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트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tvN [스타트업]은 제작 발표 때부터 주목받았다. 박혜련 작가와 오충환 감독이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후 처음 협업하는 ‘청춘 로맨스’에 배수지와 남주혁이 출연한다. [청춘기록],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 청춘 로맨스 드라마가 인기를 끌 때 방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2/3 지점에 다다른 지금은 호평보단 비판의 목소리가 많아 보인다. “[스타트업] 지난 방송 중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은?”이란 설문 조사가 등장했을 정도다. 배우들의 호연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에 함박웃음을 짓다가도, 설정과 전개에선 가끔 짜증마저 나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봐야 할까?

거짓말의 무게

이미지: tvN

[스타트업] 속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거짓말로 시작된다. 15년 전, 원덕은 손녀 달미를 위해 남도산이라는 소년과 달미의 펜팔을 주선했다. 물론 편지는 원덕에게 신세를 진 다른 소년, 지평이 쓴 것이고, 남도산은 그저 신문 기사의 주인공이었지만, 달미는 오랜 세월 편지 속 남도산을 사랑했다. 그리고 현재, 달미가 언니 인재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도산을 파티에 데려가겠다 허세를 부린 때부터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지평은 진짜 도산을 찾고, 별 볼 일 없는 그를 꽤 괜찮은 인물로 포장했다. 도산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봐주는 달미에게 반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하얀 거짓말이 쌓이고 연루된 사람이 늘어나면서 흥미로운 극적 장치로 시작한 설정은 드라마의 메인 테마인 ‘청춘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압박할 만큼 무거워졌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매번 다른 일 때문에 미루어졌다. 인물 간의 감정은 고조되었지만, 그들의 선택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달미가 직접 모든 진실을 알아냈을 때도 시원함보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진짜 남도산’을 밝히는 게 드라마 전체의 절반 넘게 가져올 만큼 중요했던 것일까?

완벽함이 정답이 아님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미지: tvN

지평은 서브 캐릭터로는 드물게 매력적인 성격과 서사를 갖췄다. 잘생기고, 센스도 있고, 능력도 있는 자수성가 개천용이다. 원덕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연극을 주도하지만, 달미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힘닿는 데까지 돕는다. 지평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인 건 도산의 캐릭터가 불완전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이름을 건 사업은 망해가고, 소극적이고 타인과의 소통도 서툴다. 마음도 생각도 지평과 비교해 미성숙하며, 당장의 미래 또한 밝지 않다. 멋있는 건 다 가진 지평이 왜 주인공이 아니냐, 왜 도산이 아닌 지평에게 무게를 싣느냐는 불만 모두 나오는 게 당연하다.

달미와의 관계에서도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지평은 달미가 위기에 처하지 않게 조언하고, 달미는 그 말에 많이 의지한다. 심지어 그는 달미를 위해선 투자심사역의 원칙을 굽힐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반면 도산은 달미와 함께 성장한다. 달미의 옆에 있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고치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달미가 눈을 반짝이며 제시하는 아이디어를 허투루 듣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에디터는 달미의 선택이 도산이어야 [스타트업]이 청춘의 성장이라는 기획 의도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달미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설 미래엔 함께 갈 사람이 필요하다. 멘토-멘티인 지평과 달미의 관계는 불평등하지만, 도산은 달미와 동등한 파트너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남자 주인공’ 설정을 다 가진 캐릭터가 “선택받지 못하는” 상황이 설득력이 있을까? 전지적 시청자 입장에선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도산에게 눈을 반짝이는 달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지평을 외면하는 달미에게 지평이 아깝다는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재를 찾습니다

이미지: tvN

의도와 가장 많이 달라진 캐릭터는 인재가 아닐까?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있다. 동생인 달미와는 조건도 능력도 다르지만, 인재는 달미가 성장하는 데 자극을 주면서도 나름의 성장 서사를 쌓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화까지 인재가 주목받은 순간은 많지 않았다. 드라마가 삼산텍 내부 스토리와 달미-도산-지평 삼각관계에 집중하면서 인재와 인재컴퍼니의 비중은 줄어든다. 인재가 성공을 향한 욕망과 능력, 정신 모두 갖춘 캐릭터임을 보여주기엔 드라마 속 시간과 비중은 너무나 적다. 인재컴퍼니는 삼산텍의 라이벌이자 타산지석이지만, 그 자체의 성장 스토리를 구축하진 못했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데모데이에서 삼산텍에 패했으니, 인재컴퍼니가 앞으로 계속 등장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음을 기대하는 건…

이야기의 완급 조절과 설득력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스타트업]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이유는 있다. 첫째, 모든 캐릭터에게 한계를 넓히거나 뛰어넘을 기회를 준다. 진실을 안 달미는 차분히 자신의 혼란한 감정을 들여다본다. 도산은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 밝혀서 마음의 짐을 덜고, 지평은 잊고 있던 과거 덕분에 직업 철학을 반성한다. 어느 부분에서든 불완전했던 주체들이 한 뼘 더 성장하는 순간은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둘째, 정답보단 최선, 최적을 찾는 과정을 응원한다. 삼산텍이 정확도와 경량화 사이에서 이미지 인식 기술을 구현할 최적의 조건을 찾아가듯, 드라마 속 캐릭터 모두가 자신의 과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최적의 방식을 찾아간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인생의 정답을 알 수 없다. 항상 현명한 선택을 하진 않으며, 현명한 선택마저도 뒤통수를 칮다. 실리콘밸리 투스토에 인수되며 위기를 맞을 삼산텍은 어떤 선택을 할까? 달미-도산-지평의 관계와 달미-인재의 라이벌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현실만큼 무엇을 선택할지 혼란스러운 드라마 세상에서 캐릭터들이 어떤 최적을 찾아갈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