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픽처스는 ‘스파이더맨’ 세계관 속 빌런 ‘크레이븐 더 헌터’에 대한 영화화를 계획 중에 있으며, 현재 대본 작업이 한창이라고 밝혔다. 크레이븐? 스파이더맨의 수많은 빌런 가운데 왜 하필 영화사는 그를 택했을까?

크레이븐은 시각적으로 멋진 외형을 갖췄거나 화려한 무기를 사용하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코믹 시리즈 역사상 손꼽히는 서사를 가졌기 때문에 영화화 계획에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다소 시시해 보이는 존재였지만, ‘크레이븐의 마지막 사냥’이라는 스토리에서 스파이더맨의 생사와 얽히면서 특별한 캐릭터가 되었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2편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더라면 크레이븐이 등장할 예정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크레이븐(본명은 세르게이 크라비노프)은 러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의 사냥꾼이다. 1950년대에는 닉 퓨리의 요청으로 각국의 용병, 암살자 등과 함께 나치 세력을 잡는 ‘어벤저스’라는 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신체능력이 강화되는 약물을 마시고 초인이 된 그는 점차 최고의 사냥감인 스파이더맨에게 집착했다. 당시 메리 제인과 결혼해 신혼을 즐기고 있던 스파이더맨을 총으로 쓰러뜨려서 묘지에 묻어버리고, 자신이 스파이더맨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행세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스파이더맨도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괴인 ‘버민’을 홀로 제압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지만, 잔인하고 거친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사냥해 물의를 일으킨다. 이 이야기는 이후에 닥터 옥토퍼스에 의해 다시 반복되고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끈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의 원형이 되는 사건으로 다가온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파이더맨이 무덤에서 기어 나오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사실 크레이븐은 진짜 총 대신 마취총을 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승자라고 생각한 크레이븐은 스파이더맨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고 버민을 풀어놓아 그의 뒤를 쫓게 한다.

크레이븐은 스파이더맨의 자리를 차지했었지만 진정한 영웅은 되진 못했다. 스파이더맨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고 싶었을 뿐 ‘히어로’로서의 마음가짐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크레이븐은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택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1987년에 발표된 이 스토리는 자살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스파이더맨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이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크레이븐은 생매장되었던 피터 파커에게 트라우마를 줬고, 메리 제인에게도 고통을 선사하며, 세계관속 여러 인물에게 단숨에 큰 영향을 끼친 빌런이 되었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크레이븐은 2009년에 발표한 [그림 헌트]로 다시 돌아왔다. 크레이븐의 아내 사샤는 둘째 아들과 딸과 함께 남편을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 거미 히어로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3대 스파이더 우먼(매티 프랭클린)을 잡아서 제물로 바쳐 죽은 큰아들로 부활시키기 위한 의식을 벌이는데, 이것은 크레이븐의 부활을 위한 일종의 시험테스트였다. 하지만 큰아들이 사자와 인간의 혼종으로 불완전하게 돌아오자, 크레이븐을 제대로 되살리려면 스파이더맨의 피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마침내 이들은 스파이더맨을 붙잡아 죽이고 크레이븐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냥꾼으로서 야수에게 죽고 싶었던 크레이븐이 원했던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제물이 된 대상도 가짜 스파이더맨이었다. 계속되는 크레이븐 일가의 살육을 막기 위해 피터 파커의 클론인 케인이 스파이더맨으로 변장한 것이었다. 크레이븐은 친구들의 복수에 나선 스파이더맨에게 “오직 너만이 나의 생명을 끝낼 수 있다”며 다시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차마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크레이븐은 가족과 함께 도망친 뒤 아내의 독단적인 행동을 탓하며 딸 하나만을 남겨두고 모두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이후, 크레이븐은 블랙 팬서를 사냥감으로 노렸고, 스쿼럴 걸과는 우정을 쌓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2019년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재등장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우선 그는 자신의 클론인 ‘마지막 아들’을 만들고, 라이노, 스콜피온, 벌처 등 동물을 테마로 한 다양한 빌런들을 잡아 센트럴파크 안에 가뒀다. 스파이더맨 역시 자신의 계략으로 유인해 붙잡았다. 크레이븐은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부자들에게 로봇을 이용한 사냥 체험을 시켜주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구하기 위해 크레이븐과의 싸움을 시작하지만, 크레이븐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마지막 수를 준비한 채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크레이븐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는 단순히 영웅과 빌런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복잡한 무언가가 스며있다. 사냥꾼(크레이븐)으로서 최고의 사냥감(스파이더맨)을 잡고 싶어 하는 본능과 한편으론 그런 야수에게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 또한 명예로운 죽음이 아닐까 하는 크레이븐의 바람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크레이븐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건 스파이더맨 뿐이라며 그에게 대항하고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크레이븐의 영화화 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스파이더맨 대 크레이븐 더 헌터(Spider-Man Versus Kraven the Hunter)]라는 단편영화가 있었다고 한다.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영화가 아닌 팬메이드 필름이지만 마블 코믹스와 스탠 리가 승인한 작품으로 1974년에 만들어졌다. 과연 [베놈]과 [모비우스]에 이어 크레이븐을 메인으로 한 또 다른 소니 마블 유니버스가 제작될까? 그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이미 블랙캣과 실버 세이블이 나오는 작품도 무산된 뒤라 현재까지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 같은 불안을 잠재울 확실한 정보가 빠른 시일 내에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