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할리우드 못지않게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있다. 그곳은 바로 통칭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다. 매년 1600편 이상의 영화를 공개하는 인도는 전 세계 영화 산업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이며, 최근 몇 년간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했다. 국내에서도 작품성으로 입소문을 탄 영화 [당갈]은 월드와이드 수익으로 3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비영어권 영화 5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다양한 작품을 제공하고 있어 인도 영화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특유의 뮤지컬, 액션 말고도 색다른 매력을 더욱더 손쉽게 느낄 수 있다. 에디터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만나 본 다양한 장르의 인도 영화를 추천한다.

걸리 보이(Gully Boy) ★★★★ 랩 소절에 담긴 성장과 사회를 향한 외침

이미지: 아마존

148분 | 음악 | 13세 | 아마존

줄거리: 평범한 삶을 꿈꿨던 대학생 무라드가 힙합을 접하고, 래퍼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가난과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그린 성장 음악 영화.

에디터 영준: 불우한 환경을 힙합과 랩으로 극복한다는 [걸리 보이]의 기본 틀은 자연스레 [8마일]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그쳤다면 [8마일]을 따라한 것에 불과했을 테지만, [걸리 보이]는 ‘마살라’라는 대중적인 발리우드 장르에 인도의 사회 문제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풍성함을 더했다. 캐릭터 구성도 흥미로운데, 무라드의 연인 사피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여성 인권 의식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인도에서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여성 캐릭터라니! 많은 인도 영화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당갈]에 이어서 [걸리 보이]도 주인공뿐만 아니라 인도 영화 자체의 성장을 그렸다는 느낌이 든다. 생경하지만 귀에 감기는 힌디어 랩이나 마살라의 춤과 노래를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연출하는 영리함, 이야기가 여러 갈래임에도 혼잡하지 않은 깔끔한 연출까지 정말 매력적이니, 꼭 국내 개봉이 이루어져 많은 관객이 인도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한글 자막 작업하신 분께 박수를 보낸다. 힌디어 랩 가사를 한국어로 라임 맞추는 것을 보고 입이 떡…

특히 좋은 점: [걸리 보이]는 법적으로는 사라졌을지언정, 여전히 인도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신분제도와 억압적인 종교 문화를 사실적이고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도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까지 한다. 어찌 보면 보편적인 주제지만 ‘인도 영화’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서 더 와 닿는다.

추천 작품: 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8마일]을 추천한다. [걸리 보이]가 ‘성장 영화’라는 면에선 흠잡을 것 없는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무라드 역의 란비르 싱이나 셰르 역의 시드한트 차투르베디가 현직 래퍼가 아닌 배우이다 보니 랩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에미넴 형님의 플로우와 펀치 라인으로 아쉬움을 달래자.

소니(Soni) ★★★☆ 매일 같이 위협받는 인도 여성 인권을 말하다

이미지: 넷플릭스

97분 | 사회고발 | 15세 | 넷플릭스

줄거리: 상반된 성격의 여성 경찰 소니와 칼라타가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고충을 통해 인도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그린 영화.

에디터 현정: 이반 아이르 감독의 데뷔작 [소니]는 인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대상이 누구든 일상이 된 성추행, 전통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 권위적인 남성 중심 사회의 성 불평등 등 도처에서 여성의 삶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여성 대상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함정 수사를 펼치는 소니와 그의 상사 칼라파는 자신들의 능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소니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좌천되고, 칼라파는 온화한 성격이 질책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의 주변에선 남자에 종속된 삶을 바라고, 그사이 범죄를 저지른 남자는 권력을 방패로 법망을 피해 가려한다. 영화는 소니와 칼라파를 좌절시키는 모순된 현실을 끊임없이 비추며 인도의 열악한 여성 인권에 비판을 제기한다. 큰 중심적인 사건은 없지만 인도의 현실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과 절제된 연출이 인상적이다.

특히 좋은 점: 소니와 칼라파를 둘러싼 부당한 현실은 답답함을 불러오지만, 두 사람의 이상적인 관계는 잠시나마 쉴 틈을 준다. 칼라파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좋은 직장상사다. 냉정하게 질책할 때도 있지만 감정에 치우치는 대신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며, 소니가 어려움에 처할 땐 진심으로 감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에서 해결책을 강구한다. (칼라파와 같은 상관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일을 할 것 같다)

추천 작품: 소니와 칼라파가 번번이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현실에 벽에 부딪혀 아쉽거나 답답했다면, 그 한계를 넘어서 목표에 다다르는 캐런과 그레이스 형사를 볼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인도에서 실제 발생한 집단 강간 사건을 수사하는 여성 부청장 바르티카의 헌신적인 노력을 그린 [델리 크라임]도 추천한다.

사랑은 아파트를 타고(Love Per Square Foot) ★ ★ ★ 러닝타임은 길지만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틱코미디

이미지: 넷플릭스

133분 | 로맨틱 코미디 | 15세 | 넷플릭스

줄거리: 비좁은 집안에서 자신의 집을 꿈꾸는 산제이와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공간을 꿈꾸는 카리나. 사랑하는 사람과 주거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두 청년이 우연히 만나 같은 은행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부에게 주택을 공급한다는 정책에 지원하기 위해 얼떨결에 결혼을 계획한다.

에디터 원희: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큰 틀 안에서 가벼운 톤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통통 튀는 분위기에 비해 러닝타임이 길어서 자칫하면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수 있지만, 곳곳에서 등장하는 막장 요소들이 영화에 자극을 더한다. 우연한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던 산제이와 카리나는 자신만의 집을 꿈꾸며 주거 지원서를 신청하는데, 집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야만 한다. 집을 위해서 금전 문제와 각자의 연인 문제를 해결하는 와중에,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깨닫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오해가 쌓여 이별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저 집만을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 하는 것을 원했다는 걸 깨달으며 사랑을 확인한다. 영상 속 풍경과 더불어, 인도 영화 특유의 매력 포인트인 뮤지컬 시퀀스 역시 굉장히 현대적으로 그려내 발리우드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인도식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에 쉽게 이입할 수 있다. 주연 배우 비키 코샬과 앙기라 다르의 귀여운 케미스트리도 돋보인다.

특히 좋은 점: 톤은 가볍지만, 영화 속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전혀 가볍지 않다. 인도 청년들이 겪는 주거 공간 부족 문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연애와 결혼에 있어 인도 여성이라면 겪을 수 있는 억압에 관해 심도 있게 짚어내기도 한다. 특히 인도에서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종교 갈등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비단 인도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집으로 독립을 꿈꾸는 청년층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 작품: 우연한 계약으로 묶인 관계에서 싹트는 사랑 이야기로 비슷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추천한다.

2.0 ★★★ 슈퍼히어로 로봇이 이끄는 인도 초대형 히트 영화

이미지: 아마존

148분 | 액션, SF | 13세 | 아마존

줄거리: 어느 날 첸나이의 모든 핸드폰이 하늘로 솟구쳐 사라진다. 바시가란 박사와 조수 로봇 닐라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슈퍼히어로 로봇 ‘치티’를 부활시키고, 이들은 핸드폰을 새처럼 부리는 슈퍼빌런 ‘팍시 라잔’을 상대한다. 하지만 원한만큼 강력한 팍시 라잔의 힘에 박사도 치티도 위기에 처하는데….

에디터 혜란: 2010년 영화 [로봇(Enthiran)]의 속편으로, 타밀 시네마 최고의 스타이자 인도가 사랑하는 배우 ‘라지니칸트(a.k.a. 슈퍼스타 라지니)’가 주연을 맡았다. 러닝타임이 꽤 긴데 반해 이야기 전개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VFX가 과한 액션 장면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물리 법칙은 거스르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지키는 로봇이나 오라 같은 비과학적 요소를 과학 영역에 끌어들이는 시도도 흥미롭다. 최후의 대결을 앞두고 로봇 ‘치티’가 2.0으로 업그레이드된 이후 영화 전개는… 아무튼 웃기고 재미있다. “이런 걸 ‘마살라 영화’라고 하는 거구나, 인도가 슈퍼히어로 로봇이 주인공인 SF 액션 영화를 만들면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좋은 점: 저렴하게 표현하자면 “돈값을 한다.” 인도 영화 최대 예산(미화 8,200만 달러)을 투입한 만큼 배우, 감독, 제작진 모두 현존 인도 시네마 최고들만 모았다. 핸드폰들이 마치 새떼처럼 날아가는 장면은 가히 장관인데, VFX팀이 많이 고생했구나 싶다. 1인 4역(!)을 해내는 라지니칸트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빌런 ‘팍시 라잔’ 역 악쉐이 쿠마르가 기억에 남는다. 목적이 뚜렷하고, 그의 악행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형적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개를 차용했지만, 빌런의 메시지가 영화의 메시지가 되는 점이 흥미롭다.

추천 작품: 추천작보단 앞으로 내가 볼 것들을 정리해 봤다. 일단 전편인 [로봇]. 아이쉬와라 라이가 바시가란 박사의 여자친구로 등장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매력 중 8할은 주인공이다. 볼리우드 메가스타 샤 룩 칸의 [라 원], 흐리틱 로샨의 [크리쉬] 시리즈도 흥미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라지니칸트가 왜 ‘슈퍼스타 라지니’인지 확인하기 위해 [춤추는 무뚜]를 볼 예정이다.

젓가락 행진곡(Chopsticks) ★★★ 잊어버린 것은 자동차, 찾은 것은 자신감

이미지: 넷플릭스

100분 | 코미디 | 15세 | 넷플릭스

줄거리: 자신감이라고는 1%도 없는 니르마에게 불행이 연속으로 다가온다. 큰 맘먹고 차를 뽑았는데 그날 바로 도둑맞는다. 상심한 니르마에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하는 이상한 사기꾼이 나타나 차를 찾게 도와준다.

에디터 홍선: 처음에는 너무 자신감이 없어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지만, 아티스트라는 괴짜를 만나 점점 성장하는 과정에서 흐뭇한 웃음을 자아낸다. 니르마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한 아티스트만의 교육방식도 독특하고 재미있다. 몇몇 방식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기발하고 의미도 있을 정도다. 다만 두 사람이 왜 함께 차를 찾게 되는지, 서로에게 감정이 싹트는 과정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옥에 티. 그렇지만 깔끔한 영상과 기분 좋은 스토리로 가볍게 보기에 괜찮다.

특히 좋은 점: [젓가락 행진곡]은 지금까지 봤던 인도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인도 영화하면 생각나는 춤과 노래가 없다. 노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레이션 정도의 역할일 뿐 생뚱맞게 등장해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10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도 ‘인도영화는 무조건 길다’라는 편견을 깨뜨려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추천 작품: [젓가락 행진곡]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편견을 딛고 성장하는 주인공의 감동 스토리라는 점에서 [당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