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왔지만 스트리밍 업계에게는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다. 극장산업이 불가피하게 침체되면서 OTT 서비스를 통한 단독 개봉, 또는 극장-OTT 동시 개봉으로 관객을 만난 신작 영화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기존 히트작들을 대거 업데이트하는 한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퀸스 갬빗], [브리저튼], [뤼팽] 등 오리지널 시리즈를 꾸준히 런칭하며 불황 속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방역 준수로 인해 촬영 자체가 더욱 까다로워진 탓인지, 넷플릭스 공개 후 나름 호평을 받았는데도 두 번째 시즌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캔슬당한 작품 또한 늘었다.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은 드라마들의 경우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시즌 2 제작의 청신호가 다시 켜질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일 뿐이다.

아이 엠 낫 오케이 (I Am Not Okay with This)

이미지: 넷플릭스

찰스 포스먼의 동명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아이 엠 낫 오케이]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 공동 연출자 조너선 엔트위슬과 영화 [그것]의 두 주연 배우 소피아 릴리스, 와이엇 올레프가 만나 큰 기대를 모은 하이틴 판타지 드라마다. 아버지가 갑자기 자살하고, 원치 않은 초능력이 생기고, 심지어 평생의 절친에게 사랑까지 느끼는 주인공 시드의 3중 성장통은 매회 팽팽한 긴장감과 발랄한 유머를 선보이며 팬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시즌 2가 무난히 확정되어 각본 작업이 시작됐으나, 코로나19 창궐로 제작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결국 넷플릭스는 [아이 엠 낫 오케이] 캔슬을 공식 발표했다. 팬들은 물론이고 제작진과 배우들 역시 큰 아쉬움을 드러냈는데, 특히 와이엇 올레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료들과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시즌 1 엔딩에서 시드에게 손을 내민 정체불명 남성이 누구인지를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대형 스포일로여도 궁금하다면 해당 글을 확인해 보자). (넷플릭스)

더 소사이어티 (The Society)

이미지: 넷플릭스

[더 소사이어티]는 하이틴 드라마가 유독 많은 넷플릭스에서도 꽤 돋보였던 수작이다. 마을의 어른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지고 외부와의 연결도 완전히 끊긴 후, 남은 고등학생들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각종 혼란과 의혹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2020년 시즌 2가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제작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었다. 시즌 1 마지막화에서 사라졌던 부모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의외의 반전이 밝혀진 것을 생각하면, 제작진 및 출연진 입장에서 시즌 2 캔슬은 허망함을 넘어 안타깝기 그지없을 것이다. [아이 엠 낫 오케이]와 더불어 코로나19가 호전될 경우 꼭 넷플릭스에 돌아왔으면 하는 ‘꿀잼’ 하이틴 작품이다. (넷플릭스)

V-워 (V Wars)

이미지: 넷플릭스

제목부터 뱀파이어, 또는 백신을 연상시키는 [V-워]는 뱀파이어의 탄생과 증가를 마치 전염병의 유행처럼 묘사하여, 코로나19가 여전히 활개 치는 요즘 한층 더 눈에 띄는 드라마다. 재미있게도 [뱀파이어 다이어리]에서 뱀파이어 데이먼을 연기했던 이안 서머홀더가 극중 뱀파이어가 된 친구 마이클과 대립하면서도 그를 지키려 애쓰는 주인공 루서 역으로 나선다. 뱀파이어들의 매혹적인 외모와 초능력, 인간과의 애정 관계를 주로 다뤘던 기존 뱀파이어물과 달리, [V-워]는 정부의 진실 은폐, 인간과 뱀파이어의 정치 암투 등에 집중하며 인종과 계층을 둘러싼 현실 사회의 여러 갈등을 되돌아보게 한다. 설정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지만 비평가들의 반응이 저조했던 탓일까. 이 작품 또한 시즌 1이 종영된 이후 지난해 초 캔슬 소식이 알려졌다. (넷플릭스)

스핀 아웃 (Spinning Out)

이미지: 넷플릭스

[스핀 아웃]은 영미권에서도 흔치 않게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삼았지만, 스포츠물의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피겨 유망주 캣 베이커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고 있고, 부상 트라우마에 빠져 선수 생활을 접기 직전까지 몰렸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재기를 시도하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에는 이러한 정신적 고통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시청자까지 숨 막히게 한다. 실감 나는 스케이팅 경기 연출과 아울러 젠과 마커스, 알라나 등 캣의 주변 인물들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한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자식을 평생 괴롭히는 ‘민폐 엄마’에 대한 서사를 필요 이상으로 질질 끌며 피로를 배가시킨 게 못내 아쉽다. 이것이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핀 아웃]은 결국 시즌 1 그대로 종영이 확정됐다. 그래도 많은 팬들이 넷플릭스의 시즌 2 캔슬 결정을 비난하고 섭섭해한 것을 보면 약소하나마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넷플릭스)

메시아 (Messiah)

이미지: 넷플릭스

2020년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창사 이래를 통틀어 가장 큰 화제성을 모은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메시아]다. 재림 예수를 자칭하며 가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키는 의문의 남성 알 마시히를 다룬, 이 정치 스릴러는 공개 직후 당연하게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서 온갖 항의와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악플도 관심이란 말이 있듯이 로튼 토마토, IMDb 등 평점 사이트에서는 대조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대 정치 문제에 대한 묘사 역시 날카로운데, 특히 8화에서는 6.25 전쟁 당시 자행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등 미국이 평화 수호를 명목으로 세계 각지에서 벌인 전쟁범죄가 일일이 열거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메시아] 역시 알 마시히의 정체에 대한 떡밥을 곳곳에 남기며 시즌 1을 마쳤다.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한 촬영상의 난관 때문에 후속 시즌이 캔슬됐다. 명목상으로는 그렇지만 작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종교계·정계의 눈총에 대한 부담을 끝내 이기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넷플릭스)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