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스케일과 휘황찬란한 액션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히어로 영화에도 눈물은 있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주인공의 가슴 아픈 과거사, 심지어 그들의 숭고한 희생까지.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영웅들 스스로가 자신의 아픔을 삼키려는 모습에서 더 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처럼 관객들의 안구건조증을 한 방에 날릴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게 한 영화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었을까? 최근 개봉한 히어로 영화 중심으로 지금도 기억될 감동의 순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본문에는 해당 영화의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욘두의 숨은 부성애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에서 욘두는 악당임에도 ‘스타로드’ 피터와 함께한 정을 생각해서 그의 무모한 행동을 눈감아주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다. 2편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의 행동이 피터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라는 점이 밝혀지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건드린다. 특히 마지막 피터를 대신해 죽음을 택하고도 “제대로 해준 것이 없이 미안하다”는 욘두의 대사는 진정한 부모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극중 주요 캐릭터가 사망했음에도 그동안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는 듯한 욘두의 성대한 장례식 장면은 슬픔과 희망이 교차되며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로건’ 그래… 이런 느낌이었구나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로건]은 그동안 [울버린] 시리즈에서 놓쳤던 인물의 감성을 되찾으며, [엑스맨]과 함께한 휴 잭맨의 긴 여정을 훌륭하게 마무리한 작품이다. 제목부터 ‘울버린’의 본명인 로건을 택하며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능력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비추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영화 역시 로라를 통해 삶의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는 로건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유사 부녀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액션과 드라마로 잘 담아낸다. 특히 로건이 죽기 직전 로라에게 아빠라는 말을 듣고 묘한 미소를 짓는 장면은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신다.

‘원더우먼’ 나는 오늘을 구할 테니 당신은 세상을 구해요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많은 히어로 영화에 멜로 감성이 스며있는데, [원더우먼]은 이 중에서도 ‘사랑’의 위대함을 극의 중요한 요소로 배치해 극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1편에서 ‘원더우먼’ 다이애나와 스티브 트레버의 러브 케미는 재미와 함께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잘 녹여내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특히 적의 테러를 막기 위해 스티브가 희생하는 장면은 이야기의 전환점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순간이다. 스티브가 죽기 전 다이애나에게 “나는 오늘을 구할 테니 당신은 세상을 구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웬만한 멜로 영화 못지않은 애잔함을 건네며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분노와 평온 사이에 발견되는 진정한 힘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매그니토’ 에릭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어머니를 잃은 슬픈 과거가 있다. 그에게 있어 초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이에 세상에 대한 복수심만 가득하던 그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프로페서 X’ 찰스를 만나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특히 분노에만 집착해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에릭에게 찰스는 어머니와 단란했던 그의 과거를 보여주며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다.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으면서 말이다. 이 장면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에릭의 내면을 잘 드러낸 순간으로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를 지켜본 관객에게 묘한 쾌감과 짠함을 함께 선사한다. 향후 에릭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찰스와 등을 지게 되면서도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하는데, 어쩌면 이 장면에서 보여준 에릭의 선한 마음이 그 이유를 대신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다시 쓰는 마스크

이미지: 소니픽처스코리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연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었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영웅의 성장담을 훌륭하게 담아낸다. 영화에서 피터 파커는 그린 고블린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그웬 스테이시를 눈앞에서 잃게 된다. 자신 때문에 그웬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피터는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를 버리고, 세상은 다시 악당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살아생전 그웬이 남긴 메시지를 보며 피터는 다시 의지를 다지고 영웅이 필요한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감동적으로 마무리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전반적으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재미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의 모습을 통해 빌런과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며 가슴 뭉클한 순간을 선사한다.

‘다크 나이트’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 엔딩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다크 나이트]는 누군가의 죽음과 이별이 없이도 울컥한 감정을 전해준 대표적인 작품이다. 범죄도시 고담의 구세주라고 믿었던 검사 하비 덴트가 조커가 바라던 대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세상은 더욱더 깊은 어둠에 빠져든다. 이때 배트맨은 하비 덴트의 악행을 막고, 그가 저지른 살인들을 자신에게 덮어 씌우라며 고든에게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아직 희망이 필요하다는 바람과 함께. 이후 영화는 왜 [배트맨]이라는 확실한 타이틀을 버리고 의미가 불분명한 [다크 나이트]로 정했는지 고든의 대사로 찬찬히 드러낸다. 영웅의 희생을 넘어 세상의 원죄마저 끌어안고 가는 배트맨의 숭고하고도 비장한 각오가 숨죽여 작품을 보고 있던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마침내 나오는 제목 타이틀은 이 작품을 히어로 영화의 전설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I am Iron Man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피날레는 언제 봐도 마음을 뜨겁게 한다. 타노스와의 최종 결전에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지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있게 한 그 한 마디 “i am iron man”을 외치며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세상을 구한다. 이후 토니 스타크의 장례식에서 마블 히어로들이 모두 모여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2008년 [아이언맨1]로 시작해 십여 년 동안 마블 영화를 지켜 본 팬들 역시 토니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것은 물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영광스러운 퇴장에도 박수를 보내며 대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히어로들의 히어로로 장엄하게 퇴장한 토니 스타크의 다음 모습을 적어도 현재 페이즈 계획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그는 영원히 우리에게 아크원자로보다 더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아이언맨’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