롯됐다. 미셸은 자신을 감추는데 능숙하고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욕망에도 솔직하다. 자신을 난감하게 한 부하 직원을 농락하고, 이웃집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대담하게 접근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간범 추적에 나선 미셸은 마침내 알게 된 진실 앞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차분하게 범인을 유도할 함정을 만들고 기다린다. 결정적인 순간 아들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크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 미셸은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매혹적인 여성이다.

 

 

8. 레이디 맥베스 – 캐서린(플로렌스 퓨)

 

<이미지: 씨네룩스>

 

감옥 같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캐서린은 늘 답답하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남편의 성적 취향은 변태적인 데다 캐서린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행동반경을 통제하려 한다. 늙은 시아버지는 캐서린을 아이를 낳는 도구로만 볼 뿐이고, 하녀 애나는 매번 갑갑한 코르셋을 입히고 더욱 지루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하인 세바스찬과 눈이 맞아 그동안 실현하지 못했던 욕망의 세계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캐서린은 금기란 금기는 죄다 뛰어넘기 시작한다. 이제야 깨달은 짜릿한 흥분과 쾌락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연인마저 살인범으로 만든다. 끝이 아니다. 자신을 배반하려는 연인의 변심을 역이용해 철저하게 되갚아준다.

 

 

9. 애나벨 – 인형의 주인: 린다(룰루 윌슨)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린다는 호기심을 절제할 줄 아는 소녀다. 계속해서 금지된 방에 들어서는 재니스와 달리 물러서야 할 타이밍을 정확하게 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수상한 존재가 있음을 깨달은 뒤 경계를 늦추지도 않는다. 모든 사태의 원흉인 인형을 제거하기 위해 위풍당당하게 우물로 향하는 대범함까지 갖추고 있다. 보통의 소녀라면 벌벌 떨며 소리만 내지를 상황에도 비상한 두뇌 회전으로 위험한 상황을 피해 간다. 한 마디로 겁이 없어도 너무 없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애나벨 때문에 놀라긴 해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이 정도면 <13일의 금요일>의 연쇄 살인마 제이슨을 만난다 해도 맞짱 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