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중국발 미세먼지에 목도 눈도 피곤하다. 이런 때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떠할까. 질겅질겅 나 홀로 고독을 씹어도, 폼생폼사만을 외쳐도, 스타일리시한 남자 배우들의 모습에 저절로 눈 호강하며 현실의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을지 모른다.

 

 

1. 언터처블(1987)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금주법 시대 악명 높은 마피아와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언터처블’에서 총격전만큼이나 인상을 남긴 것이 있다. 영화에서 빼어난 간지를 뽐내던 캐릭터를 완성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의상이다. 아르마니는 1980년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관능적인 분위기의 슈트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셀럽들의 사랑을 받는 명품 브랜드다. ‘언터처블’에서는 영화 의상 디자인에 참여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성의 중후한 매력을 드러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지금 봐도 세련된 슈트핏은 영화를 더욱 스타일리시하게 완성했다.

 

 

 

2. 리플리(1999)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신분 상승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되는 남자의 섬뜩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리즈 시절 외모에 감탄하게 되는데, 특히 당장에라도 이탈리아 해변으로 떠나고 싶게 하는 주드 로의 패션은 조각 같은 외모만큼이나 선명하다. 그가 연기한 디키는 의상만으로도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낸다. 클래식한 스타일의 캐주얼 의상은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면서도 멋스러움을 완성한다. 그에 비해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리플리는 겉과 속이 다른 앳된 외모를 더욱 강조하는 수수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상대방을 감쪽같이 속인다.

 

 

 

3. 파이트 클럽(1999)

 

<이미지: 이십세기 폭스>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데이빗 핀처 감독의 감각적인 미장센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강렬한 여운을 주는 영화다. 공허함을 느끼는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테일러 더든에게 이끌려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허를 찌르는 결말의 반전 영화로 꼽히는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테일러 더든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잭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테일러는 거친 매력으로 분한 마초남이다. 무의미하게 직장인 코스프레를 반복하는 잭과 성격은 물론 스타일도 전혀 다르다. 풀어헤친 셔츠에 붉은빛 가죽 재킷을 걸치거나 강렬한 패턴이 들어간 옷을 선호한다. 그의 차림새만 봐도 사회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본성이 느껴진다.

 

 

 

4. 아메리칸 사이코(2000)

 

<이미지: 라이온스 게이트>

 

부와 권력 뒤에 숨어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의 이야기다. 겉과 속이 다른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와 위선, 도덕적 해이를 꼬집는다. 또한 주인공 패트릭으로 분한 크리스찬 베일의 출세작으로 영화 속에서 선보인 반전 일상은 지금도 뚜렷하다. 평소에는 헬스클럽과 미용실을 오가며 유명 브랜드로 치장하는데 몰두해 있다면, 살인 충동에 휘말릴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본성을 드러낸다. 물질주의 허상에 찌든 그는 평소의 말쑥한 슈트 차림을 방해하지 않을 킬러 룩까지 구비해 분열된 자아를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어쨌든 평소에는 완벽 그 자체의 슈트핏을 선보인 크리스찬 베일은 이후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더욱 고급스럽고 중후한 매력을 드러냈다.

 

 

 

5. 오션스 일레븐(2001)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케이퍼 무비는 유독 다른 어떤 장르보다 스타일리시한 매력이 있다. 화려한 멀티 캐스팅과 리드미컬한 연출은 인물들이 벌이는 범죄 한탕극에 빠져들게 한다. ‘오션스 일레븐’은 이제 막 출소한 오션이 동료들과 카지노를 강탈할 계획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개성만점 범죄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답게 스타일도 천차만별이다. 자유분방한 매력을 드러내는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의 캐주얼한 스타일과 재력을 과시하는 앤디 가르시아의 중후한 스타일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밖에도 캐릭터의 매력을 십분 살린 멤버들의 의상까지, ‘오션스 일레븐’은 범죄 계획부터 구성원까지 화려함으로 시선을 끈다.

 

 

 

6. 나를 책임져, 알피(2004)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여자들과 가벼운 만남을 이어가며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바람둥이가 주인공인 영화다. 원작의 메시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연출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알피를 연기한 주드 로다. 영화는 작정하고 볼거리에 더욱 치중한다. 팬들의 탈모 걱정을 쏙 들어가게 하며 주드 로의 매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뉴욕 거리를 누비는 Vespa 스쿠터,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블레이져, 스트라이프 재킷을 더욱 캐주얼하게 완성하는 머플러, 감히 도전하기 힘든 핑크빛 셔츠, 그리고 마음을 녹일 것 같은 눈빛과 미소까지, 눈호강도 이런 눈호강이 없다.

 

 

 

7. 싱글맨(2009)

 

<이미지: 하준사>

 

완벽한 슈트핏을 논할 때 절대 제외할 수 없는 영화다.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톰 포드의 첫 연출작이며, 남다른 직업 정신이 빛을 발한 클래식한 감성의 영상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콜린 퍼스가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상실감에 빠진 주인공으로 출연해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톰 포드 안경을 쓰고, 품격을 드러내는 빈틈없는 슈트핏을 보여주는 콜린 퍼스의 우월한 비주얼에도 할 말을 잃게 된다. 비록 영화는 공허한 정서로 가득하지만, 그의 처연한 눈빛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 이유는 완벽할 것 같은 일상 속에 가려진 슬픔 때문이 아닐까. 또한 레트로 패션을 우아하게 소화한 줄리안 무어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니콜라스 홀트, 흑백 영상 속에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매력을 드러내던 매튜 구드 등 어느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영화다.

 

 

 

8. 드라이브(2011)

 

<이미지: 판씨네마>

 

라이언 고슬링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탁월한 스타일링으로 따라 하고 싶은 패션을 선보인다. 매번 클래식한 슈트부터 캐주얼한 빈티지 패션까지 멋스럽게 소화한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드라이브’는 유독 더 눈에 띈다. 황금색 전갈이 수놓아진 재킷은 화려함으로 이목을 끌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어두운 내면을 상징하는 역할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카잔으로 불리는 재킷은 유니크한 매력에 젊은 층에서 많이 선호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셈이다. 참고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신당한 안상구가 분노를 곱씹던 장면에서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9. 007 스카이폴(2012)

 

<이미지: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냉전이 종식되고 서서히 퇴락해가던 ‘007 시리즈’는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를 만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세 번째 본드 영화 ‘007 스카이폴’은 1962년 이래 22편의 작품을 선보인 시리즈 탄생 50주년에 맞춰 나온 작품이다. 전작 ‘퀀텀 오브 솔러스’의 비판을 잊게 하는 스케일과 드라마를 선보이며 시리즈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묘사한 제임스 본드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으며 침체일로의 시리즈를 되살리는데 기여했다. 원작에서 묘사한 외모와 체격에 부합하진 않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섬세한 내면 연기는 누구보다 더 제임스 본드를 돋보이게 했다. 게다가 뭘 입어도 폼나게 소화하는 비주얼까지. ‘007 스카이폴’에서는 톰 포드를 선택해 럭셔리한 슬림핏을 뽐냈다. 톰 포드 제품을 입는다고 누구나 다니엘 크레이그와 같은 슈트핏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10. 위대한 개츠비(2013)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이보다 더 화려하게 부활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손길에서 태어난 1920년대 뉴욕은 열정과 유혹이 넘치는 매력적인 도시 그 자체다. 그 시절 뉴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금주법에 대한 반작용으로 밀주가 급증하면서 자연스럽게 술과 재즈가 가득한 파티 문화가 확산됐다. 개츠비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호화로운 별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파티를 주체하며 아메리칸드림을 몸소 보여줬다. 브룩스 브라더스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작한 클래식한 슈트는 개츠비의 외로운 내면을 완벽하게 감추며 20세기 초 황금기를 맞이했던 뉴욕의 씁쓸한 이면을 연상시킨다. 마치 패션쇼를 보는 듯한 럭셔리한 패션과 화려한 프로덕션은 아카데미 미술상과 의상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