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개봉 8일 만에 8백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동안 스포일러가 될까 봐 눈 조심, 귀 조심, 인터넷 조심한 관객들이 이제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러면서 히어로들의 운명과 별개로 [엔드게임]의 결정적 설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바로 ‘시간 여행’이다.

시간 여행은 그동안 수많은 SF 영화의 단골 소재로 그 나름의 법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에서 시간 여행 법칙은 우리가 상식이라 아는 것을 파괴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나온 대사와 설정을 통해 MCU의 시간 여행 법칙을 탐구하고, 다른 영화에서라면 경악할 만한 패러독스가 왜 문제 되지 않는지 알아본다.

#새 규칙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애초에 ‘시간 여행’ 자체는 누구도 실제로 성공하지 못했다. 수많은 가설과 상상으로 이뤄진 거대한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시간 여행 규칙은 완전히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영화에서 스콧 랭이 묻는다. “그럼 [백 투 더 퓨처]가 다 뻥이었다는 거야?” 정확히 [엔드게임]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그렇다. 작가 스티븐 맥필리와 크리스토퍼 마커스는 인터뷰에서 “인피니티 스톤 6개를 얻으러 시간 여행을 할 경우 기존 규칙 아래에서 야기되는 변화는 기하급수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차원 이동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헐크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에서 과거로 가게 되면 현재는 과거가 되고, 도착한 과거가 새로운 현재가 된다.” 따라서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사건을 바꾼다고 해도 현재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간 여행을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스콧 랭처럼 시간 여행으로 할아버지가 되거나 아기가 될 수도 있다. 토니 스타크의 설명대로 스콧 랭이 시간을 통과한 게 아니라 시간이 그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엔드게임] 속 시간 여행은 차원 또는 우주를 이동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다른 우주에서 스톤을 가져오는 것이다. 캐릭터들은 각자의 과거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와 비슷한 평행 우주에 다다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 인물의 생사와 안녕 여부가 다른 인물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023년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부정맥으로 쓰러져도 멀쩡하고, 두 명의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를 던지며 격투를 벌인 것도 그렇다. 2014년의 네뷸라가 죽어도 다른 우주의 존재인 2023년의 네뷸라는 멀쩡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중 현실 #새로운 현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피니티 스톤은 태초의 우주에서 만들어져 존재의 본질을 통제하는 힘을 가진 결정체다. 에인션트 원은 여섯 개의 스톤 모두가 우리가 아는 존재의 정의를 세우고 안정적인 시간의 흐름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결국 어벤져스가 비슷하지만 다른 우주, 일명 평행우주에서 스톤을 가져오는 것은 그 우주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 된다. 에인션트 원은 타임 스톤을 가지러 온 브루스 배너/헐크에게 스톤이 없어지면서 뻗어갈 “새로운 현실”의 위험을 설명했고, 배너는 스톤을 그들이 가져간 시간 및 공간에 되돌려 놓으면, “이 현실에서” 스톤은 사라진 적이 없는 것이라 말한다.

생각해 보면, 어벤져스가 인피니티 스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 외에도 시간의 흐름이 가해지는 지점은 있다. 로키가 테서렉트를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거나, 모라그에서 네뷸라가 과거의 타노스 일당에 납치되는 것들 말이다. 이런 변화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2023년 어벤져스의 과거를 흔들지는 않지만, 변화가 야기된 곳은 그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쓰인다. 양자 터널로 2023년 어벤져스 본부로 온 타노스 일당은 자신들의 세계와 도달한 세계 모두에서 그 존재가 사라졌고, 어벤져스가 놓친 2012년 로키는 우주를 유영하며 장난의 신다운 모험을 펼칠 것이다.

#올드 캡틴 아메리카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지막 장면에서 2023년에 돌아오는 대신 과거에 남은 캡틴 아메리카는 노인이 되어 샘 윌슨과 만난다. 이 장면에서 또 경악한다. “지금까지 캡틴 아메리카가 둘이었던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캡틴이 간 곳은 평행 우주다. 스티브가 페기를 만나 평생 해로한 우주는 그 시점부터 역사가 다시 쓰이며, 스티브 로저스, 페기,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에겐 크든 작든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노인 로저스는 샘을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그 또한 양자 영역을 통해 차원 이동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온 것일까? 조 루소 감독은 캡틴이 과거로 돌아가며 역사의 줄기가 뻗은 건 맞으며, 캡틴이 살아온 시간과 그 사이의 변화는 탐구해 볼 만한 소재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