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
2012년 7월 20일,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센추리 16 극장 [다크 나이트 라이즈] 심야 상영관에서 20대 남성 제임스 홈스가 최루탄을 발사하고 자동 소총을 난사했다. 이날 12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쳤다. 7년 후인 2019년 10월 4일, [조커]가 미국 전역에서 개봉하지만 사건 현장인 오로라 센추리 극장은 예외다.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와 시네마크는 총기를 든 외부인이 고담 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영화 내용을 고려해 오로라 센추리 극장에선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

2.
미군이 복무 중인 군인들에게 [조커] 상영관에서 총기 살상 사건 발생 가능성을 경계하라고 안내했다. 육군은 군인들에게 상영관 입장 시 최소한 2개 이상의 탈출 경로를 파악할 것을 권했으며, 사건이 발생하면 도망가고, 도망가지 못하면 숨고, 들키면 무엇이든 이용해 싸우라고 알렸다. 이번 안내는 FBI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인셀(Incels)’로 분류된 극단주의자들의 포스트가 널리 배포되는 걸 발견했다는 고지에 근거했으며, 구체적 음모나 용의자 없는 예방 차원으로 보인다.

3.
오로라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워너브러더스 CEO 앞으로 공개서한을 보냈다. 당시 딸을 잃은 샌디 필립스 등 유족 몇 명은 영화의 폭력성과 잠재적 영향력을 염려했지만, [조커]의 개봉 취소나 총기 반대론자의 관람 보이콧을 독려하진 않았다. 이들은 워너 브라더스에 전미총기협회에서 기부금을 받는 정치인을 후원하지 않는 것과 의회의 총기법 개정 로비, 피해자 지원 단체 후원을 요청했다. 필립스는 “내 걱정은 혹여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총기 난사범이 되고 싶은 단 한 사람이 영화를 보고 실행할 용기를 얻는 것”이라 말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서한에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조커]는 절대 폭력을 옹호하지 않으며, 조커를 영웅으로 그릴 의도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력 사건 희생자에 꾸준히 기부해 왔으며, 최근 다른 기업과 함께 총격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초당적 법률 제정 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워너 브라더스는 스토리텔링의 기능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슈에 대한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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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개봉을 약 일주일 앞두고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베놈]을 뛰어넘어 10월 영화 개봉 성적 최고 기록을 세울 것이란 예측이 나왔고, 한국도 이미 아이맥스 예매 전쟁이 시작되며 하늘로 치솟는 기대를 입증했다. 더불어 영화의 폭력성 문제가 정식 개봉을 앞두고 더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인종,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어느 때보다 극심하고 정치적으로 암울한 미국에선 [조커]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커]는 베니스영화제, 토론토영화제에서 공개됐는데, 유럽과 북미를 대표하는 영화제에서 상반된 반응을 얻었다. 베니스에선 영화의 완성도와 호아킨 피닉스의 뛰어난 연기를 극찬하며 코믹스 원작 영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 평가했다. 반면 토론토에선 영화 자체가 훌륭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사회적 영향 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커]는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코믹스 영화 최초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토론토영화제에 돌입하면서 비평가 점수는 하락했다.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감독과 배우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틀 전 호아킨 피닉스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가 본의 아니게 조커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비극적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가?”라는 질문에 당황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피닉스는 영화 홍보담당자와 한 시간 정도 대화한 후 돌아와서 “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황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토드 필립스 감독은 비슷한 질문에 “영화는 조커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는다. 애정의 부족,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세상에 대한 공감의 부족에 대한 선언문이며, 관객들이 메시지를 읽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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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창작자와 배우, 제작사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영화가 ‘오독’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조커]의 비평 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택시 드라이버]다. 주인공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애정을 주는 대상, 좌절과 업신여김 때문에 생긴 분노를 비뚤게 표출하는 것 등 많은 부분에서 비교 받는다. 두 작품의 유사성이 그저 영화 수준에 머문다면 바랄 게 없겠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범 존 힝클리 주니어가 조디 포스터에게 어필하기 위해 범죄를 계획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조커]가 인셀 문화를 장려하고, 정서적 위험인물을 도발해 테러 행위를 일으킬 티끌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유다.

영화에 사회적 책임을 과도하게 지우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름메이커에겐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이다. [조커]가 만든 사람들의 의도와 달리 해석되는 것을 영화가 책임질 수는 없다. [조커]가 총기 난사, 폭력, 백인우월주의 등이 판치는 사회를 만들지는 않았으며, 테러 행위나 해로운 남성성 문제에 있어선 [조커]보다 더 크고 중대한 문제가 존재한다. 영화 하나에 매달리는 건 편협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해야 하는가? 아마 영화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한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 정보를 전달하는 에디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의 메시지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정보를 선택해 전파하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조커]에 평점을 부여하지 않기로 한데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