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천만의 해다. 한 해의 절반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극한직업]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까지 천만 영화 네 편이 탄생했다. 최근 천만 관객을 기록한 [알라딘]과 [기생충]은 앞서 두 편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두 영화의 천만 관객 돌파를 축하하며, 무엇이 다른지 의미를 짚어본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CJ 엔터테인먼트

#1.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올해 초로 돌아가 누군가 “[알라딘]과 [기생충]이 천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면, 바로 “아니오”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작품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천만 영화다. 일단 [알라딘]은 개봉 전까지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으며, (윌 스미스 ‘지니’ 스틸샷 공개 후 온라인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이 작고 가족 이야기라는 점 외에는 모든 것이 모호했다. 하지만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개봉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최단기간 천만 돌파 영화는 12일을 기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며, 천만 영화 26편의 평균 천만 달성 기간은 32일이다. 두 작품은 평균 기록보다 오래 걸렸지만, 개봉 전 우려와 걱정을 불식하고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흥행 저력을 보여줬다.

#2. 최초의 타이틀을 갖다

[알라딘]과 [기생충]은 천만 영화 중 유일한 기록들이 있다. [알라딘]은 디즈니 라이브 액션 최초의 천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천만 영화 중 유일하게 개봉 첫날 10만 관객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봉 첫날 성적은 72,736명으로 역대 천만 영화 중 최저 오프닝을 기록한 관심 밖의 영화가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은 ‘사건’이다. 부정적인 첫인상을 잠재운 관객들의 높은 만족도가 입소문으로 이어지고 흥행의 밑거름이 되어 천만 영화로 견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기생충]은 천만 영화 중 유일하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며, 수차례 협업한 송강호와 봉준호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믿음직한 티켓 파워를 확보했다. 여기에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더할 나위 없는 흥행 호재가 되었다. 무엇보다 “영화제 수상작은 어렵다”, “대중성과 거리가 멀다”는 벽을 깬, 탄탄한 오락성과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갖춘 영화였기에 더 많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3. 상영관 독점 논란을 피하다

천만 돌파 영화에 늘 따라다니는 이슈가 있다. ‘상영관 독점’이다. 올해 천만을 넘겼던 두 영화 [극한직업]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모두 2,000여 개 스크린을 넘어 엄청난 상영관 점유율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에 많은 관을 배치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지만, 독점의 이슈는 늘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두 영화는 다른 천만 돌파 영화에 비해 독과점 논란이 덜했다. [알라딘]은 1,311, [기생충]은 1,947개 스크린을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기생충]은 꽤 많은 스크린을 점유했지만 흥행 폭발 영화의 적정 수준을 지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과도한 홍보와 스크린 물량 공세가 아니어도 작품의 힘이 있다면 천만을 돌파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4. 비수기 쌍끌이 흥행의 저력을 보여주다

한정된 상영관에 개봉 영화는 많은 극장은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다. A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면, B 영화의 배급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여름과 겨울, 명절 같은 초 성수기 시즌에는 관객들을 불러 모아 시장을 키우지만, 그 외 비수기는 서로에게 치명타가 되는 나눠먹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개봉 첫 주 큰 흥행을 보여주지 못했던 [알라딘]의 입장이 그랬을 것이다. [기생충]이 개봉하면 잠재 관객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12.1%의 준수한 드롭률을 기록하며, [기생충]이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23주 차(6.7~6.9)는 오히려 개봉 후 최초로 주말 관객 100만을 돌파했다.

[기생충] 역시 흥행을 이어갔다. 두 작품은 5-6월 비수기임에도 관객 파이를 늘리며, 더 나아가 완전히 상반된 장르와 관객층으로 윈-윈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앞에서 말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도 없었고, 높은 완성도로 좋은 입소문을 보여줬으며, 서로 다른 매력으로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관객들까지 끌어 모았다. 2018년 추석 시즌, 100억 대 한국영화가 한 주 차이로 무려 네 편이나 동시에 개봉해 [안시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던 예를 본다면, 두 편의 쌍끌이 흥행과 천만 돌파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5. 관객이 직접 만들다

두 작품의 천만 돌파에 가장 의미 있는 점은 “관객이 직접 만든 천만”에 있다. [알라딘]은 로튼토마토 53%, 메타크리틱 53점으로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평론가들에게 “최악은 아니지만 추천할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개봉 후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첫 주 보다 다음주 흥행 성적이 좋았고, 개봉 4주 차에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역주행의 힘을 보여줬다. 평론가들이 고개를 저었던 영화를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하며 영화의 흥행을 이끈 것이다. 평일에도 좌석 구하기 힘들었던 4D 열풍, N차 관람, 싱어롱 특별상영 등을 통해 한 번 보고 즐기는 영화가 아닌 계속해서 파고들 수 있는 관람 분위기가 형성됐다.

[기생충]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다 평론가들의 극찬이 이어졌기에 작품성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높아진 기대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흘러가고 봉준호 감독식 블랙코미디는 유효했지만, 한국의 계층 사회를 반영한 내용은 생각할수록 암울하고 복합적인 감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점이 영화를 본 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작은 상징 하나하나 해석하고 공유하고자 반복해서 관람했다.

[알라딘]과 [기생충]은 독과점 이슈는 적고, 홍보 마케팅이 아닌 관객들이 직접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가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천만 돌파는 더욱 값지다. 예전만 해도 천만 영화는 작품성은 물론, 사회적 이슈와 공감대까지 형성되어야 돌파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지만, 천만 영화가 자주 나오면서 그런 의미는 줄어들고 과대 홍보, 스크린 독점 논란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작품의 힘이 퇴색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알라딘]과 [기생충]은 퇴색하던 천만 돌파의 의미를 작품의 힘으로 다시 돌려놓은 좋은 예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