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어느새 갖가지 기술에 둘러싸여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소셜미디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이용하며 하루를 보낸다. 매일 같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 버스를 비롯해 지나치고 머무는 거리와 장소에는 CCTV가 설치됐고, 코로나 대유행을 겪으면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이 같은 세상에서 기술과 멀어진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지만, 그에 따른 디지털 격차나 기술 악용 등의 문제가 따른다. 가까운 미래상을 그린 드라마에서는 기술이 발전한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블랙 미러(Black Mirror)

이미지: 넷플릭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만, 편리함의 대가는 따르기 마련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 미러]는 기술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암울한 상상력으로 담아낸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딥러닝, 드론, 감시, 복제, 가상현실 등 현실에서 멀지 않은 다양한 기술이 일상을 잠식하고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주목한다.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고민을 충격적이면서도 대담하게 그려내 평단과 시청자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다만 2019년에 공개된 시즌 5 이후 차기 시즌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블랙 미러]의 작가 겸 제작자 찰리 브루커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 대유행으로 시즌 6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업로드(Upload)

이미지: 아마존

아마존 오리지널 [업로드]는 디지털 사후세계를 가벼운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 드라마다. 2033년 미래는 죽기 직전에 의식을 디지털화하면 가상의 공간에서 가족, 연인, 친구들과 소통하며 삶을 지속할 수 있으나 모두에게 안락한 사후세계가 제공되지 않는다. 현실 세계 못지않게 철저하게 계급화된 곳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상의 리조트 레이크뷰의 고객이 된 네이선은 부유한 여자친구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사고 전후의 기억에 문제가 있다. 네이선은 서비스 담당자 노라와 가까워지면서 사고와 관련된 비밀에 다가서려 하고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오피스]의 그렉 다니엘스가 제작했으며, 흥미로운 세계관과 재치 있는 전개로 호평을 받아 공개 일주일여 만에 시즌 2가 확정됐다.

오스모시스(Osmosis)

이미지: 넷플릭스

우리는 시스템이 맺어준 사랑을 확신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데이팅 앱이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대를 추천하고, 실제로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넷플릭스 프랑스 드라마 [오스모시스]는 조금 더 나아가 현재까지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진정한 사랑의 비밀에 발을 들인다. 가까운 미래의 파리를 배경으로, 소울메이트를 찾아주는 서비스 ‘오스모시스’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기적처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사랑하는 이를 만난 후 기술을 확신하는 폴과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서비스 개발에 몰두하는 에스테르 남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베타테스트에 지원한 열두 명의 참가자들(정확히는 뤼카, 아나, 닐스), 그리고 인공지능 마르탱이 서사의 중심이 되어 기술 발전과 인간의 욕망, 두려움 사이의 오차를 파고든다.

더 원(The One)

이미지: 넷플릭스

DNA 검사로 완벽한 짝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 머리카락 한 올만 있으면 유전적으로 결정된 단 하나의 사랑을 찾는 게 가능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원]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연보다 완벽한 짝을 결정짓는 ‘매치 DNA’를 둘러싼 어두운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범죄 스릴러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삶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대중 앞에 나선 ‘더 원’의 CEO 리베카가 성공한 인생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서비스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며 기술과 인간 모두 완벽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소울메이트(Soulmates)

이미지: AMC

작년 하반기에 공개된 AMC 앤솔로지 시리즈 [소울메이트] 역시 근미래를 배경으로 영혼의 짝을 찾아주는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다. 6부작의 에피소드는 서비스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도 과학기술로도 채울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마음과 시스템의 허점 등을 다루며 사랑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이전에 사랑을 찾은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잃어가고, 누군가는 영혼의 짝이라는 환상에 속고, 또 어떤 이들은 영혼의 짝과 현실의 짝 모두를 갈망한다. 한편으로는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에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열렬한 감정을 느끼거나 영혼의 짝을 만나 미처 몰랐던 숨겨진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를 가볍게 음미하며 볼 수 있으며, 아마존에서 서비스 중이다.

더 캡처(The Capture)

이미지: 유니버설

사회 안전을 위해 보안 및 감시 역할을 하나 인권과 사생활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CCTV.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인 [더 캡처]는 각종 사건에서 주요 증거로 활용되는 감시 카메라 영상의 섬뜩한 이면을 포착한다. 주인공 숀은 명백한 영상 증거 때문에 비무장 포로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무죄로 풀려난 후에는 자신의 변호사를 폭행 및 납치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무죄를 주장하는 숀이 봤을 때도 부인할 여지가 없는 영상,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더 캡처]는 으레 진짜라고 여겨온 CCTV를 비롯한 수많은 영상 증거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며, 기술이 잘못된 목적과 만났을 때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 숨 가쁜 스릴러로 담아낸다.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기반한 감시 시스템을 소재로 한 SF 범죄 드라마다. 천재 엔지니어 해롤드 핀치는 9.11 이후 미국 정부를 위해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예측하는 ‘기계’를 개발한다.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은둔하며 지내던 그는 기계가 테러와 관련 없는 범죄 가능성을 포착하는 것을 발견하고, 서류상으로 사망한 전직 CIA 요원 존 리스를 범죄 예방을 위한 파트너로 포섭한다. 시즌 초기는 얼핏 독특한 배경과 능력을 가진 두 인물의 활약상에 기댄 범죄 수사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자발적인 감시 사회가 초래하는 모순과 혼란, 윤리적인 문제에 비중을 높인다. 특히 ‘사마리탄’이라 불리는 두 번째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해롤드와 존을 주축으로 한 기계팀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장르적인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건넨다. 왓챠, 웨이브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