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언더커버]는 흑인 여성 최초의 검찰 수사국장이 된 인권변호사와 비밀경찰로 일했던 과거를 숨기려는 남편을 다룬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맞춰 각색된 드라마는 과감한 현지화, 흥미진진한 전개, 배우들의 호연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미지: JTBC

인권변호사 최연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의 처장 후보에 오르자, 그의 삶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게다가 오랫동안 자신과 가족에게 헌신한 남편 한정현은 그에게 뭔가 감추는 것 같다. 사실 정현의 진짜 신분은 국정원 비밀 요원 이석규이며, 작전 수행을 위해 연수에게 접근했다가 사랑에 빠졌다. 정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보호하려 하지만, 악은 그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손을 뻗쳐 그들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다.

예상보다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각색이 눈에 띈다. 마야와 닉은 각각 열정적인 인권변호사 최연수와 국정원 블랙 요원 이석규가 되고, 이들의 첫 만남은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1990년대 초 시위 현장으로 옮겨온다. 이석규는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인물 김태열의 체포를 위해 ‘한정현’이 되었지만, 감시 대상인 최연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진짜 신분을 버리고 연수와의 미래를 택한다. 약 30년 후, 연수는 정치적 논쟁의 중심인 공수처의 수장이 되고, 기시감이 드는 청문회와 교묘한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그 자리에 앉는다. 연수와 가족을 위협하고, 정현의 과거를 이용하려는 세력은 국정원을 비롯해 ‘나라를 위해’ 불의를 저지르고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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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최연수의 공수처는 선, 그를 막으려는 세력은 악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작품 안에선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없다. 공수처 직원 중 누군가는 권력에 빌붙어 연수를 교묘하게 방해한다. 반면 국정원의 누군가는 비리를 폭로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조직의 버림을 받았다. 연수를 공수처장으로 만든 권력은 그에게 정치적 처신을 요구하고, 그 반대 세력은 연수를 권력의 시녀라고 손가락질한다. 심지어 한정현은 연수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과 일을 숨겼다. 이미 진실과 거짓이 어지럽게 뒤섞인 상황에서, 굳이 ‘선’을 찾는다면 쉽게 꺾이지 않는 연수의 신념뿐이다.

반면 회차별 이야기 구조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연수는 일터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러 뛰어다니고, 연수와 가족을 지키려는 정현은 몰래 연수를 돕거나 자신이 관련된 음모를 추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운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지친 하루를 위로한다. 하지만 시청자는 둘의 관계가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임을 알기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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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캐릭터와 이야기의 균형을 잡고 활력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김현주는 정의롭고 강인한 연수를 뻔하지 않게 연기하고, 지진희는 섬세한 감정부터 거친 액션까지 소화한다. 상대역으로는 세 번째인 두 배우의 찰떡 호흡은 20년 차 부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조연들도 빈틈없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특히 연수와 대립하는 임형락 역 허준호, 도영걸 역 정만식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무엇보다 1990년대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젊은 시절이 현재의 캐릭터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선화와 연우진이 연기하는 젊은 최연수와 한정현(이석규)은 2020년의 연수, 정현과 표정, 말투 모두 비슷하다. 정만식-박두식, 한고은-박경리 등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배우 캐스팅부터 캐릭터의 스타일링, 연기까지 공들인 게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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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언더커버]의 주제는 진실의 무게다. 진실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워 기를 쓰고 감추려고 벌어지는 악행과 그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고통 말이다. 극중 공수처만큼 자주 거론되는 ‘국가기관 특수활동비 투명화법’을 둘러싼 대립은 돈의 흐름으로 드러날 진실을 가리려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이들의 악랄함을 보여준다. 그 사이의 개인들도 달콤한 거짓과 쓰디쓴 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유일하게 연수의 편이 되어줄 정현은 그가 짊어진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려 하지만, 더 크고 강한 악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감당하지 못한 진실은 곧 형벌이 되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고통을 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연수가 안타깝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거짓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된 날, 고통에 몸부림칠 연수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만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