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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슈퍼히어로를 좋아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모두가 선망하는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만족해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이야기에서 화려하고 멋진 겉모습과 달리 남모를 고뇌와 고통에 빠진 슈퍼히어로들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무엇이 히어로들을 괴롭게 하는 걸까? 그들의 남모를 고민을 유형별로 살펴본다.

몸은 하나인데 두 역할로 살아야 하는 딜레마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며 이중생활을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이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여러 모로 곤란하기 때문이다. 정체를 밝힐 수 없기에 벌어지는 갈등은 슈퍼히어로가 겪는 흔한 고민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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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개인의 삶과 슈퍼히어로의 책임감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학업과 메리 제인과의 관계, 생계를 위한 알바 때문에 몸이 둘로 나뉘어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지만, 스파이더맨의 활동을 포기할 수 없다. 그 결과 메리 제인과는 헤어질 뻔하고, 알바도 해고당하는 등 피터 파커의 삶이 망가지게 된다. 영화는 시리즈 내내 스파이더맨 활동을 병행하면서 개인의 삶이 흔들리는 피터 파커를 통해 두 역할을 모두 소화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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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도 역할 갈등은 중요한 화두다. 고담의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어 도시의 평화를 지키면서 종종 곤란한 상황들을 마주한다. 고담에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더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려다 조커에게 위협 받는 웨인 컴퍼니 직원을 구하기 위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빌런 라스 알 굴과 혈투 때문에 집이 불타버리자 신문에는 브루스 웨인이 술을 먹고 집을 태웠다고 발표하는 등 배트맨의 활동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영화는 억만장자로서 사회적 책임과 영웅으로서 활동에 고뇌하는 브루스 웨인의 심리를 진중하게 묘사해 보다 현실적인 히어로로 그려낸다.

큰 힘에 따른 큰 책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명대사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부분 히어로들이 새겨야 할 말일 것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만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슈퍼히어로 작품에서 이 같은 딜레마를 진지하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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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영웅의 책임을 강조한다. 울트론과 혈전을 치르던 중 파괴된 소코비아를 비롯해 어벤져스의 뛰어난 활약과는 별개로 크고 작은 피해가 일어나자, 정부는 어벤져스를 UN 산하에 두고 허가가 내려질 때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슈퍼히어로 등록제’ 법안을 제출한다. 영화는 법안을 두고 찬성파와 반대파로 양분된 어벤져스의 내부 갈등을 치열하게 다루며, 큰 힘에 따른 희생과 책임, 정의의 의미를 묻는다. 영화는 힘을 합해야 하는 히어로들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 싸울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슈퍼히어로의 고민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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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시리즈, [인크레더블 헐크]의 헐크 역시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과학자 브루스 배너는 실험 도중 감마선에 중독되어 엄청난 힘을 가진 또 다른 인격의 헐크로 변해버린다. 신사적이고 조용한 브루스 배너와 달리 헐크는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물론 헐크는 자신의 힘을 사용해 여러 위기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등 멋진 활약도 하지만,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인해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같은 편한테도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더 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 헐크의 힘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위험을 가져올 수 있기에 그의 존재는 어벤져스의 고민거리가 된다.

능력이라는 이름의 저주

많은 사람들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슈퍼히어로 능력은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남들과 유난히 다른 모습 때문에 외면당하면서 점점 움츠러들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빌런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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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시리즈는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 때문에 고통받는 돌연변이(뮤턴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화에서 뮤턴트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병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어한다. 프로페서 X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한 뮤턴트들이 자신의 운명을 탓하자 그들의 힘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쪽으로 발휘해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매그니토가 그와 반대편에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신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영화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프로페서 X 진영과 매그니토 진영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히어로의 세계관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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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억만장자에게 입양된 초능력자들이 양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며 지구 종말을 막으려는 이야기를 그린다. 얼핏 초능력자 가족들의 활약이 예상되지만, 드라마는 하그리브스 경의 엄격한 통제 속에 미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 문제적 히어로들의 트라우마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불행한 성장기를 보내며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양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재회하지만, 끈끈한 가족애와 사명감을 발휘해 세계 멸망의 위협에 맞서기보다는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티격태격 갈등하기 바쁘다.

세상을 구했지만 내 인생은 누가 구하나?

슈퍼히어로는 능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쉽게 될 수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설사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몇몇 히어로들은 위대한 활약을 펼치면서도 개인의 삶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허다하다. “지켜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에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아픈 사연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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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캐릭터를 뽑자면, [캡틴 아메리카]의 주인공 ‘캡틴’ 스티브 로저스가 먼저 떠오른다. 캡틴의 활약은 대단하다. 히드라와 레드 스컬의 야망을 저지했고, 덕분에 쉴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대신 스티브 로저스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친구 버키 반즈가 실종되었고, 좋아하는 페기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반 세기가 넘도록 얼음 속에 갇힌 바람에 친구도, 연인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어벤져스의 리더가 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캡틴의 얼굴에는 늘 쓸쓸함이 묻어 있다. 다행히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 잃어버린 삶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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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도 아이언맨이 되면서 의외로 많은 것을 잃었다. [아이언맨1]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 후 슈퍼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토니 스타크는 심장의 건강을 위협하는 팔라듐 중독 때문에 서서히 죽어간다. 다행히 아버지의 영상과 기록에 힌트를 얻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건강을 회복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캡틴을 잃는다. ‘윈터 솔져’ 버키가 부모를 죽인 원수임을 알게 된 토니가 그를 죽이려 하자 친구를 지키려는 캡틴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결국 어벤져스의 핵심 인물인 두 사람은 갈라서고 만다. 이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타노스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이제 MCU에서 토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