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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Tori Telfer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누군가 도끼를 들고 앤드류와 애비 보든에게 29번이나 휘두른 지 벌써 126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도 그 ‘누군가’가 리지 보든인지 아닌지를 얘기하고 있다. 롤링스톤지는 2016년 ‘19세기 도끼 살인마가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브로들리지는 2015년 ‘리지 보든에 관한 우리의 계속되는 집착 분석’이라는 글을 썼다. 19세기 당시의 신문사 ‘Akron Daily Democrat’은 리지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의 자가에서 도끼에 맞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3년이 지난 1895년에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때문에 리지 보든에 관한 새 영화 [리지]가 나온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클로에 세비니가 제작과 주연을 맡았다.

 

보든 살인 사건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를 밝혀내는데 똑똑한 과학자의 도움은 필요 없다. 이 사건은 끔찍한 미결 사건으로 남았으며(현장에서 새어머니 애비의 시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그녀의 머리를 ‘잘못 손질한 스테이크’로 비유했다), 살인 과정에는 매우 낯선 여성이 개입했다. 리지 보든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자 동물을 사랑하는 독신 여성이었고, 도둑질을 일삼는 부잣집 규수였으며, 아끼던 반지를 아버지에게 준 화가 많은 딸이었다. 살인 사건의 원인을 놓고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녀가 유산을 원했다는 말부터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에 시달려서, 근친상간으로 인한 분노, 혹은 사랑을 저지당한 후의 좌절감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추측이 오갔다. 90분 간격으로 총 두 번의 간질 발작을 하는 동안 죽인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가 정말 살인을 저지른 걸까? 배심원들은 이 물음에 아니라는 결론을 냈지만 대부분의 역사가와 예술가들은 늘 그렇다고 말한다.

 

예고편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는 ‘퀴어’이자 ‘페미니스트’인 리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전설 같은 이야기를 끌어와 내면부터 폭발하는 작품’, ‘현세대를 위한 리지 보든 이야기’라고 평했다. 또,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작년 1월에는 ‘2018년 현 시류에 어울리는, 미투 세대에 걸맞은 영화’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세비니가 연기한 리지를 ‘말 그대로 가부장제를 격파한 캐릭터’라고 묘사했다. 관객들은 리지 보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몹시 화가 나 있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 ‘우리’의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리지 보든을 21세기 현재에 끌고 온 것이 과연 최선의 아이디어였을까? 죽은 이들을 욕되게 할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리지 보든에 관한 작품은 그녀가 여학생 무리를 습격한다는 내용의 [리지 보든의 복수]처럼 어이없는 방향으로 선회하기도 하지만, 세비니의 영화는 해당 사건을 사뭇 진지하게 다룬 작품에 속한다. 최근에 개봉한 [리지]와 [리지 보든 전설(The Legend of Lizzie Borden, 1975)], [리지 보든, 도끼를 들다(Lizzie Borden Took an Ax, 2014)]는 답답한 복도, 삐걱거리는 계단, 소름 끼치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앤드류 & 애비 보든의 시체 장면을 잘 활용했다. 세 작품 모두 배, 양고기, 비둘기, 모르핀 등으로 리지 캐릭터를 꽤나 근접하게 묘사했고 그녀가 ‘유죄’라고 상정했기 때문에 영화의 핵심 질문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닌 ‘대체 왜?’였다.

 

[리지 보든 전설]의 리지는 수수께끼 같고, 맹렬하며, 소름 끼치도록 이질적인 동시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맡은 엘리자베스 몽고메리는 반쯤 감긴 눈과 패인 턱 때문에 당시 실제 리지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영화가 나온 이후 계보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실제로 먼 친척 사이임이 밝혀졌다. 영화 내내 카메라는 리지의 얼굴을 계속 비췄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녀가 언니에게 “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라고 말할 때 ‘눈은 죽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극중 한 기자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보든 양, 당신은 정말 흔치 않은 여성이군요. 속내를 알기 정말 어려워요.”

 

영화는 리지가 아버지 앤드류에게 근친상간을 당했다는 보든 살인 사건 원인의 가장 충격적인 이론에 접근한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우리들의 상상에 맡기는데, 관객들은 두 사람의 냉혹하고, 기이하게 로맨틱한 관계를 관망하며 과연 누가 더 오싹한 인물인지를 따진다. 또한 몽고메리의 리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작품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실제와 근접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제 리지 보든 역시 알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지 보든 전설]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은 살인 시퀀스나 리지가 죽은 아버지의 입에 천천히 키스하는 때가 아니다. 영화가 끝나기 전, 리지는 엠마로부터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질문을 재차 받자 매우 천천히 뒤를 돌아 헤아리기 힘든 눈길로 언니를 바라본다. 이때 끔찍한 가사의 음악이 점점 크게 울려 퍼진다. ‘리지 보든이 도끼를 들고 / 엄마를 40번 내리쳤다네 / 자기가 한 짓을 보더니 / 아빠는 41번 내리쳤다네’

 

이미지: Lifetime

 

[리지 보든, 도끼를 들다]의 결말 또한 비슷하다. 엠마가 동생에게 살인을 저질렀냐고 묻자 부모님을 살인하는 부분이 회상 형식으로 나오고, 앞서 말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크리스티나 리치가 연기한 ‘리지’는 심미학적으로 상당 부분 다르다. 그녀는 아주 말랐고, 동그란 눈을 가졌으며 반사회적인 성향을 대놓고 드러낸다. 또한 이 작품에서 리지는 하우스 파티에서 샴페인을 마시기 위해 드레스를 입고 집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억압된 파티 걸로, 살인 사건을 발견했을 때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난 그저 내가 바라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야.”

 

[리지 보든 전설]과 [리지 보든, 도끼를 들다] 모두 조사와 재판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는 실제 보든 미스터리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리지의 유명한 어록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빅토리아 시대 당시 여성이 도끼 살인을 저지를 리 없다고 굳게 믿는 19세기 남성 배심원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지 보든’이라는 여성이 얼마나 이상한지도 알 수 있다. 그녀는 독극물을 찾아다녔고, ‘페인트’라 주장하는 것이 묻은 드레스를 태웠으며, 헛간에서 배를 먹었고, 조사 및 재판 과정에서 계속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버지를 사랑한 여성, 주일 학교 선생님, 부모님을 동시에 잃어 충격받은 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비니의 영화에는 재판 장면이 거의 없다. 대신,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데 영향을 줬을지 아닐지 모르는 사건들을 집중 조명했다. [리지]에서는 앤드류 보든이 집에 새로 들어온 아일랜드 출신의 하녀 브리짓 설리번(크리스틴 스튜어트)을 지속적으로 성적으로 유린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리지와 브리짓은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시작하고, 두 여성은 결국 살인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리지 보든이 간질 발작으로 고통받았다는 내용도 다루는데, 이는 1967년에 출간된 ‘A Private Disgrace’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다. 영화는 리지의 불안정하고 억압된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발작 증세를 사용할 뿐 살인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쓰지 않는다.)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다. 헛간에 있던 두 여성이 마침내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황금빛 햇빛이 퍼지고, 보든가의 어두운 복도는 오직 촛불에 의해 희미하게 빛나도록 대조한 것이 눈에 띈다. [리지 보든 전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몇 세기 동안 묵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듯 리지의 얼굴을 계속 비춘다. 살인은 매우 잔혹하게 자행되며, 새어머니를 죽이는 세비니의 얼굴에서는 피에 굶주린 살인마의 모습부터 두려움, 비탄 등 여러 표정이 번갈아 나타난다. 가장 주목할 점은 여성이 옷을 모두 벗고 살인하는 장면이 대상화가 아닌 임파워링, 다시 말해 권리 신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비니는 이 장면이 ‘육욕적’이길 바랐다고 말한 바 있다.

 

노출, 동성 간의 로맨스, 가부장제의 몰락 등을 보며 ‘현 시류에 어울리는 리지 보든 이야기’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과연 그럴까?

 

리지 앤드류 보든 이야기를 재해석한 [리지]의 문제점은 기존과 다른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좀비 헌터 리지 보든’ 같은 걸 제작할 생각이 아닌 이상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하고자 한다면 재판장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난 수십 년간 역사가, 생물학자들이 생각해 낸 이상한 이론들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마땅하다. [리지]는 분명 잘 만든 작품이기는 하나 ‘리지 보든 전설을 끌어와 내면에서 폭발하는’ 듯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나온 모든 내용은 전에 이미 나왔다. 리지 보든이 레즈비언이라는 이론은 1984년 출간된 소설에서 나왔고, 앤드류 보든이 지배적이었다는 의심은 살인 사건 이후부터 있었다. 옷을 모두 벗은 채 살인을 저질렀다는 아이디어는 현시점에 특히나 중요한 장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앞선 두 작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지금껏 나온 ‘리지 보든’ 관련 작품에서 ‘나체 상태의 리지 보든’을 낭만화시킨 것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체의 여성이 사람의 두개골을 반으로 가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매우 강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리지 보든이 그런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이는 적어도 본인이 ‘육욕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닌, 나체인 상태가 뒤처리에 더 실용적이라는 걸 냉정히 판단했다는 추론이 더 타당하다. 도끼로 사람을 죽이면 여기저기 피가 튈 수밖에 없고, 피는 옷보다 피부에 묻은 걸 씻겨내는 게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끊임없이 ‘리지 보든 사건’을 재해석하며 저마다 자신들이 생각한 ‘버전’에 부합하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녀의 살인을 ‘용인 가능한 행동’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지금껏 나온 세 작품의 아젠다는 동일하다. 그들은 한 여성으로 하여금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죽이도록 한 게 무엇인지 뿐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사람들이 그녀를 응원하는지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 그 결과 ‘실제 리지 보든’은 여성이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쟁취하고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인 ‘가상의 리지 보든’에 밀리는 존재가 됐다. 물론 이는 예술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독신 여성이자 부잣집 딸에 따분함과 분노를 느끼던 여성이 살인마가 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 작품 속 ‘리지’들은 항상 나체로 피를 뒤집어쓰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영화에서 이러한 리지 보든의 이야기가 진정한 폭발력을 갖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서서 그녀가 왜 무고했는지를 먼저 설득해야 할 것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The Problem With ‘Reimagining’ Lizzie Bo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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