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새롭게 공개된 리미티드 시리즈 [더 스파이]는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의 이야기를 다룬다.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하고 시리아 권력층 내부로 잠입해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 전쟁)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인물이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모사드의 숨은 영웅이다. 하지만 이 6부작 드라마는 엘리 코헨의 첩보 활동을 영웅화하는데 크게 관심 없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팽팽한 긴장 속에 두 인격체로 살아야 했던 요원의 위태로운 여정에 관심을 보이며 비인간적인 첩보 세계의 풍경을 묘사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난민 구조 실화를 그린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의 기데온 라프가 이번에도 실화에 도전했다)

이미지: 넷플릭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드라마는 시작부터 차갑고 불길한 분위기를 드러내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 ‘엘리 코헨’을 구글링 하면 알 수 있는, 그의 비극적 최후가 임박한 것이다. 다만 오프닝 시퀀스에서 예견된 슬픔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작별 편지를 쓰고 마지막 서명을 머뭇거리는 그에게 랍비가 건네는 질문이다.

“이름이 기억 안 나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오프닝 시퀀스의 이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 드라마가 어떤 방향으로 실존 인물을 다룰지 예고한다. 왜 엘리 코헨이 중요한 순간 이름을 바로 쓰지 못하고 망설였는지,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심리적인 혼란을 느끼는지 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6년 전 과거로 돌아가 엘리 코헨이 처음부터 인정받는 인물이 아니었음을 비추며 정체성의 고민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사드에 지원했으나 두 차례 낙방하고, 사교모임에서는 웨이터로 오해받는 이집트에서 온 아랍계 유대인. 과거 이집트에 거주하는 난민을 해외로 탈출시키는 첩보활동을 했음에도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아내 나디아만 유일하게 그를 믿고 지지할 뿐이다.

열정과 희생 사이

[더 스파이]는 애국이란 명분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고립되고 황폐화되어가는 인물의 변화에 주목한다. (극중에서) 엘리 코헨은 나디아의 말마따나 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을 알아 봐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온다. 시리아의 공습이 날로 심해지자 정부는 적진 내부에 깊숙이 잠입할 수 있는 요원을 투입하기로 하고, 대외적인 첩보 업무를 담당하는 단이 엘리 코헨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모사드 요원으로 발탁되어 단의 지도에 따라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시리아로 잠입하는 과정은 첩보물의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다른 게 있다면 역할의 주체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엘리 코헨이란 사실이다.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내려는 의욕과 부족한 경험이 충돌하는 사람. 이는 기존 스파이 장르와 차별화된 매력이 된다.

가장 쉽게는 그동안 무엇이든 잘하는 요원이 특정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상황에 침투하는 모습에서 짜릿한 스릴을 만끽했다면, [더 스파이]는 미완성의 주인공이 경로를 벗어나 주어진 임무 이상의 것을 해내려는 모습에 조바심이 나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엘리에게 임무를 재고할 기회를 주려는 단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에 따르는 희생이다. 엘리는 사업가 카멜이 되어 시리아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수록 원래 누려왔던 삶을 잃어간다. 설령 그가 원했다 해도 국가에 대한 의무는 점점 개인의 삶을 잠식하고, 위장 신분에 불과한 카멜은 두려움과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

임무 초기에는 무모한 열정이 아찔한 긴장을 연출했다면, 권력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커져가는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불안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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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냉소 사이

스파이 장르에서 개인은 국가나 권력 기관의 희생양이 될 때가 많다. [더 스파이]의 엘리 역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첩보 요원이나 결국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엘리를 이용해 정권을 창출한 시리아 군부 정권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기약 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권력층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반면, 수년간 정체가 탄로 나지 않게 위험한 활동을 해야 했던 인물에겐 연민의 시선을 담아낸다. 그 기저엔 낭만적인 로맨스가 자리한다. 엘리는 고위층을 상대로 섹스 파티를 벌이면서도 그 자신은 기혼자의 양심을 지키려 한다. 주변의 의심을 피하고 환심을 얻기 위해 여성과 데이트를 하지만 태도는 조심스럽다(실제와 차이는 있을 것이다). 혼자 일과 육아를 떠안으면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 나디아도 마찬가지다(나디아가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다). 비현실적이지만, 오히려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헌신이 개인을 이용하기만 하는 권력층의 냉정함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첩보 요원이 되어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인물의 심리 묘사는 부족하다. 사샤 배런 코언의 진중하고 절제된 연기가 인물의 미묘한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지만, 엘리와 카멜, 애국심과 희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좀 더 다루었으면 마지막 에피소드의 모호함이 보다 선명해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