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19년 북미에서 최고 성적을 기록한 해외 영화가 되었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바른손미디어

개봉 6주 차를 맞이한 [기생충]은 지금까지 약 14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미 지난주에 스페인의 [노 만체스 프리다 2]의 927만 달러를 제치고 해외 영화로는 가장 높은 성적을 거뒀다. 개봉 첫날 뉴욕과 LA의 3개 상영관에서 잇달아 매진 행렬을 기록할 때부터 [기생충]의 흥행은 예고됐다. 현재 상영관은 602개로, 통상 광역 개봉(wide release)이라 부르는 미 전역 2천 개 관 상영에는 미치지 않는다.

[기생충]이 미국 내에서 화제가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으로 봉준호 감독의 인지도가 씨네필 사이에서 높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거장 감독들의 작품과 경쟁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한국의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된 것도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매체 데드라인은 “해외 영화 흥행 성적은 전적으로 배급사 의지에 달린” 미국 극장가에서 1천만 달러 이상 성적을 올린 건 배급사 네온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 한몫했다고 평가한다.

네온의 [기생충] 북미 배급권 획득 소식은 2018년 10월 31일 전해졌다. 네온은 전 와인스틴 컴퍼니 임원 톰 퀸과 알라모 드래프트 시네마 창립자 팀 리그가 공동 창립했으며, “45세 이하, 폭력에 반감이 없으며, 외국어와 논픽션에 반감이 없는” 관객을 타깃으로 영화를 배급한다. [아이, 토냐], [언프리티 소셜 스타] 등 작지만 작품성 높은 영화를 배급하며 네온은 설립 2년 만에 주목할 만한 배급사로 발돋움했다. 봉준호와 톰 퀸은 하비 와인스틴이 [설국열차] 편집으로 봉준호와 의견 충돌을 빚자 퀸이 맡은 산하 레이블로 영화 배급을 맡기면서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네온은 [기생충]을 대본 집필 단계에서 배급권을 샀다고 알려졌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네온은 북미 개봉을 소위 ‘아카데미 시상식 캠페인’ 시즌인 10월 11일로 확정했다. [기생충]은 아트하우스 영화가 주로 택하는 롤아웃 방식으로 배급을 진행했다. 뉴욕과 LA의 특정 극장에서 1주간 상영하고, 반응과 입소문에 따라 점차 상영관을 확대한다. 3개(1주)였던 상영관은 33개(2주), 129개(3주), 461개(4주), 603개(5주), 620개(6주)로 늘었다. 이 시기 개봉한 아트하우스 영화는 추수감사절인 11월 셋째 주를 전후로 상영관을 크게 확대하지만, 네온은 화제성에 따라 상영관 확대를 판단할 예정이다.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바른손미디어

칸 영화제 프리미어 당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처음 보게 될 기자들에게 영화 ‘스포일러’ 방지를 거듭 부탁했다. 네온 또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예고편을 제작할 때 영화의 앞부분 절반만 사용했다. 봉준호가 LA에 직접 날아가 편집 과정을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약 1시간 분량 영화에서 예고편 2편이 나왔다.

약 2분 내외의 예고편은 다시 30개의 디지털 콘텐츠로 쪼개졌고, 다양한 소셜 미디어 캠페인에 활용됐다. [기생충]의 북미 공식 인스타그램은 영화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이미지와 사진으로 옮겼다. 매번 영화의 이미지와 주요 대사를 포함한 이미지가 마치 사진 퍼즐처럼 3, 6, 9개씩 한꺼번에 업데이트된다. 이미지 세트 중 하나는 짧은 예고편을 포함한다. 예고는 매번 클리프행어로 처리해 드러내지 않은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네온의 마케팅 총책임자 크리스천 파크스는 [기생충]의 ‘비밀스러운 마케팅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장인급의 마술사입니다. 정말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고, 사람들이 영화가 어떤 쪽으로 간다고 생각한 순간 방향을 틀죠. 마케팅도 같은 전략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한쪽 방향으로 데려가고, 나머지를 비밀의 커튼으로 가리면, 마술사 봉준호 감독이 나머지를 극장에서 보여주는 것이죠.”

이미지: 인스타그램 @parasitemovie

네온의 영리한 마케팅에 힘입어 [기생충]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분석에 따르면 북미 관객은 연령대는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 다른 영화보다 아시아 인이 많은 편이며 남성 관객이 다수다. 봉준호의 팬뿐 아니라 봉준호를 모르는 사람들도 [기생충]을 보러 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들은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의 추천을 받거나, 유튜브 등에서 트레일러를 보고 관심을 가진다. 미국 관객은 자막이 깔린 외국어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입소문과 열렬한 반응 덕분에 일반인들도 거부감을 무릅쓰고 [기생충]을 선택한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화제가 됐다. 극 중 기정(박소담)이 부르는 일명 “제시카 초인종 노래(Jessica’s Jingle)”이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것이다. SNS에는 ‘노래가 계속 생각난다’는 감상이 올라오며 입소문을 타자, 네온은 박소담이 직접 노래 부르는 영상을 업데이트했다. 노래가 인기를 끌자 멜로디를 가져온 “독도는 우리 땅”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다.

출처: NEON 유튜브 채널

[기생충]은 이미 한국에서 천만 관객 고지를 달성했고, 프랑스에서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몇 년 만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미국에서도 의미 있는 성적을 수립한 만큼 이제 모두의 관심은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쏠린다. 미국 내 다수의 영화 매체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해외 영화상 후보 지명은 당연하고,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것이라 보고 있다. 네온 또한 처음부터 작품상을 염두하고 배급과 마케팅을 진행했다고 밝힌 만큼,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어떤 기록을 세울지 궁금해진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지역 시상식”이라, [기생충]이 받은 영광에 비교하면 ‘그냥 상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