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스크린 속 여성 캐릭터 묘사는 격렬한 토론 주제였다. 여성 캐릭터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자리를 거의 맡지 않으며, 마치 개발이 덜 된 듯 단편적인 경향이 강했다. 일부 영화 속 여성은 이야기 진행과 남성 캐릭터의 변화를 가져오는 ‘변화의 도구’로 이용되며 캐릭터에 한계를 설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라는 긍정적 반응도 있으나, 최근 미디어 속 여성을 분석한 보고서에는 2019년 현재에도 실질적 변화는 거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미지: ABC

지나 데이비스가 설립한 미디어 속 성별 연구소와 국제구호기구 플랜 인터내셔널은 최근 《여성 이야기 다시 쓰기(Rewrite Her Story)》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영화와 미디어 속 고정관념이 10~20대 여성의 삶과 리더십 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는 전 세계 20개국의 2018년 흥행 영화 58편 속 캐릭터를 내용 분석했고, 19개 국가의 15세~25세 여성 1만 명에게 미디어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는 여성 캐릭터의 수, 등장 시간과 여성 리더와 여성의 리더십이 어떤 시각으로 그려지는지 탐구했다. 영화 58편에 등장한 캐릭터 1,859명(주연 692명, 조연 1,177명) 중 남성 캐릭터는 67%, 여성 캐릭터는 33%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많았고, 백인이 47%였다. 58편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으며, 여성 작가가 집필한 작품은 1/10, 여성 제작자가 참여한 작품은 1/4뿐이었다. 스크린 위 사람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 모두 남성이 절대다수였다. 보고서는 영화에 중산층 백인 남성이 주요 인물인 것은 제작자가 관객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흑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그 외 모든 캐릭터는 백인이에요. 다들 매력적이고, 꽤 말랐어요. 다들 차나 그런 것도 다 있고요. 그래서 스테레오타입이라고 생각해요.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요.

캐나다 17세 여성,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를 보고
이미지: Geena Davis Institute of Gender in Media

영화 속 여성 리더는 그 수는 적지만 리더십과 능력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전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 리더는 42%, 여성 리더는 47%였다. 여성 리더는 남성 리더보다 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지만(여성 81%, 남성 62%), 전국 규모의 단체 또는 조직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효율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남성 57%, 여성 44%).

비크람은 사건을 수사할 때 물러나지 않으려 하지만, 아내 프리야에겐 물러나라고 해요. 남성적인 행동이자, 아내를 통제하는 힘이에요. 프리야는 일하면서 타협하거나 굽혀야 하지만 비크람은 그러지 않아요.

인도 20세 여성, 영화 [비크람 베다(2017)]를 보고

여성 리더가 성적 대상화되는 경우는 남성 리더보다 많다. 여성 리더는 남성 리더보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여성 30%, 남성 7%), 신체 노출을 자주 하거나(여성 15%, 남성 8%),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 몸을 완전히 노출하는(여성 2%, 남성 0.5%) 경우가 더 많다. 남성 리더보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여성 15%, 남성 4%), 성희롱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더 많다(여성 5%, 남성 1%).

이미지: Fox

여성, 특히 10~20대 여성은 미디어 속 여성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보고서는 19개국 15~25세 여성들의 집단 및 개인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에서 자신의 ‘닮은꼴’을 보려 하며, 자신의 미래 모습을 대변하는 ‘롤모델’을 찾는다. ‘리더십 있는 여성’은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캐릭터이지만, 영화에선 그런 캐릭터마저 남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으로 여겨진다.

보고서는 예비 사회인이자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젊은 여성들을 위해 미디어 속 여성의 묘사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 리더를 키우기 위해선 “여성들이 여성 리더를 봐야 한다”라며 여성 리더가 영화나 TV에 더 등장해야 하고,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나 도구화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 감독과 제작자에 자금을 지원하고,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미디어 영역에 진출하는 데 용기를 북돋기 위한 전방위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이 다른 여성이 성공의 나래를 펼치는 걸 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잠재력을 발휘할 용기를 주기 때문이죠. 페루 여성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영화를 공개했는데, 젊은 여성들에게 “여성인데 해내셨네요!”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아요.

멜리나 레온, [이름없는 노래]로 페루 여성감독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 진출

연구 보고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