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은 조선 시대 민가에서 야심한 밤 주로 과부를 납치해 혼인하던 풍습이다. 그 시절엔 당사자들의 묵시적 합의 하에 이뤄진 일종의 재혼 방식으로, 남편을 잃은 후 홀로 살기를 강요당한 여성들이 새 삶을 찾는 기회였다. 이 독특한 풍습에서 시작된 [보쌈 – 운명을 훔치다]는 조선 중기 복잡한 정치판 가운데 신분과 가문 간 갈등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리며 조용히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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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광해군 시기를 배경으로, 시정 왈패이자 보쌈꾼인 바우가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보쌈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잘못 보쌈한 이는 왕의 유일한 딸이자 당대 권력자 이이첨의 과부 며느리인 화인 옹주, 수경이다. 하지만 제자리에 돌려놓기 전에 이이첨의 집안은 수경이 죽었다고 선포하며 세상은 물론 왕까지 속이고, 거짓을 참으로 만들려고 수경을 살해하려 한다. 수경은 바우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후 바우와 그의 아들 차돌과 함께 살아간다. 수경이 살아있는 걸 안 시동생 대엽은 형수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하지만, 수경은 궐과 기와집 담벼락 바깥에서 많은 것을 처음 경험하며 이전과 다른 삶을 꿈꾼다.

[보쌈]은 정치 드라마, 코미디, 액션, 멜로 등 사극 드라마에서 기대할 만한 모든 요소를 다 모았다. 그중 드라마의 뼈대인 바우와 수경의 로맨스는 뻔하지 않은 매력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실수 때문에 인연을 맺은 두 남녀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면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고, 함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소중한 이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러브라인의 다른 축인 수경과 대엽의 관계도 흥미롭다. 처음엔 목숨을 걸고라도 형수를 지키려는 대엽이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동무이자 첫사랑이고 한때 혼담도 오갔던 사이였다는 게 드러날 때, 모든 걸 버릴 각오로 수경을 지키려는 대엽이 이해되면서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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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랑이 애절한 건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왕을 위협할 권력자가 된 이이첨을 꺾을 기회만 노리고, 이이첨은 무슨 수를 써서든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비정한 정쟁 사이에서 수경은 두 사람에게 이용당할 운명인 장기판의 졸이다. 바우와 대엽도 권력 싸움에 끌려들어가 한치 앞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게다가 바우의 진짜 신분이 역모죄로 처형된 부원군 김제남(광해군의 계모 인목왕후의 아버지)의 손자라는 사실은 바우와 수경, 대엽의 집안이 원수지간이라는 의미다. 바우와 수경은 처음부터 맺어지기 힘든 인연이었다. 게다가 역사에 따르면 광해군은 김제남의 당파인 서인들의 반정으로 곧 왕위에서 쫓겨날 것이다. 이들의 운명을 뒤집을 사건이 닥칠 걸 알기 때문에,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작품에 빠져들게 만드는 건 연출의 힘이 크다. [파스타], [골든타임], [미스코리아] 등 MBC의 히트메이커였던 권석장 감독은 첫 사극에서도 그만의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화면 하나하나에 공들인 게 보이는데, 특히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담아낸 아름다운 풍경은 정성을 다해 채색한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의상과 분장은 한국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미술은 공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이야기에 힘을 싣는다.

아름다운 배경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사극 베테랑 정일우는 오랜 경험에서 쌓은 내공을 발휘하며 중심을 잡고, 신현수는 액션부터 복합적인 감정 연기까지 다양한 연기를 보여준다. 신동미, 송선미 등 ‘권석장 사단’과 김태우, 이재용, 이준혁 등 중견 배우들도 무게감을 더한다. 하지만 [보쌈]의 발견은 권유리다. 쪽진 머리와 한복이 잘 어울리는, 정숙하고 단아한 겉모습 속에 뜨거운 열정을 품은 수경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한다. [보쌈]은 한편으로는 법도와 유교 윤리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수경의 이야기이기에, 그의 성장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배우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섬세한 디렉팅에 힘입어 권유리는 소녀시대 멤버가 아닌 배우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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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은 지난주 11화부터 2막으로 접어들었다. 바우와 수경이 도망만 다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음모와 위협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다. 과연 두 사람은 왕과 이이첨의 대립이 격화되고, 인조반정이 예고된 상황 속에서 사랑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가 역사의 빈틈을 어디까지 파고들어 둘의 사랑을 지켜줄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