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쓰리 빌보드]는 분노와 갈등,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지금 시점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영화다. 딸을 잃은 여성의 분노에서 시작한 영화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는 물론 분노가 야기한 아이러니한 비극까지 강렬한 블랙 코미디로 파고든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분노의 향방은 관객의 기대에 매번 어긋나며 기묘한 희열을 안긴다.

 

 

 

공권력을 조롱하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쓰리 빌보드]는 한적한 도로에 덩그러니 서있는 낡은 광고판을 유심히 쳐다보는 밀드레드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딸을 잃은 상심에 빠진 초췌한 표정의 밀드레드와 나무판자가 떨어져 나가고 색이 바랜 광고판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뼈아픈 공통점을 갖는다. 마침내 현실을 자각한 밀드레드는 오래도록 참아왔던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기로 한다.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월러비 서장’이라는 세 문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밀드레드는 어느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데, 사회의 약자가 무능력한 시스템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당당한 피해자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밀드레드의 계획이 성공한 뒤, 범인 찾기의 뻔한 과정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 방식으로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영화는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마을의 비주류나 다름없는 밀드레드의 분노가 미치는 파장에 초점을 맞춘다. 도발적인 세 문구는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차별과 이기심이 얽힌 또 다른 분노를 자아낸다. 백인 남성의 우월감이 단단한 마을에서 대형 광고판은 당연히 눈엣가시가 되고, 밀드레드는 자신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한다. 도발적이면서도 단호한 광고 문구처럼 밀드레드의 행동에는 쉽게 침범할 수 없는 결의가 담겨있다. 그동안 숱하게 보아왔던, 무턱대고 악을 쓰거나 숨어버리는 피해자와 전혀 다르다.

 

 

부조리한 현실의 축소판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밀드레드의 광고판은 미해결 사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뿐더러 불편한 현실도 들추어낸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여전한 그곳 경찰은 차별과 혐오가 일상적이며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밀드레드와 대표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딕슨 경관을 통해 현재도 되풀이되는 약자를 향한 부당한 시선을 담아낸다. 그곳은 마치 미국 사회의 축소판 같다. 특히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미주리 주는 남북 전쟁 당시 북부 지지자와 남부 지지자가 반반씩 갈린 지역이라는 것은 어떤 접점도 이루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는 현재와 멀지 않다.

 

 

선과 악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

[쓰리 빌보드]는 계속해서 기대를 배반하는 상황 전개로 흥미를 돋우는데, 특정 시선에 고정되지 않은 인물들의 역할이 크다. 극중 피해자로 나오는 밀드레드는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그 자신도 뿌리 깊은 편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다. 광고판을 세운 후, 사람들과 갈등하며 또 다른 행동을 옮기는 과정에서 밀드레드에 대한 인상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딕슨 경관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폭력적이고 부당한 인물로 묘사되는 그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으며 [쓰리 빌보드]가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에 그치지 않게 한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분노와 고통, 무력감을 경험하며 한 가지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풍부한 서사를 입고 이야기의 향방에 주목하게 한다.

 

[쓰리 빌보드]는 분노를 터뜨리며 시작했지만, 의외의 곳에서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연출과 각본을 겸한 마틴 맥도나 감독은 돌직구 대사로 부조리한 현실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냉소와 신랄함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대신 뜻밖의 지점에서 현시대에 필요한 연대의 가능성을 여러 형태로 제시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 샘 록웰, 우디 해럴슨은 위트를 잃지 않으며 인물들이 가진 양면성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각종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휩쓸고 있는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를 더욱 강렬하게 돋보이게 하는 힘이 된다.

연출, 각본, 연기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놀라운 [쓰리 빌보드]는 3월 15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