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2019년 한국과 미국의 영화계를 결산하는 기사에 ‘여성 서사와 여성 필름메이커의 약진’이라는 말이 정말 많았다. 다방면에서 여성 영화,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이전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여성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여성 필름메이커가 맹활약한 해였을까? 실제 수치에도 이 ‘체감’이 반영될까? 이 주제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발행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TV&영화 속 여성 연구소의 연구보고서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의 해당 내용을 2부에 걸쳐 정리하며, 2부에선 카메라 앞, 여성 캐릭터의 추이를 살핀다. 원문은 첨부된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It’s a Man’s (Celluloid) World: Portrayals of Female Characters in the Top Grossing Films of 2019 (Martha. M. Lauzen, 2020)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영화진흥위원회, 2020)

2019년 미국 흥행 영화 속 여성 캐릭터

2019년 미국 박스오피스 순위에 오른 영화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는 전체의 40%였다.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는 43%였으며, 앙상블 캐스트는 17%였다. 앙상블을 염두에 놓고 보면 여성과 남성이 ‘주인공,’ 즉 서사를 이끄는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영화는 절반 정도인 셈이다. 반면 주요 캐릭터(조연)의 여성 비율은 전체의 37%이며, 극 중 대사가 있는 캐릭터 중 여성 비율은 34%다. 여전히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의 약 2배이며, 여성보단 남성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감을 알 수 있다.

미국 흥행 영화 중 여성 및 남성 캐릭터 비중 (주인공/주요 캐릭터/대사 있는 캐릭터)

출처: Martha. M. Lauzen(2020), It’s a Man’s (Celluloid) World: Portrayals of Female Characters in the Top Grossing Films of 2019

여성 주연 영화의 흥행은 약간의 부침은 있으나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11년 11%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회복세를 보였으며 특히 2018, 2019년은 전년보다 각각 7%, 9% 올랐다. 여성이 극의 중심이 되는 영화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이전의 영화보다 관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급이나 상영 면에서 기회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분석에 따르면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는 호러(26%), 드라마(24%), 코미디(21%) 순으로 많고,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는 액션(26%), 드라마(24%), 애니메이션(21%) 순서로 많다.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작 중 여성 주인공 영화 비율 추이 (단위: %)

출처: Martha. M. Lauzen(2020), It’s a Man’s (Celluloid) World: Portrayals of Female Characters in the Top Grossing Films of 2019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에는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으나, 여성 주연 영화가 여성 배우의 고용이나 커리어 발전을 전적으로 보장하진 않는다. 여전히 조연급 캐릭터나 대사가 있는 캐릭터의 성별 비율은 남성이 약 65%, 여성이 약 35%로 남성의 비율이 여성의 2배 이상이다.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간 10% 이하로 증가했을 뿐이다. 여성 이야기가 늘어나는 현상이 여성 배우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는 환경은 조성할지 몰라도, 당장은 체감할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는다.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작 중 주요 캐릭터/대사 있는 캐릭터의 남녀 비율 추이 (단위: %)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연령은 남성 캐릭터보다 낮은 편이다. 성별을 다시 연령에 따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는 30대(31%), 20대(22%), 10대 이하(17%) 순으로 많은 반면, 남성 캐릭터는 30대(32%), 40대(26%), 50대(12%) 순으로 많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보다 어리고, 40대 이상 캐릭터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다. 리스 위더스푼과 니콜 키드먼이 “할리우드에 우리가 할 만한 괜찮은 캐릭터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영화와 TV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통계만을 놓고 보면 배역의 질 이전에 출연 기회부터 또래 남성 배우보다 적음을 알 수 있다.

남성, 여성 캐릭터 연령 비교 (단위: %)

출처: Martha. M. Lauzen(2020), It’s a Man’s (Celluloid) World: Portrayals of Female Characters in the Top Grossing Films of 2019

보고서는 캐릭터의 인종 분포와 리더십도 분석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백인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으나 여전히 65% 이상이다. 흑인은 약 20%이며, 아시아계, 라틴계, 기타 인종 및 민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수가 많아져도 여전히 백인 배우들에게 가장 많은 기회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리더들의 성별에 따른 직업 분석도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여성은 전문직이나 사교계의 리더로 많이 그려지는 반면, 남성은 화이트칼라, 성직, 블루칼라, 정치, 범죄 분야의 리더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캐릭터의 성별에 따라 직업 등 여러 성격이 “미리 고정된” 경우가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여성 캐릭터의 인종/민족 추이 / 여성 및 남성 리더 캐릭터 비교

여성 창작자가 만드는 작품에 여성 캐릭터가 더 중요하게 그려진다. 여성 창작자와 여성 캐릭터의 등장 관계를 살펴본 결과, 주인공, 주요 캐릭터, 대사가 있는 캐릭터 모두 여성이 감독 또는 작가로 참여한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컸다. 특히 여성이 감독 또는 작가로 참여한 영화의 절반 이상인 58%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남성 작가, 감독의 여성 주연 영화가 전체의 30%인 것과 비교된다. 주요 캐릭터, 전체 캐릭터 또한 여성이 1명 이상 참여한 영화가 남성 창작자만 참여한 영화보다 많다. 여성 배우를 고용하는 데 여성 창작자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최소 1인 이상의 여성 감독 또는 작가와 남성 감독/작가의 영화 속 여성 캐릭터 등장 (단위: %)

출처: Martha. M. Lauzen(2020), It’s a Man’s (Celluloid) World: Portrayals of Female Characters in the Top Grossing Films of 2019

2019 한국 흥행 영화 속 여성 캐릭터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개봉 한국영화 중 실질 개봉작 (상영 횟수 40회 미만, 옴니버스, 실황 다큐멘터리 제외) 174편의 주연 캐릭터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 주연은 실질 개봉작 전체에선 63명(37.3%)이었으나, 순제작비 10억 이상 영화에선 17명(27.0%)으로 전년도 13명(22.4%)에 비해 늘었다. 순제작비 30억 이상 영화에선 8명(18.6%)으로 전년도 6명(15.0%)보다 증가했다. 여성 주연 영화 중 가장 성적이 높은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며, 순제 10억 원 이상 영화 중 주연 1, 2가 모두 여성인 영화는 [걸캅스], [미성년], [윤희에게] 등 총 6편이다. 여성 주연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더 주목받았다. [벌새], [메기], [아워 바디] 등 10~2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신인 여성 감독들의 작품과, [김복동], [칠곡 가시나들] 등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등장인물 크레디트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오른 배우 성별을 조사했고, 각각 주연1, 주연 2로 기록.

2015-2019년 실질개봉작 여성 주연 (단위: 명)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2015-2019년 순제작비 10억원 이상 영화 속 여성 주연 (단위: 명)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2015-2019년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영화 속 여성 주연 (단위: 명)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영화 속 캐릭터의 성인지 분석을 위해 보고서는 분석 대상을 2019년 한국 흥행 순위 30위 영화로 좁혔다. 30편 중 여성 감독 연출 영화는 [82년생 김지영] 등 총 5편이며, 백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기생충], [엑시트] 등 13편(43.3%)이다. 이중 주연1, 주연 2가 모두 남자인 작품은 17편으로 과반(56.7%)을 차지한다. 주연1-주연2가 남-여인 작품은 8편, 여-남인 작품은 3편이다. 주연1-주연2가 모두 여성인 작품은 2편으로, [걸캅스]와 [항거: 유관순 이야기]다.

주연 캐릭터의 연령도 분석했다. 주연 1, 2가 모두 남성이거나 여성인 경우 경우 등장인물 크레디트에서 가장 상위에 등장하는 여성 또는 남성 캐릭터를 선정, 남녀 각각 30명을 조사했다. 일차적으로 영화 서사에서 주어진 정보를 활용했고, 정보가 부족한 경우 배우의 연령대를 참조했다. 그 결과 여성 캐릭터는 30대가 가장 많고(10명, 33.3%) 10대와 20대도 비중이 높은 반면, 40대는 6명(20.0%)이다. 남성 캐릭터의 연령대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남성 주인공 중 10대는 없는 반면, 40대가 17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53.7%)이다. 보고서는 “남성 캐릭터의 연령대가 높다는 것이 캐릭터의 입체성이나 직업적 전문성에 있어 남성 캐릭터가 폭이 넓고 깊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여성 캐릭터 연령이 낮다는 것은 배우가 어릴수록 작품의 주연으로 발탁될 기회가 많다는 뜻이자, 여성 배우들의 연령대가 올라가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기회는 더 적음을 의미한다.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그 대화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인가?

2019년 한국영화 흥행 30위 영화 캐릭터 연령대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보고서의 캐릭터 분석 중 흥미로운 방법 2가지가 있어 소개한다. 하나는 ‘여성 스테레오타입 테스트’로, 각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타입화되는지 조사하기 위해 질문 7개를 던진다. 1~5번은 주조연 여성 캐릭터가 대상이며, 6~7번은 엑스트라를 포함한 영화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분석 결과 총 13편이 스트레오타입 테스트에 해당되었으며, 가장 많은 경우는 1번과 3번이었다. 보고서는 여성 캐릭터가 남성 집단에 감초 역할인 경우 주연급이라도 주로 단독으로 등장하며 상투적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우 주연뿐 아니라 조연에서도 여성 캐릭터 수가 한정되어 있고, 여성 배우에게 돌아오는 기회는 적다.

캐릭터의 죽음 혹은 실종 여부를 조사한 경우도 흥미롭다. 위의 연령 분석을 위해 선정한 남녀 캐릭터 30명 중 극 중에서 죽음을 맞이한 여성 캐릭터는 2명, 남성 캐릭터는 4명이다. 2019년 영화 여성 인물이 죽는 영화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신의 한 수: 귀수편]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역사대로 유관순 열사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반면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주인공 귀수가 천재 기사로 성장하는 데 ‘복수’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누나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후 자살했다는 설정을 넣었다. 남성 인물이 죽은 영화는 [백두산], [말모이], [변신], [퍼펙트맨]이며, 그중 세 편의 주요 남성 캐릭터가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흥미로운 건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캐릭터의 죽음을 극적인 설정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2019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 흥행 50위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가 죽거나 사라지는 경우는 여성 캐릭터보다 많았고 (25.4%>19.1%), 대부분이 “대단원의 파토스를 만들어 내는 흥행 코드”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