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가 2년 만에 극장가를 찾아온다. [블랙 위도우]는 [아이언맨 2]를 시작으로 무려 7편의 마블 작품에 출연했던 나타샤 로마노프의 행적을 다룬다. 로마노프는 어벤져스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이었지만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에 비하면 사이드 킥 캐릭터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는 그동안 파편적으로 드러났던 부다페스트 사건과 레드룸을 파헤쳐 로마노프의 과거와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낸다. 나타샤 로마노프의 작별 인사이자 마블 페이즈 4의 시작을 알리는 [블랙 위도우]를 살펴보자.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부다페스트 사건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강인한 나타샤 로마노프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것일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진 관객이 많을 것이다. [어벤져스](2012)에서 처음 언급된 부다페스트 작전은 블랙 위도우가 쉴드에 합류한 후 호크아이와 공동 수행한 임무다. 이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에서도 히드라의 지도자였던 알렉산더 피어스가 ‘너의 과거가 드러날 것이다’라고 로마노프를 협박하면서 다시 언급됐다. 그동안 관객들은 스쳐 가듯 지나간 대화를 통해 로마노프의 과거를 추측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그 사건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부다페스트 사건은 로마노프에게 깊은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안겨주었는데, 옐레나 벨로바를 만난 그는 더 이상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과거를 직접 청산하기로 마음먹는다. 더 이상의 언급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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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위도우]를 관람하고 강렬한 액션 연기와 스케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상과 공중을 오가는 맨몸 액션과 카체이싱 액션, 대규모 전투는 관객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게다가 영화는 CG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고 실제 장갑차를 투입해 더욱 생동감 넘치는 액션을 완성했다. 물론 10년 동안 블랙 위도우로 분한 스칼렛 요한슨의 액션 연기는 빈틈이 없다. 새로이 합류한 플로렌스 퓨 역시 액션을 대부분 직접 소화해 액션 장면에 리얼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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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위도우]에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마블의 고질병인 빌런의 無 존재감이 재발했다. 우선 ‘복제’라는 사기급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존재감이 약했던 ‘태스크마스터’가 가장 아쉽다. 그는 상대의 능력을 무한 복제하는, 소위 치트키를 지닌 미스터리의 인물이다. 나아가 두려움을 못 느끼는 듯한 성격과 얼굴을 완전히 가린 가면으로 그 실체를 더욱 알 수 없다. 설정만 보면 과연 공략이 가능한지, 어떻게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가 로마노프와 옐레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탓에 태스크마스터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

또한 나타샤 로마노프의 과거가 시작되는 곳, ‘레드룸’에 얽힌 설정도 진부해서 아쉽다 . 레드룸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스파이 겸 킬러인 ‘위도우’를 양성시키는 기관으로 리더의 명에 따라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훈련받는 곳이다.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으나 빌런이 레드룸을 운영하는 목적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블이라면 이런 틀을 벗어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빌런의 야심은 그 기대를 무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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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블랙 위도우]는 기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드라마와 액션이 극을 이끌어가지만 유머와 감동 코드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블랙 위도우의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암살자 겸 스파이 출신으로서 늘 냉철한 통찰력과 행동력을 보여주었지만, 영화는 그가 히어로이기 전에 남들처럼 외로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임을 드러냈다. 이제서야 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는데 더는 볼 수 없다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앞으로 플로렌스 퓨가 보여줄 ‘옐레나 벨로바’다. 블랙 위도우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닌 벨로바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